2 by 2 매트릭스로 쪼개어 바라 본 시장
들어가며...
근래 개인적인 기회로 인플루언서 비즈니스에 관해 깊게 고민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알고 지내온 관련업의 전문가도 만나 뵈며 공부하는 과정에서 생각을 깔끔히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을 준 프레임이 있었는데,(datable 이종대 대표님께 감사합니다.) 그것은 인플루언서 비즈니스를 '2x2 매트릭스'로 잘라보는 것이었습니다.
하단의 그림처럼 한 개의 가로축은 해당 비즈니스가 광고 중개(협찬) 모델을 지향하는가, 실물 거래의 커머스 모델을 지향하는가?를 나타내는 정도이고, 다른 한 개의 세로축은 해당 비즈니스의 기본 구조가 플랫폼인가, 기획사 같은 매니지먼트인가?를 나타내는 정도입니다. 이렇게 나눠보니 복잡하게만 다가왔던 시장의 모습을 각 영역별 구체적인 플레이어를 연상할 수 있을 만큼 명쾌히 정리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프레임을 바탕으로 가볍게 정리한 생각을 적어볼까 합니다. :)
이를 대표하는 서비스로 블로그 마켓을 모은 <브랜디>나 이를 벤치마크한 모델로 빠르게 부상하는 <에이블리>가 먼저 떠오릅니다. 두 서비스 외에도 수요가 점차 증가하는 '라방'(라이브 방송의 줄임말) 시청과 쇼핑을 물흐르듯 연결한 <그립>도 생각해볼 수 있겠는데요. 브랜디는 서비스 초창기 같은 브랜드를 소비하는 사람들끼리 교감할 수 있게 묶어주는(해시태그의 쇼핑 버전) 소셜네트워크에 가까운 모양에서 세포마켓을 모아 둔 커머스 플랫폼으로의 피봇팅(pivoting)에 성공했습니다. 기사를 찾아 보니 어느덧 연간거래액 3,000억을 찍는 비즈니스로 성장했더군요. 이러한 폭발적 성장에는 블로그에서 '이웃'으로 불리는 팬덤 대상으로 상품을 판매하던 중소형 셀러를 끌어들일 맞춤형 유인을 제공한 게 주효했습니다. 쇼핑몰 운영 경험이 전무한 이가 마켓으로 수익을 내기 위해선 일정수준 이상의 팬심은 굉장히 기본적인 것이고 사실 상품페이지 구성부터 결제 - 배송 - 고객응대(CS) - 재고관리 등 생경한 제반업무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브랜디는 바로 이러한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바로 셀러가 유행에 맞는 상품 소싱 및 홍보에만 집중할 수 있게 뒷단의 복잡한 주문처리과정을 '표준화된 솔루션'으로 만들어 제공한 것입니다. 이는 카페24 같은 쇼핑몰 솔루션처럼 마켓을 여는 데 높은 진입장벽을 크게 낮춰줌으로써 블로그 마켓과 이를 꿈꾸는 새싹 셀러 집단에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생각해 볼 지점:
이처럼 다수의 세포 마켓을 모아 둔 플랫폼의 경우 미리 선점한 네트워크(풍부한 공급자 풀)와 거래규모(매출)를 바탕으로 주문처리과정에서 발생하는 서드파티와의 거래 비용을 줄여나가며 수익성을 개선하고, 이를 통해 판/구매자 양측에 대한 혜택을 강화해 튼튼한 해자를 구축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최근 이러한 플랫폼 사업자가 데이터 엔지니어 혹은 분석가, 물류 전문가 채용에 나선 것을 보면 수요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고 물류창고 공간 관리와 배송 업무에 있어서 효율을 높임으로써 '풀필먼트'(fulfillment) 서비스에서 정상을 찍을 심산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그간 집중해온 패션 분야에서 경쟁력을 잃지 않으면서 식품이나 화장품과 같은 다른 범주로 어떻게 원만하게 확장해나갈 것인가?에 따라 기업의 가치 평가가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상대적으로 문명의 이기가 덜 닿았던 동대문 패션 유통을 선공략해 독보적 행보를 일궈내고 있는데 여기서 얻은 공식을 식품 분야처럼 성격이 다른 산업에 어떻게 적용할수 있을까? 기대해봅니다.
또 다른 한 가지로 마켓플레이스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쉽게 고려할 수 있는 아이템은 '자체기획상품'인데요. 해당 아이템의 기획 방향성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겠는데 1) 플랫폼의 명성을 이식한 브랜드와 2) 셀러와 합작한 컬래버레이션 브랜드가 있겠습니다. 먼저, 1)은 일정수준 이상 규모를 키운 커머스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바처럼 가격경쟁력을 제외하곤 뾰족한 특장점을 가지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가 핵심역량인 네트워크 파워를 십분 활용한 멋진 방식이라 생각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적잖은 (셀러)매니지먼트 역량이 요구될 것으로 보입니다. 2)의 방향성은 마치 '블리블리'처럼 럭셔리와는 또 다른 감도의 팬덤 기반 프리미엄을 지향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데 이 또한 주관적 견해로 '규모'와 '프리미엄'이란 2가지 방향성은 트레이드 오프 관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규모에 집중하면 디테일한 관리의 결핍은 불가피하고 이는 셀러 개인 단위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브랜드를 론칭하는 데 있어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지요. 하여, 아직은 이러한 형태의 플랫폼에 프리미엄 브랜드가 동승하는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샌드박스>와 같은 MCN(다중채널네트워크) 비즈니스가 현재 바라보는 지향점이 바로 이곳이라 생각합니다. 그간 MCN의 주매출원은 전속 계약한 크리에이터(창작자)의 오리지널 콘텐츠로 발생하는 1) 광고수익과 창작자와 브랜드 간 광고계약을 통해 발생하는 2) 중개수익이었습니다. MCN은 1인 미디어를 중심으로(특히 유튜브 생태계에서) 탄생한 콘텐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사업으로 지상파/케이블방송사와의 관계에 바탕을 둔 기성 기획사보다 수익 배분에 있어 창작자에 많은 부분 양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 제작도 지원하는 MCN의 태생적 특징으로 판매관리비도 만만치 않다고 들었습니다. 광고 수주가 주매출원인 <메이크어스>의 감사보고서를 보면 제작원가, 인건비의 매출액 대비 비중이 꽤 높은 편이더라고요. 하여 지금까지 MCN 비즈니스는 양적으로 빠르게 성장했지만 이제는 조금 더 내실이 있는 구조 만들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 밖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기반으로 벌어지는 '공구'(공동구매의 줄임말) 이벤트를 판매자와 브랜드 간 성사시켜주고 수수료 매출을 올리는 기업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대중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효원커머스>, 블랭크코퍼레이션의 <레이블스토어>가 이런 모델을 적극 시도하고 있으며 기존 인플루언서 광고 대행업자도 조금씩 이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분야에서는 아직까지 인스타그램의 유명 셀러를 집대성한 독보적 1위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고,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여, 그 패권을 누가 먼저 어떤 전략으로 가져갈 것인가? 관심 가는 대목입니다.
생각해 볼 지점:
MCN은 앞서 언급한 대로 내실 있는 구조 구축을 위해서 창작자 의지를 반영한 '굿즈' 판매사업으로 커머스 매출을 증대시켜나갈 계획이 있을 겁니다. 다만 유튜브 창작자에게는 당장의 상품 판매보다는 진정성과 전문성을 확보한 콘텐츠로 구독자와 신뢰를 켜켜이 쌓아가는 것이 최우선인지라판매상품을 기획하고 협의하는 과정이 굉장히 까다롭겠다는 걱정이 머릿속을 스칩니다. 창작자 - 기업 양측의 서로 다른 입장이 MCN으로 하여금 수익구조를 변화시키는 데 속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보며 그 시간을 버텨 줄 충분한 자금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지난해 래퍼 염따의 티셔츠가 가공할 만한 판매고를 기록한 사례에서 느낀 것처럼 창작자와 팬 그리고 상품의 모든 결이 딱 맞아떨어졌을 때 발생할 퍼포먼스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MCN의 훌륭한 창작자 풀에다가 '커머스를 뒤에 두고 콘텐츠 편성을 짜는 기획역량'을 더하면 뉴미디어 시대 제일 강력한 사업 모델을 구축할 것이라고 감히 예상해봅니다.
셀러 - 브랜드 간 공동구매를 중개하는 벤더사 모델 영역에서는 인스타그램에서 남 모르게 활동하는 재야의 셀러를 집대성하는 작업을 얼마나 빠르게 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1.에서 언급한 사업자가 미처 공략하지 않은 타깃(우선순위가 아니기 때문에)이기에 그들과 관계를 빠르게 선점할 수만 있다면 벤더사 모델도 충분히 높은 성장성을 가졌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인스타그램 셀러의 욕망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주관적 견해로는 그들은 많은 이 중 하나가 아닌 독보적인 셀럽(셀러브리티)으로 남으려는 욕망을 가졌다고 할까요. 남보다 더 좋은 상품을 더 먼저 팔고 싶어하고 연예인과 친분을 과시하며 동화되려 하고, 더 많은 돈을 벌어 한 끝 더 럭셔리한 소비를 추구합니다. 그렇기에 앞선 MCN에 소속된 창작자보다는 커머스 사업으로 설득이 쉬운 타깃이지만 이들의 마켓을 브랜디나 에이블리처럼 한 데 모으는 작업은 묘한 상성 기류 때문에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네요. 어찌됐든 롱테일법칙이 적용될 수 있는 분야라 생각합니다. 대신 공구를 한 번 매칭하는 데까지의 관계구축에 있어 기획사만큼 많은 발품을 필요로 하기에 설득비용을 낮춰줄 '프리 패스'(연예인이 공동 참여해 셀럽 영업에 나서는 그림과 같은?)가 있다면, 거기에 공구 매칭에 관한 오퍼레이팅을 자동화할 수 있는 첨단의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면, 높은 기업가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우먼스톡>의 ICO(Initial Coin Offering ; 코인공개)프로젝트 <스핀프로토콜>이 이와 비슷한 방향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기업에 관한 성과는 초창기라,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 없어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꿈꿔온 비즈니스라서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
이 분야에만 집중하는 비즈니스 모델의 장기 존속이 가능할까?란 생각을 했습니다. 무분별한 눈 가리고 아웅식의 인스타그램 협찬 광고는 진정성을 잃은 지 오래고, 인위적 피드가 올라오면 거르기 일쑤인 시대죠. 이제 협찬 콘텐츠에 대한 관리/제작 능력에 있어 차별성을 확보 못한 업체라면 광고 수주 건수는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MCN은 광고 협찬 콘텐츠에 대한 제작 전반에 창작자와 함께 참여하지만 기획과 제작에 사용하는 비용이 광고 수주 매출에 육박하거나 무섭게도 상회하는 경우도 겪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독자가 이젠 정성을 들이지 않은 단순 협찬 광고를 너무나도 빠르게 알아보는 바람에 광고수주계약을 쉽게 맺을 수 있는 환경도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소비자, 광고주는 점점 더 똑똑해지고 인풋과 아웃풋이 확실한 투명한 정보를 원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어 인스타그램 광고 협찬 대행 같은 모델은 향후 점점 생존할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생각합니다.
마치며...
저는 옛날 어떤 글에서도 한 번 이야기했는데 퍼포먼스 마케팅에 조금씩 흥미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 영역은 저보다 잘하는 이도 너무 많고 제한된 시간 안에 인간의 능력을 써 도달 가능한 상한이 명확히 규정돼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 기계를 적용하는 모습을 더 많이 목격하고 있고 이젠 더 빠르게 규격화될 것입니다. 허나, 그쪽과 달리 인플루언서 비즈니스는 사람 매력을 기반으로 거래가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매력을 직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매우 중요한 거 같은데요. 그래서 때론 객관적이지 못하고 인풋과 아웃풋이 예상할 수 없게 들쭉날쭉한 시장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러한 불규칙한 출렁임 속에서도 경험을 반복하다 보면 미약하게 존재하는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단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플루언서 비즈니스에서 언젠가 많이 굴러보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있네요. :)
django.djaang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