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분명한 삶을 산다는 것

by 차준영

제법 일 잘한다는 얘기를 듣던 주니어 시절.

업무를 마친 후에는 꼭 내일의 TO DO LIST를 적었다.

모든 것이 명확했다.

내가 해내야 하는 목표와 방법이 정해져 있었다.

도제식 교육이 가능한 업무는, 즉 가이드가 있음을 뜻한다.

가이드가 명확하면 명확할수록 우리 삶의 변주는 어려워진다.

제법 일을 잘한다는 것이 진실로 잘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가이드에 충실하며 가능한 범위 안에서 효율적이며 효과적이라는 의미다.

범위를 넘어서는 순간 '탁월'이 되거나 '무능'이다.

다시 말해서 '잘함'의 의미는 탁월하지는 않지만 무능하지는 않은 '평범'을 뜻했던 것이다.


중간 관리자를 지나 시니어가 되고,

관리를 넘어 숫자로 적힌 목표를 할당받는 날이 왔다.

목표는 명확했으나 방법은 불분명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나의 일`이 정의되지 않는다.

탁월과 무능만 존재하는 위치다.


목표로 가는 길과 관련된 속담이 많다.

대표적인 두 가지 속담이다.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목표(서울과 로마)는 높고 길은 많고 많다.

목표에 다다랐는지만 중요하다.

전략과 기획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기.


스스로 `총괄`이라고 명명한 지 6개월.

나는 전략가이자 기획자가 돼야 하며,

나의 일은 조직 방향을 설계하고 방법론을 구축하는 것이라는 명확성이 생겼다.


모로 가도 되고 모든 길이 목표와 맞닿았다 해도,

조직이 함께 더 수월하고 빠르게 도달하는 수를 계산하고 적용하는 것.

말이 쉽지 사실 여전히 정의가 구체적이지는 않다.


그럼 더 적확한 단어로 나의 일을 정의할 수는 없을까.

오래된 직급 체계에서 그 해답을 고민해 본다.

일반적인 직급은 <사원-대리-차장-부장-이사-상무-전무-대표>의 틀에서 정해진다.

물론 산업마다 차이는 있지만 직급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수평적인 조직 문화에서도 각자의 역할이 다르듯

직급 역시 역할론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부장은 영어로 General manager로 통용된다.

임원직인 이사부터는 Director가 된다.

직역하면 관리보다는 방향을 만드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Director의 어원은 라틴어 "dirigere"에서 기인한다.

이끌다. 안내하다. 정렬하다는 의미다.

즉, 단순히 방향을 만드는 것만이 아니다.

조직의 방향을 설계하고 표현해 내는 감독이 되어야 한다.

나아가 조직원을 같은 방향으로 '이끄는' 관리의 영역이 포함되어 있으며,

방향에 대한 안내를 하는 큐레이터로서 역할도 포함한다.

그리고 방향을 다시 일로써 구체화하는 정렬까지가 디렉터의 역할이다.

단순히 지시만 하는 것이 끝이 아니라는 뜻이다.


어원을 세분화해서 보면 <dis- (멀리, 방향) + regere (다스리다, 인도하다)>로 나눈다.

디렉터는 멀리 방향을 잡고 가는 길까지 인도해야 하는 사람이다.

생각보다 광범위한 업무 범위다.


특히 방향을 설계하는 사람으로만 정의 내리면 조직은 혼란을 겪는다.

사람은 커뮤니케이션의 동물이다.

송신자와 수신자가 존재한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내 역할은 방향을 잡고 구체적인 방향과 가는 길을 닦아서 안내까지 해야 한다.

그래야, 조직이 움직인다.


6개월의 첫 To do list를 적었다.

그간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혼란을 겪었나 보다.

답이 없는 세상에서 답을 찾아내야 하다 보니 참 어려웠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는 것을 하는 삶에서는,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답이구나 결론 내린다.

생각만으로 그쳐서도 안되며,

무작정 행동해서도 안된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그래서 나는 더 무거워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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