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품 Oct 25. 2024

우리 선생님 화났다.  

<높임말로 대화하는 아이들> 18화 : 교사가 화내지 않는 방법

우리 선생님 화났다.   

  

높임말을 생활화하며 학생들에게 큰 변화가 있었다. 예쁜 말은 이타적인 착한 행동을 만들고, 긍정적인 사고로 이어졌다. 친구를 도와주고 학급을 위해 봉사를 열심히 할 만큼 아이들 마음에는 여유가 생겼다. 이미 자기 할 일을 다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부터 책임감 있게 완수했다. 자기 주도성이 향상되었고, 적극적으로 학교생활에 임했다. 담임이 선창 하면 아이들이 답하는 말이 있다. 

“내가 잘하면?”

“모두가 행복하다.” 

실제로 그랬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과 노력이 모여 더불어 행복한 존중과 배려가 넘치는 학급이 형성되었다.

      

아이들은 마음이 넓어지고 유연해졌다. 상대의 입장을 고려할 줄 알았고, 작은 일에 버럭 화를 내지 않았다. 이 현상은 비단 아이들에게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마음이 커지고 말랑해진 것은 담임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에게 높임말로 이야기하면서 담임의 말도 부드러워졌다. 친절한 말투에 부정의 내용을 담을 수 없었다. 아이들의 장점을 바라보고, 잘한 점은 크게 칭찬했다. 물론 높임말과 함께 학급 특색으로 ‘1일 1 칭찬 제도’와 ‘행복 일지’를 병행하고 있는 덕분이기도 했다. 의도적으로 아이들을 칭찬하기 위해 노력했다. 칭찬도 훈련이 필요하다. 자꾸 하다 보니, 칭찬의 순간을 잘 포착했고, 칭찬 표현도 다양해졌다. 칭찬이 습관처럼 나왔다. 담임의 칭찬은 아이들을 춤추게 했다. 더 많이 칭찬받기 위해 더 열심히 했다. 담임은 노력하는 아이들을 더 칭찬할 수밖에 없었다. 칭찬 선순환이었다. 

    

높임말을 쓰면서 아이들에게 화내는 날이 거의 없었다. 알아서 잘하는 아이들에게 화낼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매주 목요일 말하지 않아도 6교시가 끝남과 동시에 제출 공간에 배움 공책이 착착 쌓였다. 행복 일지 검사하는 금요일에는 아침부터 칭찬받자마자 행복 일지를 정리해서 제출했다. 점심시간까지 해도 된다고 해도, 누가 먼저 칭찬받고 행복 일지를 내는가 경쟁 아닌 경쟁을 하기도 했다. 1등으로 그 주의 행복 일지를 완료한 이의 표정은 그렇게 당당할 수가 없었다. 채점한 단원 평가 시험지를 나누어준 다음 날은 오답 정리 공책을 제출해야 했다. 시험지에는 부모님 말씀까지 받아와야 한다. 아이들 과제뿐 아니라, 부모님 숙제까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침이면 부모님 말씀이 적힌 시험지가 오답 공책에 끼워져 교사 책상 위에 차곡차곡 쌓였다. 담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반은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다. 모든 루틴이 습관이 되어 자동으로 이루어졌다. 1년 내내 그랬다. 해마다 그랬다.

     

코로나 이후 학습 부진 학생 수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담임은 하나라도 알게 하려고 기본 개념부터 열심히 반복 설명한다. 아이들 얼굴에 이해의 빛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 답답한 마음에 담임 목소리가 커질 때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화내는 것이 아니다. 담임의 열정 표현이다. 그렇다면 높임말로 대화하는 아이들은 절대 담임을 화나게 하지 않을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교육과정에 ‘높임말 교과’를 새로 만들거나, 각 학년 도덕 교과에 ‘높임말 단원’을 삽입하거나, 교사 법정 의무 교육에 ‘높임말 사용 지도법’을 추가해야 할 일이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왜 담임이 화날 일이 없겠는가? 높임말 쓰는 담임은 상당한 잔소리쟁이이며, 해마다 학년에서 유명한 VIP 금쪽이들을 만났다. 

    

높임말을 쓰며 좋은 점은 아이들에게 화가 나도 소리 지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담임의 격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높임말로 대화하는 아이들은 다음의 단계를 통해 담임의 감정 변화를 빠르게 캐치하고 살길을 모색한다.

     

<1단계 : 싸늘한 눈빛>

나를 보는 선생님의 눈초리가 싸~하다. 선생님과 눈을 마주칠 수 없다.

생각하자. 또 생각하자. 내가 뭘 잘못했지? 

    

<2단계 : 성까지 붙인 이름 세 글자 △□◇ 씨>

선생님이 나를 ‘△□◇ 씨’라고 차갑게 불렀다. 평소 부드럽게 부르던 ‘□◇ 씨’가 아니다.

아뿔싸! 또 나만 과제 제출 안 했나 보다. 우리 반 친구들 정말 너무 빠르다.  

   

<3단계 : 존칭 빠진 이름 □◇야>

나의 이름에서 존칭이 빠져버렸다. 선생님은 ‘□◇ 씨’ 대신 ‘□◇야’라고 나를 불렀다.

큰일 났다. 우리 선생님 화났다. 어제 수업 끝나고 운동장에서 있었던 일을 선생님이 알아 버렸나 보다.     


<4단계 : 존댓말이 아닌 평어 어미>

“어제 운동장에 남아서 축구했어?”

“우리 □◇ 씨, 어제 운동장에 남아서 축구했나요?”가 아니다.

이미 선생님은 내가 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사실대로 실토하자. 진실만이 살길이다.

선생님이 나한테만 작은 소리로 물었는데, 학급 전체에 정적이 찾아왔다. 

    

<5단계 : 경고 멘트>

“정신 차리고 제대로 살자.”

무섭다. 친절한 우리 선생님은 어디로 갔을까? 

이제 5분 내로 내 행각이 부모님 귀에 들어가겠다. 선생님의 철저한 가정 연계 시스템으로 우리 부모님은 내가 학교 안팎에서 저지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난 오늘 집에 가서 죽었다.   

  

<6단계 : 침묵>

선생님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반 친구들이 선생님 눈치만 본다.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각자 할 일을 찾아 하고 있다. 잘못은 내가 했는데, 친구들이 공포에 떨며 얼굴이 사색이다. 난 대역죄인이다. 앞으로 절대 운동장에 남아서 사고 치지 말아야지. 

    

담임은 흥분하지 않아도 된다. 이러쿵저러쿵 많은 말 할 필요 없다. 소리 지를 이유가 전혀 없다. 그래도 아이들은 안다.

‘우리 선생님 화났다.’

담임의 눈빛만 바뀌어도, ‘□◇ 씨’ 대신 ‘□◇야’라고만 불러도 아이들은 잘못을 뉘우친다. ‘□◇ 씨’가 연인들 사이의 ‘자기야’ 수준이라면 ‘□◇야’는 법정에서 최후의 진술을 요구하며 판사가 피고인을 부르는 느낌이다. 담임 입에서 높임말이 아닌 반말이 나온다면 그날은 아주 큰일이 났음을 의미한다. 담임의 침묵은 반 전체를 살얼음판으로 만든다. 이제는 누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바르게 앉아 조용히 담임이 마음에 들어 할 예쁜 짓을 하며, 담임의 화가 누그러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기본값이 친절한 높임말이다. 그것을 빼면 화가 났다는 뜻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감정 표현은 없다. 만약 기본값이 반말이라면 담임이 화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그보다 수위가 높은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 예전에 나도 그랬다. 담임이 화난 것을 알리기 위해 목청 높여 아이들을 다그치고, 협박 발언을 했다. 훈계하다가 흥분해서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부정 언어로 하는 훈육은 아이들에게 전혀 효과가 없었다.      


높임말을 쓰며 아이들이 달라졌다. 담임이 심하게 화낼 일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담임의 화남 정도 6단계까지 가는 일은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이다. 그래도 간혹 화날 일이 발생한다면 담임은 우악스럽게 소리 지르지 않아도 된다. 낮은 목소리로 우아하게 한마디만 하면 끝이다.

“□◇야, 어제 운동장에 남아서 축구했어?”

말의 내용이 아닌 뉘앙스를 바꾸는 것이다. 높임말이 반말로 바뀌는 순간 아이들은 직감한다.

‘우리 선생님 화났다. 큰일 났다.’   

  

몇 해 전 우리 반 금쪽 씨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학급에서는 곱게 높임말 쓰고 담임 앞에서는 순한 양이던 금쪽 씨는 밖에만 나가면 다른 학급 친구들과 합심하여 용감하게 기세를 펼쳤다. 전날 학교 밖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해결하며, 금쪽 씨는 담임의 화남 정도 5단계까지 경험했다. 하교 후 담임의 촘촘한 가정 연계 시스템으로 인해 이미 사건을 알고 있는 어머니와 바른생활을 약속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차라리 우리 선생님이 심하게 화를 냈으면 좋겠어. 진짜 미치겠네.” 

    

임시방편으로 상황을 모면하고 몸으로 때우는 것에 익숙한 금쪽 씨는 미칠 지경이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던 자신이 뭔가 하기만 하면 담임이 칭찬했다. 하기 싫어 죽겠는데, 칭찬받으니 안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잘못했을 때 담임이 화를 내면 차라리 대들기라도 할 텐데, 당최 화내지 않는 담임. 그러나 평소와 달리 웃음기 싹 뺀 담임 앞에서 순순히 잘못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후 금쪽 씨의 학급 내 생활은 점점 안정적으로 변화했다.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할 일을 끝까지 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봉사에 앞장섰다. 학교 밖 사건 사고도 많이 줄었다. 더 이상 담임이 화내는 순간을 바라지도 않았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은 찬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이었다. 금쪽 씨를 변화시킨 것은 큰 소리로 화내는 담임이 아니다. 바른생활을 안 하고는 못 배기게 했던 칭찬과 단호함의 이중 콜라보였다. 이보다 더 효과적인 생활 지도가 또 있을까? 교사가 화내지 않는 방법은 높임말 사용이다. 우아한 교사 생활 가능하다.

<출처 : Raphu_Ramaswamy>


매거진의 이전글 여기가 천국이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