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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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 구도, 미우라 아야코, 김경식 옮김, 도서출판 좋은땅, 2020년 12월
『자아의 구도』, 어려운 제목이다. 철학서 아닌 소설 제목으로는 낯설다. 표지 삽화의 독특한 구도와 밝은 색채가 눈길을 끈다. 일단 책을 펼치면 단숨에 끝까지 읽게 된다. 촘촘한 번역과 스토리의 흡인력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구도'란 그림에서 모양, 색깔, 위치 따위의 짜임새를 뜻하는 構圖, 진리나 종교적 깨달음의 경지를 구하는 求道 의 의미를 모두 담은 단어이다.
작가 미우라 아야코는 “자아(自我)를 어떻게 백색 화폭에 다시 새롭게 그려야 할 것인가?” 의 질문을 던진다. 어떤 구도(構圖)를 잡아서 어떻게 선을 긋고 무슨 색을 칠해야 할 것인가? 이게 가능한 일이긴 한 걸까?"
답은 없다. 그러나 미우라 아야코의 『자아(自我)의 구도(構圖)』를 다 읽은 독자는 그 답의 실마리를 스스로 잡게 된다. ‘진리를 찾아 나서는 구도(求道)’를 시작하게 된다. 미우라 아야코의 ‘힘’이다.
미우라 아야코는 평생 질병에 시달린, 약하디 약한 몸을 가진, 고통당하는 섬세한 영혼이었다. 그런 고난 속에서 ‘자기 중심성’이라는 인간의 ‘죄성’을 통찰한 그녀는 모든 걸 용서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를 찾아 나섰고 평생 즐거운 구도자(求道者)로 살았다. '위대한 존재', 기독교의 신을 의지해 매 순간 '자아의 구도'를 새롭게 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철학의 영역도, 예술이나 그 어떤 분야의 영역도 아닌, 결국 종교의 영역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분명히 규명되지 않을 문제처럼 생각되었다." 82쪽.
기독교적 사랑을 치밀하게 탐구한 미우라 아야코
미우라 아야코(1922~1999)는 사랑과 용서에 대한 기독교적 시각을 기반으로 독특한 문학 세계를 구축한 작가이다. 1964년 아사히 신문 1천만 엔 현상 공모에 『빙점』이 당선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은 인간의 원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에로스적 사랑이 아가페적 사랑으로, 죄가 용서로 승화되는 인간 구원의 문제를 성찰한다.
『자아의 구도』 에서는 사랑, 질투, 이기심, 죄, 용서 등 인간의 본성에 대해 고민하고 질문한다. 인간은 다른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후지시마의 그림 스승이자 현자에 가까운 인물로 등장하는 소류의 단호한 답에 따르면 "그럴 수 없다." 욕망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은 미우라 아야코의 세계를 다시 만나야 할 것이다.
"이런 설교처럼 보이는 얘기는 거북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오산이야. 인간은 인간을 사랑하는 일 따위는 할 수 없어. 호색이라든가 정욕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 179쪽.
"두 사람에게 사랑이란 결국 좋아한다는 감정에 지나지 않았다. /.../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려면 얼마나 굳센 의지와 이성의 협력이 필요한지 두 사람은 몰랐다. /.../ 그것은 무너지기 쉬운 연약한 감정이었다. 뭔가 사건이 벌어지면 바로 증오로 변하는 감정이었다." 223쪽
주인공 미나미 신이치로는 미술교사 후지시마 소키치의 권유에 따라 그림을 그리게 된다. 후지시마와 함께 후지시마의 아내인 미에코를 그려 전람회에 출품한 신이치로는 협회상을 받게 된다. 반면 후지시마는 같은 전람회에 출품했지만 낙선한다. 이후 후지시마와 신이치로의 사이에는 묘한 기운이 감돌게 된다.
미에코에게 마음이 끌리는 신이치로, 신이치로에게 그림 지도를 하고도 실력이 추월당하자 질투를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후지시마, 신이치로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미에코, 미에코와 남편의 사이를 의심하는 신이치로의 아내 유키, 이들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며 갈등과 애증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인간이 가진 여러 감정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인물들은 때로 상대를 질투하고, 증오하고, 사랑한다. 후지시마의 죽음을 둘러싸고 신이치로와 후지시마, 두 남자의 우정 밑에 숨겨져 있던 질시와 증오, 분노와 살의, 기만과 위선이 한 꺼풀 한 꺼풀 드러난다. 빨려 들어가게 만드는 세밀한 심리묘사, 인간의 본성을 성찰하게끔 이끄는 흡인력이 놀랍다.
등장인물들은 각자 평온하고 단정한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지만 그 이면엔 소용돌이치는 번뇌, 갈등, 절망, 허무, 불안 등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빨려드는 스토리텔링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도 위대한 구도를 찾는 구도(求道)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작가는 인간이 ‘사랑’이라고 믿는 감정의 이면을 해부하면서 ‘자아의 구도’를 다시 잡도록 독자를 유도하고 ‘위대한 의지를 가진 존재’의 ‘큰 사랑’을 향해 얼굴을 들게 한다.
아름다움이란 '하나'가 되는 것
한편 『자아의 구도』는 유화 「푸른 기모노를 입은 여인 」을 둘러싸고 후지시마 소키치와 미나미 신이치로, 두 남자의 예술관이 부딪치는 소설이기도 하다.
"아름다움이란 절대적인 것이야!" 후치시마의 예술관을 요약하는 말이다. 절대미를 추구하는 자세는 고전주의적인 예술관에서 온다. 절대미를 신봉하는 후지시마에 비해 신이치로는 주정주의적 예술관을 가졌다. 신이치로는 사람 마음의 움직임과 용솟음침을 그릴 수 없음을 한탄한다. "이 세차게 움직이는 물체, 어떤 구도(構圖)를 잡아서 어떻게 선을 긋고 무슨 색을 칠해야 할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미에코의 얼굴선을 독특한 선으로 재현해 낼 수 있었다. 신이치로만의 독보적인 경지가 나온다
미의 절대성을 맹신하는 후지시마는 절대미를 재현하려고 노력하는 완벽주의의 포로이다. 실패와 좌절 앞에서는 자살도 불사한다. 반면 신이치로는 자신의 내면을 그리고자 노력한다. 개성론을 존중하는 낭만주의자이다. "자기는 누구를 위해 그림을 그리는 걸까?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단지 자신을 위해서일 뿐이다. 아름다움을 그저 추구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로 표현하려는, 본능과도 같이 강렬하게 자기를 드러내려는 욕구일 뿐이다. 자신이 그림을 통해 호소하는 행위에 사람들이 공감해 주기만 하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87쪽
게다가 신이치로는 감상자들의 평가를 주목한다. 사회적 제도로 자리 잡은 예술계의 평판에 기대는 인간이다.
"(만약, 내 그림을 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과연 자신은 그림을 계속 그릴까? 아마 누구 하나 보지 않는 그림을 그릴 리는 없으리라. 가령 그린다고 쳐도 지금처럼 열정을 다해 그리지는 않을 것이다." 187쪽
후지시마와 신이치로는 예술을 추구하는 자, 완벽한 작품을 향한 구도를 잡고자 하는 예술가들인 점에서는 닮았다. 또 이 두 인물은 타인과의 관계에 실패하고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파산하는 점에서도 닮았다. 후지시마는 자살로 자폭한다. 신이치로는 자살 시도를 한 아내 유키를 구하면서 자신도 모른 채 유화 「 푸른 기모노를 입은 여인」을 발로 밟아 찢는다.
예술은 이 둘을 구원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들 자신을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악'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하지만 미우라 아야코는 예술의 한계를 드러내는데 그치지 않고 화가 소류의 입을 빌려 '아름다움'에 대한 그녀만의 정의를 내린다.
"선생님, 아름다움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다. '하나'요? 그렇다. 그 말이 이제야 겨우 이해될 듯했다. 아름다움이란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있는 게 아니다. 조화를 이루고 섞여 구별되지 않으며, 어떤 하나의 소재가 다른 소재를 밀어내지 않고 서로서로 모두 살려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름다움이라고 소류가 말했다." 188쪽
서로서로 모두 살려서 '하나'가 되는 것, 이러한 경지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을까?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타인과의 관계에 실패하고 떠나거나 방황한다. 과연 그들은 그 실패를 껴안고 ‘새로운 시작’에 나설 수 있을까? 오늘도 자아의 구도 構圖 를 새롭게 다잡으며 구도 求道하는 것만이 그 해결책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