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세 번째 삶

두 번의 끝 이후에 남은 시간

by 차준영

나는 세 번째 삶을 살고 있다.


태어나서 첫 번째 죽음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어른들의 말로만 알고 있는 일이다.


많이 아팠다고 한다.

의사도 오늘을 못 넘길 거라.

어머니는 동생을 임신 중이었고 나는 엄마를 찾았다고 한다.

고압 산소통에서 하룻밤.

그렇게 살았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마지막이 될 오늘을 넘어갔다.

내 삶의 첫 번째 끝이 지났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1차선 도로였고 신호등은 없었다.

꼬맹이들이 길을 건너는 것이 불안했던 부모님은,

학원 차량 아저씨께 꼭 도로를 건너지 않도록 등하차를 요청했다.

하지만 언제나 나는 도로를 건넜다.


기억이 어렴풋하다.

그날은 맑았다. 꽤 쾌청했던 여름이었다.

역시 도로 건너편에서 학원 차량은 섰다.

짧고 신호등이 없는 도로는 무섭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달렸고, 기억을 잃었다.


내 뒤에 내리던 동생의 기억을 빌리면,

도로 바로 옆 골목에서 승합차가 나타났다고 한다.

무엇이 바빴는지 좁은 골목길에서 빠른 속도로 내려오느라

나도, 차량 운전자도 서로를 못 봤다.


9살. 승합차 바퀴에 깔렸고 바로 실신했다.

그때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한다. 어린 동생은 오빠가 죽었다고 했다.

병원으로 실려가는 차 안에서 깨어났다.

생생한 기억. 다리가 피로 물들었고 닦아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휴지 좀 달라고 했다. 피를 닦아내면서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도통 몰랐다.


병원에 도착했고, 곧 부모님이 오셨다.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마취 없이 꿰매야 한다고 한다.

아프면 소리 질러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두 번째 죽음 앞에 깨어난 나는, 감각이 없었다.

급하게 응급 처치를 하고 난 후에 수술에 들어갔다.

허벅지 피부를 뼈까지 패인 발에 이식하는 수술이라고 했다.


수술대 위에서 의사 선생님께 물었다.

"많이 아픈가요?"

9살 아이의 물음에 의사 선생님은 수술대 보다 차가운 표정으로

"어 많이 아파"라고 했다.

그리고 또 기억을 잃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회복력이 좋다.

한 달 즈음의 입원 생활과 통원을 반복한 후에,

나는 친구들과 다시 뛰어다녔다.
학교는 그대로였고 계절도 그대로 흘러갔다.

다만 내 다리에 남은 흉터만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두 번째 인생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사람은 대개 인생이 바뀌는 순간을 그 자리에서 알아채지 못한다.

그저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아, 거기서부터였구나' 하고 알게 된다.

세 살의 밤이 첫 번째 인생의 끝이었다면

아홉 살의 여름은 두 번째 인생의 끝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세 번째 인생을 살고 있다.


뒤돌아서 가끔 생각한다.

사람들은 인생이 한 번 뿐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누군가는 큰 실패로 누군가는 병으로
누군가는 관계의 끝으로 누군가는 사고로

자신의 삶을 한 번 끝내고 또 다른 삶을 시작한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삶이 가끔 낯설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하루도 어쩌면 한 번 더 주어진 시간일지 모른다는 감각이 있다.

이미 두 번 끝날 수도 있었던 삶이니까.

그 생각의 말미에 여유로움이 서린다.


세 번째 삶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끝날지,

아니면 네 번째 삶으로 이어나갈지 모르겠지만

세상에게 받은 보너스 라운드라는 생각으로 고된 삶에 한숨 한번 쉬고 몸을 뉘인다.

굳이, 어렵게 갈 필요 있겠냐.

언제 어떻게 시작되고 끝날지 모르는 삶인데.


그냥, 그런 마음으로 세 번째 삶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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