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개월차 엄마의 에세이
나는 엄마가 된지 24개월차에 접어들었다. 그사이에 둘째도 임신을 하게되었다.
엄마가 된지 1년차에는 육아가 힘에 부쳤다. 집안일을 하거나 해야할일을 해야하는 것에 급박하고 그것을 아이가 방해하는 것 같이 느낄때마다 버거웠다.
짜증났던 마음이 지나고나면 별것도 아닌일에 내가 아이에게 투정을 부린것 같아 미안했다.
계획형이었던 나의 성향은 아이를 키우며 조금 더 즉흥적으로 변해왔다.
내가 오늘 계획한대로 식단을 먹이지 못해도 씻기지 못해도 육아놀이를 못해도 점점 괜찮아졌다.
아이가 먹기 싫어하면 억지로 먹이지않고 버리는 음식들도 아까워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평소보다 갑자기 더 먹을때는 급하게 냉동했던 반찬들을 돌려서 먹여도 괜찮다는 경험이 쌓였다.
아이가 하루는 녹초가 되서 씻기지 못하고 잠들때 자도록 둔다.
내가 사준 새로운 장남감으로 아이가 재밌게 놀것이라 기대했지만 관심이 없더라도 그냥둔다.
아이를 기르며 내가 당장 시키고 싶고 완료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서 원하는때에 마무리가 안되도 마음이 한결편해졌다.
제 시간에 등원을 시켜야하기때문에 아침에는 마음이 특히 더 분주해진다.
아이가 양말을 조금 늦게 신는다고해서 등원시간이 크게 달라지지않는다.
계속 안신겠다고 땡깡을 부리면 양말신는 놀이를 하자고 해본다. 바지를 갑자기 안입겠다고하여 또 빨리 입히고 싶은 통제욕구가 샘솟을때마다
‘육아의 과정을 즐기자‘ 마음속으로 되뇌인다. 바지를 빨리 입는다고해서 우주가 변화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마음이 엄청 편해지는것도 아니다.
바지입기싫은 이유가 뭘까? 바지 안입고 나가면 어떻게 될까? 파란색바지는 어떨까? 여러가지 질문을 아이에게 한다.
그러다가 그럼 엄마는 바지입었으니 먼저 나간다고 말해본다. 갑자기 파란색바지는 입고 싶었다고 대답한다.
바지 입는데만 시간이 몇십분은 걸린것 같지만 지나고보면 별일아니다. 한달에 하루 이틀 정도 등원시간이 더 늦어졌다고 하여 아이의 양육의 질에 현저한 차이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가족간의 갈등이나 불화는 대부분 통제욕구에서 생겨난다는 강의를 들은적이 있다.
나도 아이에게 가르치려고하는 것이 올바른 생활습관인지 아니면 내가 빨리 마무리짓고싶은 과제여서 통제하고 싶은 것인지
구분하려고 노력한다. 통제욕구에서 기반한 마음이라면 아이의 속도에 맞춰서 함께 놀고 옷입고 잠들려고한다.
아이의 속도에 맞춰 뭐든 하고나면 세상에 그렇게 급할일이 생각보다 없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아이의 속도로 경험하는 세상을 함께 바라보다보면 평범했던 것들도 엉뚱하고 특별하고 귀엽게 보인다.
돌맹이가 이렇게 웃겼나, 낙엽이 이렇게 재밌었나, 비눗방울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구름모양이 이렇게 특별했던가?
육아는 해야할 일이 아니라 사랑해주는 과정이라고 여기니
내가 가진 직업중에 엄마라는 역할이 참 좋다는 생각이든다.
내가 엄마로서 나만 아이에게 줄수 있는 사랑이 있다.
그것을 온전히 받고 느끼며 자라는 아이가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