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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행복한 삶의 조건

의미 없는 삶의 목표를 버리다. feat. 워런버핏

by 차준영

언제부터였을까.

더 이상 무언가에 설레지 않게 된 것이.


삶에 치이다 보니 설렘을 잃고 사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여전히 살아가야 할 이유는 많다.

설렘 하나 없다고 삶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생이 헛하고 공허하게 느껴진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본다. 나는 공차는 것을 좋아했다.

열이 펄펄 나는 어느 날에도 축구하자는 친구에 말에 축구화 끈을 동여맸었다.

집에 혼자 있는 날에 적적하면 공 하나 들고 운동장에 나섰다.

네다섯 시간을 그렇게 혼자 트래핑과 슛 연습을 하고 들어오기도 했다.

축구에 대한 열정은 넘쳐서 흘러내렸다.

뛰어난 운동신경과 체계적인 교육 환경까지 있었다면 차붐을 잇는 유럽 진출 선수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물론 좋아하기만 해서는 불가능한 꿈이었으나, 마음만큼은 유명 축구선수 못지않았다.


그저 좋았다. 내가 원하는 궤적으로 공이 나아가 그물에 꽂히는 쾌감을 잊을 수 없다.

순간이 설레었다.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겼다.

설렘을 찾을 여유가 없어졌다.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났고 일상이 헛해졌다.

1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짧았나 싶다.

그리고 1년을 돌이켜보면 무엇을 했는지 희미하다.


나의 그리고 우리의 설렘은 다 어디 갔을까.

공 하나에 희열을 느끼던 아이는 어디 갔을까.

지금도 어느 때보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그 어느 순간보다 어느 하나 내 삶에 집중하고 있지 않음이 느껴진다.

시간이 갈수록 '내'가 없어지는 기분이 든다.


헛헛하다. 채워지지 아니한 허전한 느낌이 든다.

삶의 대의명분과는 달리, 역동감이 넘치는 설렘이 없어서 아닐까.

인생이란 이런 것일까, 생각보다 삶의 재미는 초반에 끝나는 것일까.

조금은 설렘을 내려놓고 살고 있었다. 지나는 인생에 몸을 맡겼다.


그러던 중 넷플릭스에서 '옥씨부인전'을 봤다.

송서인(추영우)은 서자이기는 하나 양반의 위치를 내려놓고

자신이 마음 설레는 전기수 예인 천승휘로 살아간다.

전기수는 이야기책을 전문적으로 읽어주는 사람으로 오늘날의 예능인(예인)이다.

전기수는 천민의 신분으로, 송서인은 천승휘로 자신의 신분을 낮추면서도 설렘을 향해 다가선 것이다.


이것이 드라마의 시작이다.

어쩌면, 삶의 대의명분이란 것을 너무 꽉 쥐고 있다 보니 설렘을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니었나 싶다.

옥씨부인전에서도 '신분과 명예 그리고 돈'에 얽매여 진정한 '나'를 놓치고 살아가는 역할들이 많이 나온다.

드라마는 현실을 투영한다고 했나. 지금의 나와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매한가지였던 것 같다.

인생을 살다 보니 체면치레도 해야 하고 잘난 척도 해야 하다 보니 주먹 꼭 쥐고 놓지 못한 것들이 많다.

심지어 결국엔 내가 갖지 못하는 것임이 분명해도 쉬이- 놓지 못하기도 한다. 사람의 욕심이 참 그렇다.


공 하나면 행복했던 아이는 축구 시합에서 골키퍼 포함 5명을 제치고 빈 골대에 슛을 했다.

그 순간 풀린 다리는 공을 허공으로 띄웠고 경기는 졌다.

그날 우리는 결과와 상관없이 즐거웠다. 결과는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마무리를 하고 피카츄 돈가스 하나씩 입에 물고 또 다른 주제로 수다를 떨며 놀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굴이 화끈해지는 순간이었을 텐데,

골만 넣었더라면 초등학교에 회자될 골이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그때는 행복했고 즐거웠다.

이겨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 아닐까.

우리가 즐거우면 됐다. 그것이 이유고 대의명분이다.


넘쳐나는 자기계발 콘텐츠를 보면 '목적 지향적'이다.

목표를 맹목적으로 달려 나가는 경주마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콘텐츠의 주제인 듯싶다.

나아가 '갓생'이라는 단어도 얼핏 들으면 굉장히 건강해 보이지만 그 뒤에는 삶의 헛함이 어려있다.

물론, 자기계발이든 갓생이 자신의 삶에 즐거움이 되고 보람이 된다면 그 조차 꽉 찬 인생이라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경계해야 할 것은 나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채 따라 하기 위한 목표 의식이다.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송서인이 천승휘가 된 것처럼.

어린 시절의 내가 축구광이었던 것처럼.

행복한 삶의 조건은 마음이 없는 목표를 버리는 것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

마음이 없는 목표를 버리는 방법으로 워런버핏의 5/25 법칙(5/25 Rules)을 소개한다.

1. 인생에서 하고 싶은 25가지를 적는다.

2. 그중에 가장 중요한 5가지를 선정한다.

3. 나머지 20가지는 지워라.


단순한 법칙이다. 인생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선택과 집중을 하라는 명쾌한 이야기다.

진짜 중요한 다섯 가지는 이미 마음속에 있다는 숨은 속 뜻이 있던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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