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라 아야코, 『시오카리 고개』

저는 예수만 바라보는 바보가 되고 싶습니다.

by 감자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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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카리 고개, 미우라 아야코, 김경식 옮김, 도서출판 좋은땅, 2024년



시오카리, 소금을 얻는 고개

『시오카리 고개』 는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이다. 이 소설은 1909년 시오카리 고개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 열차 전복을 막기 위해 자신의 몸을 선로에 던져 희생한 기독교인 청년 나가노 마사오의 실제 이야기이다. 미우라 아야코는 이 실화를 바탕으로 가상의 인물 나가노 노부오를 설정해 그의 성장과정을 따라가며 기독교인으로 세움 받고 이타적인 사랑을 실천하기에 이르는 픽션을 만든다.


'시오카리'는 홋카이도에 실제 존재하는 고개 이름으로 철도의 중요한 지점이며 급경사 구간으로 유명한 곳이다. 일본어 ‘시오카리’는 '소금을 얻는 곳'의 의미를 갖는다. 실제로 시오카리 고개는 험한 산길이었지만 사람들이 소금을 넘겨서 다른 지역으로 운반하거나 교환하던 중요한 길목이었다. 소설에서는 상징적인 의미 또한 담고 있다. 주인공 나가노 노부오가 소금처럼 귀한 가치를 지닌 생명을 이웃을 위해 바친 장소이기 때문이다.


'시오카리'는 단순한 지명 이상의 확장성을 갖는다. 한 사람이 자신을 내던지는 희생의 장소이며 삶과 죽음, 이기심과 이타적 사랑 사이에서 선택의 장소이기도 하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기독교적 아가페 사랑을 실천하는 곳이다. 그래서 시오카리 고개는 단순히 어느 고개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하는 장소이자 시간을 의미하게 된다.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찾아서, "나는 정말로 예수만 바라보는 바보가 되고 싶습니다"

『시오카리 고개』 는 기독교 정신을 문학작품 속에 깊이 녹여낸 작가인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 중 가장 정면으로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다룬 신앙소설이다.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변화하는 주인공 나가노 노부오의 성장 과정과 사랑, 죽음을 통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소설은 「거울」 장(長)에서 시작되어 「시오카리 고개」 장(長)으로 끝난다. 첫 장부터 어린 나가노 노부오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는다. “난 누굴 닮은 건가. 난 어떤 아이인가. 할머니 도세의 말처럼 나를 낳고 이틀 만에 돌아가셨다는 어머니를 닮은 건가. 고집스럽다는 어머니의 성격을 가진 건가.”


나가노 노부오는 단순히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결핍감과 의혹을 갖는 게 아니다. 이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게 된다. 성실하고 따뜻한 성품을 지닌 나가노 노부오는 삶의 의미와 인간 존재에 대해 점점 깊이 성찰한다. 철도원이 된 그는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며, 사랑과 희생, 용서의 가치를 깨달아간다. 불치에 가까운 폐병에 걸린 후지코를 사랑하며 신앙과 삶의 일치를 위해 고민한다.


어느 날, 기차가 급경사 구간인 시오카리 고개를 오르던 중 연결 장치가 끊어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대로라면 열차는 뒤로 미끄러져 큰 참사가 일어날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그 순간, 나가노 노부오는 자신의 몸을 던져 열차를 멈추려는 결단을 내린다. 후지코와의 결혼을 하루 앞둔 그날, 그는 수많은 승객의 생명을 구하지만 자신은 목숨을 잃는다.


시오카리 고개는 나가노 노부오의 정체성이 완성되는 고개이기도 하다. 기독교인으로서 자신이 배운, 자신이 따르는 예수의 삶을 실천한다. 결국 독자는 시오카리 고개에서 십자가를 진 예수가 희생된 골고다 언덕을 유추하기에 이른다. 독자는 온전한 사랑의 삶,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가노 노부오는 고백한다. "저는 정말 예수만 바라보는 바보가 되고 싶습니다." 297쪽. 이런 인간은 내면에 강인한 행복 기준점을 지닌 사람일 것이다.


결국 시오카리 고개는 철도 운행이 매우 어려운 험준한 곳의 지리적 의미를 넘어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시련의 고개, 인간이 신앙과 사랑으로 넘어야 할 영적 고비를 상징한다. 우리는 이런 시오카리 고개를 삶에서 여러 번 만날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 각자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인간이 진정한 사랑과 희생에 도달하기까지 넘어야 할 삶의 고개를 상징하는 시오카리 고개, 이 고개는 십자가 처형이라는 희생에 순종하는 예수의 죽음과 그 장소인 골고다 언덕과 중첩된다. 나가노 노부오의 희생은 아가페적 사랑, 기독교에서 가장 이상적인 사랑으로 가르치는 자기희생의 사랑과도 연관된다.


기독교는, 인간은 불완전하지만 진정한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예수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강조하지 않는가. 나가노 노부오는 그 사랑을 자기 위치에서 실천한 작은 예수의 표상으로까지 부각될 수 있다. 즉 시오카리 고개는 현대인이 재현한 골고다 언덕이 된다. 예수가 인류를 구하기 위해 죽음의 희생을 치렀듯이 나가노 노부오는 승객을 구하기 위해 희생한다.


미우라 아야코의 또 다른 소설『자아의 구도』와 『빙점』이 죄와 갈등 속에 방황하는 현실적 인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반면, 『시오카리 고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이렇게 살아야 한다"며 나가노 노부오의 삶을 제시해 기독교의 이상적 신앙을 정면으로 가르친다.


미우라 아야코는 기독교 소설가로 알려져 있지만 인간 실존에 대한 고민과 문제의식을 깊이 천착하는 점에서 종교의 울타리 안에만 갇혀 있지 않다. 무늬만 기독교인인 사람은 그녀의 소설을 읽으며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자기 계발을 원하는 사람 역시 노부오의 자세에서 인간과 삶의 존엄성에 대해 새롭게 반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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