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강튀아, 텔렘 수도원

- 원하는 대로 하라

by 감자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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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렘 수도원은 프랑수아 라블레(François Rabelais, 1494?~1543 ?)가 1534년 펴낸 『팡타그뤼엘의 아버지 위대한 가르강튀아의 경이로운 생애』의 57장에 묘사된 곳이다.


그 시대 인간의 꿈이 구현된 이상향인 텔렘수도원엔 단 하나의 규칙만 있다. 그건 "원하는 대로 하라.(Fay ce que voudras)”이다. 위마니즘의 이상(理想)이다.


위마니즘(Humanisme)은 모든 인간적인 것을 있는 그대로 찬양하는 것이 핵심이다. 인간의 모든 생활이 인간 자신의 의지와 자유의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을 추구한다. 법이나 규약, 혹은 규칙에 따르지 않는다.


그런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한 근거는 인간성에 대한 신뢰에 있다. 인간은 덕행을 원하는 존재이고 악을 멀리하는 본능과 자각을 지닐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에 기반한다.


그러나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단순한 욕망의 긍정이라기보다, 고전 교육(litterae humaniores)을 통해 인간의 이성과 덕성을 계발할 수 있다는 믿음에 더 가까웠다. 당대 인문주의자 에라스쿠스(Erasmus of Rotterdam) 나 토마스 무어(Thomas More)를 떠올리면, 이들은 무제한적 자유보다 교양·절제·도덕적 자기 수양을 함께 강조했다.


따라서 텔렘 수도원의 규칙은 단순한 방임이라기보다, “잘 교육된 자유로운 인간은 스스로 선을 선택할 수 있다”는 낙관적 인간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위마니스트들의 인간관은 이상적인 교육, 자유를 허용하는 사회제도를 만들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정신과 육체를 조화롭게 발달시켜 인간의 완성을 도모하는 전인적 교육 방식은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 사회제도, 정치, 법 등 모든 문제를 인간의 자유와 행복의 관점에서 논의하고 완전한 자유를 갈구한 위마니즘은 근대적 자유와 인간 존엄 사상의 중요한 토대이자 근대사회를 출발케 한 원동력 중 하나가 된다.


프랑수아 라블레는 텔렘 수도원에서 그 대담한 이상향을 구체적으로 그려주었다. 극소수 엘리트에게만 가능한 중세 신학을 비판하고 인간성의 진보와 학문에 대한 신뢰를 고취한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의 이야기>가 프랑스 르네상스의 최대 걸작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


하지만 텔렘 수도원의 규칙이 '자유'라 하더라도 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람 역시 소수의 교양 엘리트뿐이었다. 이는 토머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 Utopia(1516)> 나 텔렘 수도원이 공유하는 르네상스 유토피아의 한계이기도 하다. “모두를 위한 자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준비된 인간만 누릴 수 있는 자유”였다.


현대인도 텔렘 수도원의 규칙을 삶에 적용하고 싶은 욕구가 솟는다. “인간이여, 원하는 대로 하라.” 원하는 대로 사는 행복을 누리려는 인간적 꿈은 시대를 초월해 모든 인간의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블레가 꿈꾼 ‘원하는 대로 하라’의 자유는 과연 누구에게 허락된 자유였을까. 이 점을 간과할 순 없다. 라블레의 “Fay ce que voudras”는 무정부주의 선언이라기보다, 수도원의 경직된 규율을 풍자한 것이었다. François Rabelais는 당시 수도원 제도의 금욕주의, 형식주의를 비꼬면서 내면화된 자유를 말한 것이지, 사회 전체에서 법 폐지를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텔렘 수도원 입소 조건을 보면 역설적이다. 아름답고, 교양 있고, 귀족적 예절을 갖춘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었으며, 가난하거나 추한 사람은 배제됐다. 즉 이상향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상당히 귀족적·배타적 유토피아라는 비판도 가능하다.


오늘날에도 자유는 모두의 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조건부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원하는 대로 하라”는 말을 듣지만, 경제적 조건·교육 수준·사회적 자본에 따라 자유의 크기는 다르다. 텔렘 수도원이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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