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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말들로 가득 채워야 하는데

by 감자나무

푸른 간판의 착한 구름색 글씨. 지하철역의 프린트샵으로 찾아갈 때에는 하얀색 옷을 챙겨 입고 싶다. 어두운 옷을 입은 나는 하얀 종이와 어울리지 않는다. 내 머릿속에서 태어난 단어들의 조합을 순수한 종이에 옮길 필요성이 생겼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이 감정을 오래 품고 있으면 망설임도 머지않아 찾아올 테지. 그래서 내가 거들떠도 보지 않은 이유를 먼 곳에서 들고 왔어! 푸른 하늘에 먹구름과 밤은 어울리지 않아. 푸른 하늘로 아니, 개찰구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던 하얀색 옷을 입은 사람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나는 연재 주기를 매주 월요일로 잡았으니까 아직 시간이 있었어. 종이로 보는 것과 화면으로 보는 것은 다르지. 전자책으로 사도 종이책으로 사고 싶은 책들이 넘쳐나지 않아요? 딱딱한 글자와 형광펜 말고 부드러울 줄도 아는 연필로 지렁이를 스무 마리 정도 그리는 거야. 평생 다크 모드로 화면을 보고 글을 쓰니? 어두운 옷을 입고 하얀 화면을 본다. 그곳엔 지렁이가 살지 않는다. 저장이 될 줄 알았는데 발행이 된 것을 취소하지 못했다. 에라이 모르겠다. 지렁이가 없는 땅, 달팽이가 없는 배추와 부추. 휴식시간마다 어두운 방에 철퍼덕 누워 눈을 감고, 잠을 자다가 집으로 돌아갈 무렵이 되어서야 지렁이도 달팽이도 개미도 없던 글에 바싹 마른 묘목 여러 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고- 이렇게나 허술한 시작이라니!

시든 나무의 잎을 손으로 만져보다가 삽을 들고 그 주변의 흙을 파내어 뿌리째 다시 들어 올렸다. 축축해진 등에 옷이 찰싹 붙었고, 따뜻한 햇볕이 농장을 비추기 시작하니 망설일 시간을 두고 싶지 않았다. 삽을 질질 끌고 다니면서 글자가 되지 않는 선을 그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주인의 손길을 받은 적은 없지만 부드러운 털로 동네의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강아지 한 마리가 똥을 싸던 자리를 파내었다. 똥과 흙을 섞었어. 나는 네가 어떻게 될지 몰라. 물을 열심히 주겠지만 햇빛이 먼저 그 물을 다 마실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전의 자리보다 지금의 자리가 괜찮아서 저 강아지가 이 자리를 화장실로 삼지 않았을까. 나는 양지바르고 서늘한 곳에 똥을 싼 것뿐인데! 간식으로 챙겨 먹으려던 삶은 계란을 까서 강아지와 나누어 먹었다. 수첩의 새로운 페이지에 수정한 이야기의 구조를 뜯어보았다. 언젠가 또다시 자리를 옮기게 될 것 같다는 가벼운 직감이 지워지지 않았다. 불안으로 그 크기가 커지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이 연결이 아슬아슬해 보여도 이후의 이야기들이 그에게 뿌리가 튼튼해지는 비료를 선물해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수첩을 덮을 수 있었다.

귀여운 글을 쓰고 싶다. 아니, 내 입에 귀여운 말들을 가득 넣고 꼭꼭 씹어 먹어야 내일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생각을 비우고 썼던 일기를 다시 돌려보는 짓을 하지 않았지만 번호를 부여하고 특정한 제목을 넣은 글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날짜가 제목이 된 글을 살펴보았다. 공통적으로 스며들었던 분위기와 문장을 보고 싶지 않아도 집어낼 수 있었다. 사람은 결국 정도와 시간의 차이가 있어도 생각한 대로, 목소리를 내보낸 대로, 하얀 백지에 파낸 글대로 살게 된다. 나의 의지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니? 순간과 풍경 속에서 네가 선호하는 네 눈에 유독 반짝이거나 편안한 빛들에 이끌리는 거지. 선택에서 너의 주권을 찾을 순 있겠지만, 보기는 네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네 눈으로 찾아 손으로 끄집어낼 수 있겠지만 그래, 귀여운 것들을 찾아낼 수도 있겠지. 어디에서든 깊이 파묻혀버리기를 말리지는 않을게. 다만 모든 감정들을 섞어. 분산투자가 주식에만 있을 거라는 생각을 버려. 모든 것이든 가져다 붙여 너를 지켜야지. 험난하다 말하면 결국 험난해질 세상에서 말이야. 다 네가 이름 붙인 대로 되는 거야. 불평할 시간에 밧줄을 찾아. 살고 싶다. 살 것이다. 지금을 살래.

기쁨과 슬픔 안에 머무는 사람에게 나는 지금이 너무 어렵다는 말을 건네면 흔들리는 눈을 보이며 나도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대답하는 사람을 꼭 안고 싶었다. 딱딱한 테이블에 손을 가져다 대고 가볍게 그림을 그렸다. 천천히 내가 보지 못한 세계를 묘사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씩씩하게 서있는 당신에게 조만간 달콤한 막걸리를 마시자는 이야기를 건네자 지금처럼 이야기하면 무거웠던 지금이 별것 아닌 것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다행이라는 표정을 보여주었다.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풍경이 어떤 방식으로든 묘사된다면 이미 당신은 그곳에서 나온 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해요. 우연히 떨어진 여러 개의 조각들로 전체를 상상하고자 노력할 수 있겠지만, 직접 전체를 목격한 눈으로 그려낸 것과는 다르지요. 나갔다가 들어올 수만 있어도 괜찮아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잖아요. 지금의 나를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제의 나를 아니, 나도 생생하게 기억하지도 못하는 과거의 나를 보여주며 엉엉 울고만 있을 필요는 없지. 오늘 귀여운 글은 실패했지만 내일이 찾아올 것을, 지금 여기 머물고 있는 나는 언제든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살고 싶다고 했지. 실패로 실을 만들어 옷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재미로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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