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 May 14. 2022

이센스, clock, work ethic.

대한민국 힙합을 즐긴다는 사람이라면 연령을 타지 않고 이센스(e-sens)란 뮤지션은 한 번쯤 들어봤을 거다.


구분이 모호해진 요즘이지만 마니아와 상업 영역을 오가며 활동한 뮤지션이라 요샌 활동이 뜸하다 하더라도 최근 10년 간 가장 임팩트가 큰 국내 힙합 뮤지션을 꼽으라면 개인적으론 이센스다.


이센스가 내게 특별한 아티스트인 이유는 힙합에서 삶, 직업윤리에 대한 이야길 많이 하기 때문이다. 이제 힙합이란 장르가 사실을 넘어 상상과 거짓에 가까운 기믹을 담아야 더 박수 받는 시대에 이센스만큼은 그런 재미, 기교보다는 고전적 자세를 취한다.


고전적 자세란 사실을 이야기하는 건데 태생적으로 힙합이란 문화가 우리것이 아니기에 그 사실의 형태는 (욕설, 비프, 디스 같은) 터프함보단 실로 자전적이다.


<The Anecdote>(에넥도트, 2014) 는 그 부분을 인정 받은 명반 - 공식적으로 국내 100대 명반에 기록 - 으로 힙합음악을 향유하는 이들 사이에서 그의 스마트한 작사, 랩핑에 대한 실력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이센스 음악을 듣다 보면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와 큰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뛸 때 들을 만큼 신나는 노래는 아니지만 가사를 곱씹다 보면 가사 속 의미가 가진 깊이감이 마치 뛰다가 나는 입에서의 단내와 어울린단 생각에 뜀박질에 힘들 때 틀어놓고 꾸준히 들은 지는 꽤 오래됐다.

에넥도트보단 덜 알려졌지만 그 후속작인 <이방인>(2019) 은 본인이 실수를 저지른 뒤 세상에 다시 나오며 던진 출사표 같은 작업물이다. 에넥도트만큼의 신선함은 덜하단 주변 평도 있었으나 난 더 좋게 들었다. 사건에 시달리고 고뇌를 겪고 난 뒤라 생각의 깊이는 웬만한 철학자 저리 가라 할 만큼 깊어져 있었고 에넥도트만큼 맘 속의 응어리가 많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차가웠다. 이 글을 쓰며 타이틀곡이란 걸 알은 거지만 수록곡인 클락clock 은 내가 사업을 할 때나 직장에서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 꾸준히 들으며 이센스의 맘과 동기화align 했던 곡이다.


가사를 보면 이렇다.

1절
돌아볼 시간이 없어 앞에 보이는 게 많아서
다 걷어내지고 난 뒤의 나를 내가 봤어
좋고 나쁜 것 다 깨끗하게 비워냈을 줄
알았지만 거의 다 그대로였지 인생의 무게와
돈의 맛, 관계의 피곤함, 부담감
서로 먼 데 앉아 쳐다보기만 한 세상과 나
뭐 살만하긴 하지 내 친구와 나의 팀
그들은 내 추락을 바란 사람들이 아니지
담배 한 모금, 뿜어 도망 안 쳐 안 숨어
정면으로 마주 보고 서 남들이 무모하다
말하는 것들 중에 꼭 보석이 박혀있지
갖다 처박을 깡 없는 애들 눈엔 안 보이지

2절
가난한 시인 보다 졸부의 싸가지가
더 괜찮아 보이네 며칠을 굶은 놈의 식사에서
테이블 매너는 번거로운 일,
고깃덩이나 더 얹어놓길, 큰 거 먼저 먹지
Mind on my money, money on my mind
누가 이 게임을 아름답지 못하다 말하나
난 기도 같은 거 안 하고 하늘 대신에 꼭대기를
올려보고 나서 내가 해야 될 일을 정했지
난 내 가족의 편한 삶을 원해
그리곤 다 내려놓고 먼 곳의 어느 도시에
서울과는 다른 밤과 다른 표정에
섞여 살고 싶어 내가 살기에 여긴 불편해
허나 도피의 끝에 새 땅은 없지 늪이야
난 깊숙히 내 기둥을 꽂을 준비하지
그 수표에 적힌 평온의 값
그게 얼마든 줄테니까 내게 삶을 내놔

클락은 선비처럼 고고하게 살아서는. 하고픈 것만 현실감각 없이 해대서는 원하는  절대 얻을  없단  말한다. 2절에서 그토록 싫어하는 싸가지 없는 졸부가 배고픈 시인보다 나아 보이는  같기도 하다 말한 것에서. 배고픔에 당면하면 의미보단 양적 크기를 우선시하게 된단 “  먹지 말에 나타나는데 음유시인의 한량적 태도보단 프로다운 직업 윤리를 갖춘 직장인의 힙합을 하고 정해놓은 경제적 목표를 달성하겠단 한 의지 또는 생존력마저 느껴진다.


내 직업 및 사업관도 그러해지고 있다. 과정보다 결국 잘 했느냐? 가 중요해지고 있고 어떤 날은 세계적 석학보단 돈을 무자비하게 쓰고 과시하는 그 성장과정을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그들이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 생각의 중심에 있는 건 정도 차일 뿐이지 목표로 일정수준 이상의 금전을 갈구하지 않으면 제아무리 공들여 쌓은 철학이더라도 그것을 누군가에 설파할 설득력이 떨어지게 되며 세상과 담 쌓고 자유를 얻었다 할지라도 잠시뿐 이내 곧 현실과 다시 또 얽매여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목표지향적 태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강도에 따라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도가 달라지곤 한다. 너무 거세면 비윤리적이고 치사한 인간이   있지만 배고픔에 처하는  싫다면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자존감을 무너뜨리게 하는  알고 있다면 윤리의식을 넘지 않는 마지노선까지  악물고 가야 한다. 그래야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다음이 있다.


<끝>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밀크셰이크 딜레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