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임말로 대화하는 아이들> 10화 : 과학실험을 통해 아이들이 얻은 것
5학년 2학기 과학 시간, 비생물 환경 요인이 생물이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했다. 실험에서 같게 해야 할 조건과 다르게 해야 할 조건, 즉 변인 통제에 대해 먼저 알아본 뒤 실험을 설계했다. 패트리 접시 4개에 이름표 (가)~(라)를 붙인 뒤 탈지면을 깔고 싹이 난 보리를 똑같은 개수로 올려놓았다.
패트리 접시 (가)는 물을 충분히 주고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두었다. 패트리 접시 (나)는 물을 충분히 주되 어둠상자를 씌웠다. 패트리 접시 (다)는 물을 주고 냉장고 안에 넣었다. LED 등을 켜두어 냉장고 안에서 햇빛을 대체했다. 마지막 (라)는 물을 주지 않은 채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두었다. 일주일 동안 싹이 난 보리가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했다. 아이들은 직접 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과학 실험을 좋아한다. 이번 실험도 신이 났다.
“선생님, 보리싹에 물 주기 제가 하면 안 될까요?”
예쁜 사람이 자진했다. 담임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다른 친구들도 우수수 손을 들며 ‘저요, 저요’를 외쳤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물 주기 담당을 정할까 하다가, 자발적 실천을 제안했다.
“보리싹에 물 주는 사람 정하지 않을게요. 여러분이 사이좋게 알아서 보리싹 잘 돌보세요.”
담당을 정하지 않아 아무도 보리싹을 돌보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잠시 잠깐 들었다. 그러나 아이들을 믿어보기로 했다.
담임은 왜 그런 불필요한 걱정을 했을까? 아이들은 일주일간 정성껏 보리싹을 돌봤다. 교실에 마치 귀한 손님이라도 온 것처럼, 교실에서 신생아를 보살피는 것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보리싹을 들여다보고 열심히 물을 주었다. 일찍 오는 사람이 아침에 물 주고, 점심시간에 함께 들여다보고, 생각나는 사람이 하교 전에 또 물 주고. 담임이 걱정했던 무책임한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물을 너무 많이 주어서 싹이 썩을까 걱정이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패트리 접시 (가) 보리싹은 키도 크고 푸르게 잘 자랐다. 중간에 주말이 있었음에도 용케 잘 버텼다. 금요일 하교 전 아이들이 물을 듬뿍 준 덕분이었다. 월요일에 아이들이 실망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담임도 금요일 퇴근 전 흥건하게 물을 주었다. 햇빛이 가장 잘 드는 곳에 패트리 접시를 옮겨놓기도 했다.
어둠상자를 씌워놓은 패트리 접시 (나)의 보리싹은 초반에는 (가)와 비슷하게 키가 자랐다. 그러나 곧게 뻗은 튼튼한 (가)와 달리 비실비실 연약했다. 색깔도 푸르지 않았다.
“뜨악! ○○ 씨, 큰일 났어요. 이것 좀 보세요.”
월요일 아침 등교하자마자 어둠상자를 살포시 들춰보던 △△ 씨가 화들짝 놀라며, ○○ 씨를 불렀다. 두 사람은 울상이 되었다. 금요일에 물을 듬뿍 주었지만, 주말이 지나고 오니 어둠상자 속 보리싹은 이내 축 늘어져 있었다. (나) 보리싹을 통해 아이들은 식물의 성장에 햇빛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냉장고에 있던 패트리 접시 (다)는 푸르고 곧게 자랐다. 그런데 (가)와 비교했을 때 현저하게 키가 작았다. 아이들이 ‘꼬마 보리싹’이라 부르며, 키가 자라지 않는 원인을 분석했다.
“냉장고에서 너무 추워서 몸을 웅크리고 있느라 키가 자라지 않았나 봐요.”
물과 빛이 있었지만, 온도가 식물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했다.
물을 한 번도 먹은 적 없는 (라) 보리싹은 실험 설계 바로 다음 날부터 쓰러졌다. 계속 햇빛 드는 창가에 있어 금세 말라죽었다. 아이들은 (라) 보리싹이 불쌍하다고 했다. 물을 주고 싶은 마음을 일주일 동안 꾹 참았다. 식물의 성장에 물이 절대적인 요소임을 깨달았다.
“보리싹 실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무엇인가요?”
“식물이 자라는 데 햇빛, 물, 온도가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보리싹을 관찰하고 보살펴주어서 비생물 환경 요인이 생물에 미치는 영향 실험은 대성공이었습니다. 이제 실험 도구 정리할게요.”
“보리싹아, 안녕! 잘 가.”
모두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그런데 몇몇 친구들이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선생님, 잠시만요. 보리싹 더 키우면 안 될까요? (가)와 (다)는 아직 살아있는데, 어떻게 버려요? (나)는 햇빛 받게 하고, (라)에도 물 주면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요?”
아이들의 마음이 너무 고왔다. 과학실 실무사님께 패트리 접시를 학급에서 며칠만 더 사용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마음 예쁜 아이들의 보리싹 키우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과목은 인성이었다. 교과서도 없이, 담임의 지도도 없이 학생 주도형 생명 수업이 진행되었다.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보리싹에 물 주고, 예쁜 말 들려주고, 교실에 들어오는 햇볕 따라 패트리 접시를 이리 옮기고 저리 옮겼다.
아이들은 날마다 쑥쑥 자라는 (가) 보리싹을 신기해했다. 냉장고에서 교실 창가로 자리를 옮긴 (다) 보리싹은 여전히 (가)보다는 키가 작았지만, 나름의 속도로 무럭무럭 잘 자랐다.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물, 온도, 햇빛 등 비생물 요소가 충분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에 아이들의 관심과 사랑이 더해졌다. 보리싹이 행복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아이들은 다 죽어가는 (나)와 회생 불가능해 보이는 (라) 보리싹도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다시 살려보겠다며 정성으로 보살폈다. 3일이 지났다. (나) 보리싹은 결국 생을 마감했다. (라) 보리싹은 아무리 심폐소생술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제 (나), (라) 패트리 접시는 정리해야겠지요?”
“보리싹아, 안녕! 잘 가.”
아이들은 손을 흔들며 (나)와 (라)를 보내주었다.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 놓아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몇 번을 물었다.
“선생님 그런데 얘네들을 쓰레기통에 진짜 버려요?”
이제 교실에 (가)와 (다) 보리싹만 남았다. 패트리 접시에 깔린 얇은 탈지면에만 의지하고도 보리싹은 잘도 자랐다. 땅속에 깊이 뿌리내린 보리밭의 보리처럼 촘촘한 탈지면 구멍구멍 사이를 뿌리가 꽉 움켜쥐고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생명의 강인함을 느낄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나고, 추석 연휴가 다가왔다. 아이들은 5일 동안 교실에 남겨질 (가), (다) 보리싹을 걱정했다.
“선생님, 제가 보리싹 집에 가지고 가서 키우다가 추석 지나고 다시 가지고 오면 안 될까요?”
누군가 제안했다. 또 담임의 대답이 나오기도 전 우수수 손을 들어 “저요, 저요.”를 외쳤다. 유리 패트리 접시를 가정으로 가지고 가는 것은 위험했다. 패트리 접시 없이 탈지면에 의지한 보리싹만 들고 가는 것 역시 여러모로 불안했다.
“우리 하교 전에 물 듬뿍 주고, 햇빛 제일 잘 드는 곳에 놓고 가도록 해요. 대신 여러분이 보리싹에게 연휴 동안 잘 지내라고 예쁜 말 해주세요.”
“5일 동안 잘 지내.”
“보리싹아, 해피 추석!”
“연휴 지나고 우리 올 때까지 절대 시들면 안 돼.”
아이들은 보리싹에게 예쁜 말을 건네고, 즐거운 추석을 맞이했다.
5일의 긴 연휴가 끝나고 등교했다. 아이들은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보리싹 앞으로 갔다.
“으앙! 어떻게 해요? 물이 부족했나 봐요.”
“외로워서 죽었을 수도 있어요.”
보리싹 (가)와 (다)는 5일간의 목마름과 배고픔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이별을 고했다.
“보리싹아, 안녕! 잘 가.”
우리 반은 거의 20일에 가까운 보리싹과의 동거를 끝냈다. 그런데도 아쉬운 한 명이 담임에게 물었다.
“선생님, 저 (가), (다) 이름표라도 가지면 안 될까요?”
교과서 과학 실험에서 출발한 생명과 함께 한 시간. 아이들이 배운 것은 비생물 환경 요인이 생물이 미치는 영향만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 마음속 꿈나무에는 보리싹에 관심 두는 생명 존중의 새싹과 보리싹을 걱정하는 공감의 잎이 돋아났겠지? 보리싹을 돌보는 정성 꽃이 피어나고, 보리싹을 보내줄 수 있는 성숙 열매를 맺었으리라. 식물은 햇빛, 물, 온도라는 환경 조건이 모두 충족해야 잘 자란다. 식물처럼 귀하고 예쁜 우리 아이들도 관심, 이해, 사랑, 칭찬이라는 성장 요소 부족함 없이 받으며 무럭무럭 성장하기를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