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 GPT와의 대화, 그리고 notebookLM의 동영상 요약
'혁명'의 진정한 목적은 부패한 '권력층'을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그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데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권력층은 스스로 변화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대부분의 혁명은 그들을 끌어내리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운전을 하다보면(혹은 샤워를 하던 중에), 가끔 철학적 논제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위의 말도 운전 중에 생각났던 내용을 바로 녹음했다가 문장으로 정리한 것인데요. 최근에는 문장을 정리할 때 LLM의 도움을 많이 받는데, 위 문장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ChatGPT와의 음성대화를 시도하였습니다.
그리고 ChatGPT와 몇 가지 문장 예시를 만들던 도중, "혁명은 파괴가 아니라 각성이다. 하지만 각성되지 않는 권력은 파괴될 수 밖에 없다" 라는 문장이 갑자기 제 마음에 훅 들어왔고, 이 문장으로 철학적인 토론을 나누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래는 그 대화 내용입니다.
## 대화 참여자
- **A**: 질문자
- **B**: 응답자
**A**: "혁명은 파괴가 아니라 각성이다. 하지만 각성하지 않는 권력은 파괴될 수밖에 없다." 이 문장 되게 의미 깊었거든? 이 문장에 대해서 약간 어떤 철학적인 논제로 다뤄볼 수 있는 주제로 만들 수 있을까?
**B**: 예를 들어 이런 주제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혁명은 본질적으로 권력을 일깨우는 과정인가, 아니면 결국 파괴를 통해서만 변화가 가능한가?" 또는 "권력이란 깨어날 수 있는 존재인가, 아니면 본질적으로 저항 없이 스스로 변하지 않는가?" 같은 식으로 권력과 변화의 관계, 그리고 혁명의 윤리적 정당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거예요.
**A**: 혹시 권력은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쪽인데, 나는 권력도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 철학자나 논쟁가가 있을까?
**B**: 물론 있어요. 미셸 푸코 같은 철학자는 권력이 꼭 고정적이고 불변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변화한다고 봤죠. 또한 한나 아렌트 같은 철학자도 권력을 단순히 누르는 힘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행동할 때 생겨나는 일종의 역동적인 에너지로 보기도 했어요.
**A**: 그러면 혹시 인류 역사적으로 권력층이 그렇게 변화한 사례가 있나?
**B**: 네, 역사적으로도 권력층이 변화한 사례들이 꽤 있어요. 예를 들어 계몽주의 시대에 일부 군주들이 계몽군주로 변화한 사례가 있어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 같은 경우는 본인이 절대군주였지만 계몽사상에 영향을 받아 행정 개혁을 하고, 백성들의 교육과 법제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움직였거든요.
**A**: 대부분 99%는 그렇게 자율적으로 변화한 사례는 없지 않을까?
**B**: 맞아요, 사실 대부분의 경우 권력층이 자발적으로 크게 변화하는 사례는 많지 않을 수 있어요. 역사적으로 보면 정말 일부 예외적인 사례들이지, 대부분의 권력은 외부의 압력이나 혁명, 사회적 변화에 의해서야 비로소 바뀌는 경우가 훨씬 많았죠.
**A**: 결국 혁명은 파괴적인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거네.
**B**: 어떻게 보면 그런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죠. 결국 많은 경우에 혁명은 권력층이 자발적으로 변하지 않으니 일정한 파괴나 강제적인 변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관점이 나오는 거예요.
**A**: 근데 이제 "분노하라"라고 말하는 스테판 에셀? 그 사람이 얘기한 게 있잖아. 난 그 말이 너무 좋다고 생각하거든?
**B**: 아,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Indignez-vous!")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맞아요, 그 책이나 그 메시지는 현대 사회에 대한 불의에 맞서 분노하고 깨어나라는 촉구였죠.
**A**: 그럼 스테판 에셀의 관점에서는 권력층을 파괴하는 혁명은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
**B**: 네, 맞아요. 스테판 에셀의 관점에서는 그런 혁명이 결국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볼 수 있죠. 왜냐하면 그는 불의에 맞서 분노하고, 그 불의한 구조나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시민들의 정당한 권리라고 봤으니까요.
**A**: 그러면 파괴하는 혁명은 절대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B**: 네, 그런 입장을 주장하는 철학자나 사상가들도 분명히 있어요. 예를 들면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같은 인물은 비폭력 저항을 강조하면서, 어떤 형태로든 폭력적인 혁명은 새로운 불의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어요.
**A**: 그러면 비폭력주의, 간디도 있고, 마틴 루터 킹도 있고, 실제로 그들의 비폭력주의로 권력층의 일깨움, 이런 것들이 일어났었나, 역사적으로?
**B**: 네, 실제로 역사적으로 간디나 마틴 루터 킹 같은 인물들이 비폭력주의를 통해 어느 정도 권력층을 변화시키거나 사회를 일깨운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간디는 인도의 독립운동에서 비폭력·불복종 운동을 통해 영국의 식민 통치에 맞섰고, 결국 영국의 정책 변화와 인도 독립을 이끌어냈죠. 마틴 루터 킹 역시 미국의 시민권 운동에서 비폭력 시위를 통해 인종차별에 대한 의식을 바꾸고, 결국 법적·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A**: 간디랑 마틴 루터 킹 외에 또 사례가 있나?
**B**: 네, 예를 들어 넬슨 만델라를 들 수 있는데요. 만델라의 경우 처음에는 무장투쟁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화해와 비폭력적인 화합을 강조하면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인종차별 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철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죠. 또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가 이끌었던 연대노조(Solidarity) 운동도 비폭력적인 저항을 통해 공산 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이끌어낸 사례로 꼽을 수 있어요.
**A**: 음, 이게 또 듣고 보니까 그렇네. 이런 사례들도 있고 그러면 아까 얘기했던 대부분의 혁명은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가 약간 오류가 생기는 거 아닐까?
**B**: 그럴 수도 있죠. 사실 우리가 처음에 이야기한 "대부분의 혁명은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는 관점도 전체 역사의 한 부분을 보는 시각일 뿐이고, 다른 사례들을 고려하면 꼭 모든 혁명이 파괴적일 필요는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는 거예요.
**A**: 사람들이 이렇게 대화하고 소통하면 얼마나 세계 평화가 잘 유지될까?
**B**: 정말 그렇죠.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의견을 듣는 것 자체가 평화 유지에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서로 다른 관점과 경험을 이해하고, 갈등을 대화로 풀어나가는 과정이 결국 평화를 만들어가는 데 핵심이니까요.
**A**: 문제는 이런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이 되려면 서로 상호간의 이득이나 욕망이 맞아떨어져야 하는 건데 사실 사람이 살다 보면 국가관도 그렇고, 정부도 그렇고, 지역도 그렇고, 사람 관계도 그렇고, 욕망이 상충되는 경우가 있을 수밖에 없잖아. 이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해?
**B**: 맞아요, 그게 정말 현실적인 어려움 중 하나죠. 그럴 때 중요한 건 완벽하게 모든 욕망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더라도,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점을 찾는 노력이에요. 완전한 일치를 기대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조금씩 접점을 만들어가는 게 현실적인 해답일 것 같습니다.
**A**: 어렵네.
**B**: 그렇죠, 정말 쉽지 않은 문제예요. 그래도 이렇게 어려운 문제라도 조금씩 생각해보고 대화를 나누는 게 변화의 시작인 것 같아요.
**A**: 영국이랑 프랑스, 한국이랑 일본, 중국이랑 일본처럼 몇백 년이 지나도 해결 안 되는 문제들도 있잖아.
**B**: 맞아요, 그런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문제들은 정말 오랜 세월 동안 풀리지 않고 이어지는 경우가 많죠. 그렇지만 그런 문제들도 결국은 대화와 이해, 그리고 긴 시간에 걸친 노력으로 조금씩 풀어갈 수 있다고 믿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A**: 그걸 이제 이어 나가기 위해선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 될까?
**B**: 결국 이런 관계를 이어나가고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꾸준한 대화를 이어가는 노력이 필요하겠죠. 서로의 역사와 감정을 존중하면서도,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고 미래 지향적으로 함께할 수 있는 접점을 찾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A**: 그리고 그럴 때 중요한 건 서로에 공감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문화랑 예술이 중요한 역할을 하겠네.
**B**: 맞아요, 정말 그렇습니다. 문화와 예술은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해를 넓히는 데 정말 큰 역할을 하죠. 예술 작품이나 문화 교류를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감정을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의 폭도 넓어지고 편견도 줄어들게 되니까요.
**A**: 이런 얘기를 나눌 때 좋은 주제가 될 만한 문화나 예술 작품이 있을까?
**B**: 그런 주제로 이야기 나누기 좋은 문화나 예술 작품 정말 많죠. 예를 들어 영화 같은 경우에는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작품이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내기도 하고, 문학 작품으로는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같은 소설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많은 이야깃거리를 줄 수 있죠.
**A**: 혹시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사람, 혹은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하나가 되어가는, 하나의 동질감을 느껴가는 그런 과정을 그린 작품이 있나?
**B**: 네, 그런 작품들도 꽤 있어요. 예를 들어 영화 '리틀 미스 선샤인'을 떠올려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영화는 각자 개성이 뚜렷하고 조금은 엉뚱한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여행을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의 유대감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려내죠. 또 '원스'라는 영화도 서로 다른 배경에서 온 두 사람이 음악을 통해 마음을 나누고 서로에게 가까워지는 과정을 보여줘요.
**A**: 미술 작품 중에서는? 회화 작품 중에서.
**B**: 아, 미술 작품 중에서도 그런 주제를 담은 작품들이 있죠. 예를 들어 노르만 록웰의 작품들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을 따뜻하게 그려내곤 해요. 그의 그림 중 'The Golden Rule' 같은 작품은 인종과 문화를 넘어 모두가 하나의 인류로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죠. 또한 마르크 샤갈의 작품들은 꿈같은 분위기 속에서 서로 다른 인물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장면들을 많이 담고 있어요.
**A**: 주제에 관한 내용과 관련된 회화는?
**B**: 그렇다면 조금 더 직접적으로 그 주제에 맞는 회화 작품을 생각해보면,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들이나 프리다 칼로의 작품들처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장면을 그린 그림들이 있어요. 또한 마르크 샤갈의 "도시 위에서" 같은 작품도 사랑과 유대감, 그리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떠다니며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림이라서 이 주제와 잘 맞을 것 같아요.
**A**: 그럼 반대로 그와 반대를 비교해서 볼 만한, 대비적으로 볼 만한 회화 작품은 뭐가 있을까?
**B**: 그렇다면 대비되는 작품으로는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같은 작품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작품은 개인의 고독과 불안을 강렬하게 드러내면서, 오히려 서로 연결되기보다는 소외되고 단절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죠. 또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들처럼 인간 존재의 불안을 강조하는 그림들도 대비해서 볼 만할 것 같아요.
**A**: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B**: 아,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말씀하시는군요.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 중 벌어진 비극을 담은 작품으로,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의 고통, 그리고 파괴 속에서 드러나는 단절과 분열을 강렬하게 표현한 작품이죠. "게르니카"는 전쟁과 폭력 속에서 인간의 고통과 단절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니까, 서로 유대감을 형성하는 작품들과 비교하면 정말 좋은 대조가 될 것 같아요.
**A**: 음악 중에는 뭐가 있을까?
**B**: 음악으로도 그런 주제를 다루는 작품들이 많아요. 예를 들어 존 레논의 "Imagine" 같은 곡은 전 세계 사람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상상하게 해주죠. 또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9번 교향곡) 같은 작품도 '모두 함께'라는 주제를 음악으로 표현하면서 인류의 화합과 유대감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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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예상 외로 즐거웠습니다.
저는 이 대화를 통해 교육 분야 에서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었구요.
그리고 위의 대화를 notebookLM에 소스로 제공하여 동영상 요약본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아래 영상 결과물 또한 나쁘지 않아 별다른 수정/편집 작업 없이 그대로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