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을 연인같이 사랑한 지도자, 드골

by 감자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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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Great Man)을 읽다


어른이 되면 위인전을 읽지 않는다. 위대한 인물에 대한 경외심을 상실했기 때문일까. 어느 날, 좁은 세계에서 내 문제만 갖고 고민하며 사는 소인이 이상을 품고 대의를 위해 싸우는 삶을 만난다. 감동이 밀려온다. 새로운 눈을 뜨는 계기가 된다.


인터넷 서점에서 우연히 『드골, 프랑스의 자존심과 자유를 지킨 위대한 거인』(마이클 E.해스큐 지음, 박희성 옮김, 플래닛 미디어, 2012)을 만났다. 오래전 공부했던 프랑스문장 강독 강좌의 교재에는 드골 회고록 요약문이 실려 있었다. 군인 출신 대통령의 문장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놀랐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회고록에서 드골은 조국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다. “어릴 적 내게 프랑스는 동화책 속에 나오는 마법에 걸린 공주와 같았습니다. 용감하고 지혜로운 왕자가 달려와서 마법을 풀어주고 위험에서 구해주어야 할 아름답고 연약한 공주..... 꿈 속에서 나는 언제나 공주를 구하는 왕자였습니다.”


나는 책을 샀다. 지금은 전 세계가 사회나 국가의 장벽 없이 하나의 지구촌으로 움직이고 있는 시대이다.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추구한 구(舊) 시대의 지도자, 그의 생애가 지금 내게 그리고 이 시대에 역사 교과서를 넘어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런 호기심과 함께 책을 읽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드골을 새롭게 만났다. 어린이가 아닌 어른이 위인전을 읽으면서 위인 안에 ‘인간’을 보았다. 보통 사람과 다름없는 ‘인간’을. 말 그대로 Great! 멋진 만남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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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함을 추구한 지도자, 위대한 유산을 남기다


이 책은 프랑스 제5공화국을 출범시킨 주역이자 제5공화국의 첫 번째 대통령 샤를 드골(1890-1970)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전쟁사 전문지 WWII 히스토리 매거진의 편집자인 저자 마이클 E.해스큐는 미국의 패권을 강력하게 견제하며 협상과 반목을 거듭했던 노회한 책략가로서의 드골의 모습도 미국인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서술했다. 평전을 통해 만난 드골은 그가 남긴 업적보다 참으로 성실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았던 ‘인간’인 점에서 돋보였다.


자신의 운명을 국가의 운명과 동일시한 조숙한 어린이, 목표에 대한 거의 종교적 확신을 가진 복잡한 성격, 프랑스에게는 어떠한 친구도 없고 오직 이해관계만이 있을 뿐이라고 믿는 냉정한 현실 인식, 다운증후군 장애를 앓다 20세에 죽은 딸 안느에게 쏟았던 극진한 애정, 대혁명 이후 좌우 대립과 다당제로 혼란이 거듭됐던 정치에 강력한 대통령 집권제로 민주주의의 굳건한 토대를 다져놓은 대통령, 프랑스 헌정사에서 유일무이하게 비상대권을 행사했던 카리스마, 다섯 번의 국민투표로 자신의 신임을 심판대에 올리는 과단성,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았던 그의 삶이 한 장 한 장 차곡차곡 펼쳐진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위인’이란 ‘위대함’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간단한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


여기서 발견한 위대함은 우리 모두가 흔히 추구하는 권력이나 부, 명예와 다른 차원의 추상명사였다. 권좌에서 물러난 뒤 그는 고향 콜롱베 레되제글리제의 시골집에서 회고록을 집필하며 아내와 산책하고 이웃과 담소하며 평범한 삶을 살았다. 미리 작성해 둔 유언에 ‘나는 국장을 원하지 않는다’고 썼다. 자신의 장례식에서 일체의 거창한 의식을 금했다. 그의 무덤은 딸 안느가 묻혀 있는 고향의 가족 묘소에 자리잡았다. 묘비명은 “샤를 드골, 1890-1970”뿐이었다. 이런 지도자를 가진 국민은 행복하다. 프랑스 제5공화국의 5대 대통령 자크 시락은 자신을 따라다니는 수많은 수식어들 중에서 ‘드골주의자’라는 수식어가 가장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위대함을 추구한 지도자, 값을 매길 수 없는 위대한 유산이 아닐 수 없다.


1940년 프랑스 북부는 독일 기갑부대의 전격전에 초토화된다. 파리는 히틀러 나치군의 개선행진 무대가 된다. 프랑스 전체가 나치의 군화에 짓밟힐 위험에 처했다. 프랑스가 연약하고 상처받은 모습으로 몰락하는 동안 드골은 일관되게 용기 있는 행동, 영웅적인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지리멸렬한 프랑스 군대에서 그는 지휘계통을 뛰어넘어 국방차관으로 임명됐다. 패배주의자들 속에서 드골은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독일의 꼭두각시가 될 것이 뻔한 정부에서 국방차관으로 일하는 대신, 런던으로 도망쳐서 스스로를 자유 프랑스의 지도자라고 선언했다. 한 달 사이에 기갑사단의 지휘관에서 정부의 차관이 되었다가 임시 정부의 수장으로 부상한 것이다. 그러나 참모, 군대, 자금은 물론 국가도 없었다. 그는 런던 BBC 방송국의 마이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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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전투에서 패배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에서 패한 것은 아닙니다…오늘은 기계화된 힘 앞에 무너졌지만 우리는 언젠가 미래에, 보다 우월한 기계력으로 적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운명은 바뀔 것입니다...어떠한 일이 생기더라도 프랑스에서 저항의 불꽃은 꺼져서는 안 되며 꺼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과 마찬가지로 내일도 런던에서 라디오 연설을 할 것입니다.”


이 음성은 패전국 ‘프랑스’의 꺼져가는 불씨를 살렸다. 목숨을 걸고 저항하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저항군)가 결성됐다. 1944년에 연합군이 노르망디 해안에서 상륙작전을 펼칠 때 레지스탕스는 10만 명에 달했고 프랑스 전역에서 무장투쟁을 펼쳤다. 전쟁에 지고 궁핍한 조국이 강한 국가로 변할 때까지 드골은 패권국들과의 관계에서 요지부동 거만하고 비타협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강한 프랑스를 만들기 위한 유럽 속 이익 조정과 화합에도 과감했다. 2차 세계대전 독일 침략의 최대 피해국이었던 프랑스의 지도자 드골은 1962년 독일을 방문한다. “경제, 국방, 문화 어느 분야든 독일엔 좋고 프랑스에는 해가 되는 게 있습니까. 반대로 프랑스엔 득이 되는데 독일엔 해가 되는게 있습니까”라고 연설했다. 그리고 아데나워와 함께 거리를 행진하고 독일 국민과 악수했다.


저자는 상관과 동료에게 미움을 받았던 드골, 영국과 미국의 골칫거리였던 드골, 권력을 둘러싼 프랑스 특유의 복잡한 당파 정쟁 속에서 여러 차례 저격당하고 암살의 위험을 넘기는 드골의 삶을 간략하게 평가한다. “이 지도자가 없었다면 패배국 프랑스는 나치에 점령당하거나 열강에 지배당하고 마지막에는 영국에게 단번에 지위를 뺏기는 단역배우로 전락했을 것이다.”라고. 실제로 드골은 절망에 빠진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한 ‘왕자’로 살았던 것이다.


충실하게 살기 위해 전력 투구한다면 우리 모두는 위인


대다수 위인들의 공통점은 생애 내내 기본적인 인간적 덕목들 몇 가지를 충실하게 실천한 사람들이라는 점에 있다. 사랑, 비전, 용기, 의지, 지혜, 인내심 등이 그것이다. 드골도 위인(Great Man)의 이런 고전적 개념을 충실히 실천한 사람이었다. 그 삶의 두 축은 신앙심과 애국심이었다. 어릴 때부터 개인의 운명을 국가의 숙명과 동일시하는 조숙함은 타고난 것일까. 이 독서에서 한 인간의 위대함이 가족과 교육에서 싹튼다는 것을 발견한 것도 큰 수확이다.


드골(Charles de Gaulle 1890-1970)은 프랑스에서 예술, 문학, 음악, 철학이 크게 번성한 벨 에포크(Belle epoque 아름다운 시절)에 태어났다. 그러나 프랑스 국민은 20년 전 발발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보불전쟁)에서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군대에 당한 굴욕적인 패배를 잊지 않고 있었다. 부모 세대는 자녀들에게 애국심과 신앙심을 고취시켰다. 드골은 보수적인 중산층 카톨릭 집안의 셋째 아이로 태어났다. 아버지 앙리 드골은 교육자였다. 어머니 잔 마리 드골은 독실한 신앙인이었다. 그의 가문 사람들은 수백 년 동안 군에 복무해왔다.


벨에포크 시대는 프랑스에서 청소년 문학이 융성 발전한 시대이기도 하다. 초중등 교육 교재에 위인전들이 집중 도입됐다. 그의 가정은 가족 간 유대와 애정이 깊었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기도해주었고 조국에 대한 열정을 주입했다. 어린 드골은 프랑스 역사책을 읽었고 스스로 연구를 할 정도로 전투와 군대 이야기에 몰입했다. 학교에서 그는 철학, 역사, 문학을 좋아했다. 파리에 있는 학교에 입학한 15세의 드골은 소설을 썼다. 전쟁에 휘말린 유럽의 미래 이야기였다. 독일 3개 야전군이 프랑스에 진격해왔고 20만 병력을 갖춘 강력한 프랑스 군대가 전선에 배치되어 전투준비에 임했다. 이 병력과 포를 지휘하는 소설 속 프랑스 장군의 이름은 드골 자신이었다.


한 개인이 개인의 차원에 머물러 사느냐, 사회적 차원으로 사느냐, 국가적 차원에서 사느냐, 인류애의 차원에서 사느냐에 따라 그 삶의 크기는 달라진다. 그러나 21세기 대중사회는 소인으로 사느냐, 위인으로 사느냐의 분기점이 사라진 시대가 아닌가. 하루를 충실히 살기 위해 자신이 가진 덕목을 최대한 발휘하려고 노력하는 우리 모두가 작지만 큰 위인(Great Man)이기 때문이다.


드골은 평생 ‘위대함’을 추구했다. 사랑하는 조국이 위대함을 잃었기 때문에 그는 위대함을 추구한 것이다. 평생 동안 조국을 애인같이 사랑한 드골, 그에게 위대함의 추구는 사랑의 방식이었다. 우리가 위대하지 않은 것은 위대함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위대함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드골의 평전을 통해 내가 도달한 결론은 간단하다. “무엇인가 사랑하는 인간은 위대한 인물이다.” 사랑이 그 인간을 위대함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대상이 개인이든, 가정이든, 조국이든, 신이든, 아니 어떤 사물이든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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