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겨울이었다. 눈이 많이 내렸다.
온 세상이 하얬다. 쌓인 눈이 세상을 가렸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향했다. 집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렸다.
교문을 나선 지 채 1분도 되지 않아서 공중을 날았다.
눈에 가린 연석을 생각지 못하고 밟은 것이다.
눈 때문에 마찰력이 급감한 연석은 꽤 미끄러웠다.
접지력이 나름 좋았던 브랜드 운동화도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대로. 쿵.
나는 그리 운동 신경이 빼어나지 못하지만 역시 젊음은 달랐다.
17세의 혈기왕성한 사내는 머리만큼은 사수했다.
첫 번째 머리를 살렸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1초도 되지 않아 수많은 선배, 친구, 후배들의 여러 표정이 보였다.
두 번째 나 혼자 세상이 침대 마냥 누웠음에 창피함이 스멀스멀 몰려왔다.
연석을 피해 빠르게 달렸다. 집까지는 뛰어서 4분 30초 정도 걸린다.
이 날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연석(緣石)은 도로와 인도를 구분해 주는 돌이다.
연결해 주는 돌이라는 뜻으로 도로와 인도를 구분하면서도 연결을 해준다.
연석에 생을 마감할 뻔한 그날, 1초도 채 되지 않은 안도감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했다.
삶과 죽음이 도로와 인도처럼 연석을 기준으로 구분되기도, 그리고 연결되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보다 죽음은 가깝다. 돌 하나 건너면 죽음이다.
가까운 죽음에 삶이 애틋해졌다.
그날 이후 내 삶이 여실히 바뀐 것은 없다.
하지만 삶의 태도가 바뀌었다. 관계에 대한 고민이 생긴 시기다.
삶이 애틋해진 만큼, 내 주변 사람들의 삶도 더욱 중요해졌다.
내일 아침이면 누군가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닿았다.
그즈음 국어 선생님이 자출(자전거 출근) 중에 트럭에 치이셨다.
좀비가 나와도 출근한다는 대한민국 아닌가.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아서 병원도 안 가시고 수업에 들어오셨다.
웃으며 트럭썰을 푸는 국어선생님을 사실, 그날 나는 더 이상 뵐 수 없었을지 모른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관계에 대한 소중함을 생각했다.
연석은 꽤 미끄럽다. 비나 눈이 온 뒤는 더 그렇다.
그리고, 미끄러지는 순간은 주체가 되지 않는다. 삶이 제멋대로 인 것처럼 말이다.
과거를 돌이켜서 17세의 나의 무력한 때를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가족과 지인들의 삶에 안도하고 감사한다.
그때의 마음으로, 내일 아침 좀 더 애틋한 삶을 살아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