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하는 첫 해외여행

우리가 살았던 도시 시드니로

by Potatohands

얼마 전 우리 가족은 15개월 아기와 함께 첫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시드니는 우리 부부가 유학생활과 직장생활을 4년 정도 했던 도시이다. 우리 부부의 추억이 많은 곳에 아기를 데려가 함께 여행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신기하고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외국인으로 처음 살아보았던 도시이기 때문에 고생을 했었다. 우리가 고생했던 장소에서 아기가 해맑고 힘차게 걸어 다니는 것을 보니 중간중간 비어있던 그림에 알록달록한 색감이 채워진 것 같았다.


아이와 여행을 하면서 좋았던 점 중에 예상하지 못한 것은 디지털 디톡스를 한 것이다. 나는 아기와 함께 여행을 하는 동안스마트폰을 볼 여유가 없었다. 디지털 디톡스를 하게 되며 느끼는 여유로움이 좋았다. 중간에 짬이 나는 시간이 있어도 내 두 눈으로 호주의 다양한 풍경을 많이 담기 위해서 스마트폰을 안 보려고 했다. 여행일정이 모두 아기와 함께하는 일정이다 보니 정신이 없기도 하였고 숙소에 돌아오면 곯아떨어지기 바빴기 때문에 인스타그램피드도 유튜브도 볼 시간이 없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스마트폰으로 구경할 시간이 없었다. 오늘 찍었던 사진들을 돌아보며 이런 재밌는 표정을 아이가 하고 있구나 하면서 남편과 키득키득 웃었다. 나의 삶을 내가 찍은 사진으로 다시 돌아보는 일들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즐거웠다. 내 두 눈으로 직접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삶을 상상해 보는 일은 피로하지 않다.


나는 내가 직접 냄새로 눈으로 촉감으로 느낄 수 있는 시드니의 풍경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해야 하는 일정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눈앞에 내가 감각적으로 느끼는 것들을 내 딸도 온전히 잘 느끼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좋았다. 아기를 키우며 변한 좋은 점은 내가 세운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내 탓도 아이 탓도 안 하게 된다는 점이다. 해외여행을 가서 여행 전날 혹은 당일 아침에 할만한 일을 정하고 해내면 감사하고 만족하게 된다. 아기를 데리고 타룽가주에 꼭 가보고 싶었다. 날짜는 정하지 않았다. 비어있는 날 중 하루, 날씨가 괜찮을 때 갈수만 있다면 좋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우리는 아기의 컨디션이 좋아 보이고 날씨도 좋은 것 같을 때 전날 계획을 하고 타룽가주에 다녀왔다. 어쩌면 못 갈뻔한 동물원 나들이였는데 하게 되어 좋았다. 예전에 이동진 평론가께서 인터뷰 중에 ‘하루하루는 열심히 장기적으로는 되는대로’라는 말을 하였을 때 공감이 많이 되었다. 아기를 키우기 전에는 장기적인 것도 꼼꼼하게 계획하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한 주 뒤의 아기가 심한 감기에 걸릴지 아니면 컨디션이 좋을지 예상이 안되니 장기적 인계획은 세우되 되면 감사하고 안되면 어쩔 수 없다고 여긴다.


아기와 함께 여행을 하니 할 수 있는 것들에 제약이 생기고 갈 수 있는 곳들이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한계들이 여행을 심플하고 단순하게 만들어서 좋았다. 나는 해외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적은 선택지안에서 그때그때 감당이 가능한 것들로만 즉흥적으로 흘러가는 여행이 처음이었다. 이런 여행의 장점은 기대하지 않고 보게 된 관광지의 풍경들에 대해 더 호기심과 관심을 갖고 관찰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점이다. 아기의 작은 보폭으로 함께 천천히 걸어 다니다 보면 내가 자주 갔던 시드니 도심 안의 풍경도 색다르게 보인다.


여행을 하기 전 나의 생활은 육아휴직을 한지 언 1년반쯤이 되어가다 보니 생활반경이 집 - 놀이터 - 어린이집 등 동네근방으로 좁혀졌다. 이동하는 거리가 줄어서 인지 나의 세계도 좁아졌다는 생각에 가끔은 울적해졌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내가 해외에서 살아보고 일도 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새로웠다. 나에게 더 넓은 세상이 있었는데 지금은 잠시 육아라는 시공간에서 좁아져있고 언제든 이 시기가 지나면 또 넓은 세계를 다시 만다는 날도 올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삶의 여러시 기를 지나고 있다는 제삼자의 시각에서 지금 나의 인생시기를 바라보게 되니 육아로 움추러들었던 숨통이 조금 트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색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 일렁거리며 치는 파도들, 먹이를 찾아 고개를 조아리는 새의 무리들, 기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문득 떠오른 것 들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내 세상이 좁아졌다고 답답해하며 스마트폰에 뜨는 알고리즘의 영상들을 찾아보기보다 내 두 눈으로 직접 관찰하며 멍 때리는 시간들을 즐겨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다짐으로 나는 지금 내가 좋아하는 단골카페에 앉아 맛있는 아이스 라테를 한잔 시키고 지난 시드니 가족 여행을 돌아보며 카페에 앉아있다. 이 글을 쓰며 창밖을 보니 시드니에서 느꼈던 여유가 서울의 창밖 풍경에서도 느껴진다.

우리는 여행을 하며 5군데 숙소에서 숙박을 하였다. 15개월 아기의 잠자리가 5번 바뀌었다. 처음에는 아기와 겨우 일주일 여행을 하는 것인데 이렇게 자주 자리가 바뀌어서 잠자리가 괜찮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나의 적응력을 닮은 아이는 곧 잘 아무 데서도 잘 잠들었다. 나는 새로운 숙소에 머물게 되면 그 숙소를 기반으로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와 간단한 생필품을 살 수 있는 마트가 있는지 파악하고 구경 가는 것을 좋아한다. 육아를 하면서 나의 강점에 대해서 생각해 볼 일이 별로 없었는데 여행을 하다 보니 남편에게 없는 나의 강점을 알게 되었다. 어느 장소에 가더라도 아기와 음식 먹을 만한 곳과 우리가 좋아하는 맛있는 커피 파는 곳을 금세 찾아낸다는 점이다. 나의 강점인 유연한 적응력과 강한 생활력은 나의 여러 결핍과 고난들을 통해 얻게 되었다. 직무에 대한 고민으로 직업을 바꾸며 겪었던 방황들, 처음 외국에서 디자이너 일하며 해본 고생들, 외국인으로 살아보며 처음 느낀 결핍들 등은 나의 강점을 만드는 좋은 재료였다. 내가 힘들다고 생각한 고난들을 뚫고 지나가는 시기에는 그 터널이 끝이 안 보이는 것 같아서 망연자실해하기도 했었다. 이 모든 경험이 어떤 미래의 나의 강점이 될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내 안의 거칠기만 했던 원석이 고난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깎이고 닦인 나의 강점이 되지 못했다.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아기가 겪을 여러 가지 우여곡절들을 가끔 상상하면 그것이 아기를 얼마나 힘들게 할까 엄마로서 마음이 벌써 아파질 때가 있었다. 그것이 취업난인지, 학업스트레이스일지, 교우관계에 대한 이슈일지 나는 미리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들이 나의 아이를 더 빛나도록 만들어주는 강점이 된다면 그 고난의 경험들이 꼭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여행을 하며 친했던 지인을 만나게 되었다. 목사님 부부셨는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두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셨고 여러 가지 결핍이 있는 가운데서 갈고 닦여진 강점들을 듣게 되었다.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목사님 부부는 그것을 다 해주지 못해 속상해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신다고 하셨다. 부모의 한스러운 마음도 이해가 가지만 그 가운데서 아이들이 돈으로 얻을 수 없는 강한 생활력과 회복탄력성을 길러내신 것이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마치 우리의 여행이 비어있는 여행의 일정마다 뜻하지 않았던 알찬 에피소드들로 가득 채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것처럼 나의 육아도 완벽하게 준비되고 실행되지 않더라도 충분히 즐겨야겠다. 내가 아이를 돌보며 내 손이 닿지 못하는 비어있는 곳들을 위해서는 기도해야겠다. 아기와 내가 어떠한 역경을 만나게 되더라도 스스로 이겨낼 넉넉한 힘과 지나고 보면 강점으로 빚어질 것들을 보지 못하고도 믿어줘야겠다.


이번 여행은 가끔은 숨 막혔던 육아시기에 숨을 크게 불어넣어주었다. 다음에 조금 더 커서 함께 하게 될 여행을 통해서는 어떤 것들을 깨닫게 되고 감사하게 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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