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증후군에 관하여
뛰어난 성과를 내고도 "난 가짜야"라고 느끼는 이 현상, 당신도 경험해 본 적이 있나요?
오늘도 받은 문자들.
"하아… 회사를 이렇게 오래 다녔는데도, 아직도 내가 전문가가 맞는지 모르겠어."
"지난해 성과가 좋아 승진도 했는데, 그래도 난 아직 부족한가 봐. 스스로 잘하고 있는 건지 판단이 안 될 때가 많아."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의 채광이 어두워지는 느낌이에요. 하나같이 성실하고,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친구들인데, 정작 본인들은 자신을 전혀 믿지 못하니까요. 그런데, 너무 ‘알겠는 느낌’. 음, 이런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어요. 이런 마음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왜 그런 마음에 이르게 되었는지' 너무 잘 이해가 돼요.
예전에 저의 상사는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요.
"쟈스민은 아직도 부족하니까..."
"쟈스민은 아직 뭘 모르니까..."
모든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해서 이렇게 끝났습니다. 처음에는 '맞아, 배워야 해'라고 생각했지만, 점차 그 말들이 제 자신감을 갉아먹기 시작했죠.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느끼더라도, 그 상사의 목소리가 늘 머릿속에서 메아리쳤어요.
'너는 부족하고, 아직도 뭘 모르고'
2년의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아요. 상사가 심어놓은 이 '말의 씨앗'이 제 사고를 지배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사고방식이 쌓여, 저 역시도 '나는 언제나 부족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품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에서 이런 상태를 가면 증후군(임포스터 신드롬)이라고 부릅니다. 이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은 성과를 내고도 자신이 인정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낍니다. 마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처럼요. 아무리 대단한 일을 이뤄도, 자꾸만 "이건 내 운이 좋았던 것뿐"이라고 여기죠. "나는 사실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꽁꽁 갇히게 만듭니다. (분명 이것은 겸손, 겸양과는 다릅니다.)
상사의 영향력은 컸습니다. 그 회사를 떠나 내 곁에 그 상사가 없음에도, 그 목소리가 자주 메아리쳤어요. 특히 회의에서 아이디어를 내리려다가 "나는 아직 부족한데..."라는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리면, 말하려던 생각을 삼켜버리곤 했습니다.
제가 있는 싱가포르, 전 세계 헤드쿼터가 있는 유명한 회사에서 일하는 친구들도 비슷합니다. 성과에 대한 압박이 높으니, 사실 더 이런 증후군에 시달리죠. 직장 생활 내내 타인의 평가에 끌려다니다 보면, 내 안의 목소리를 들을 새가 없어 스스로를 '부족한 존재'로 만들게 되고요. imperfectly perfect 할 수 있는데, 스스로가 perfectly imperfect 하다고 믿는 오래된 신념.
저는 이런 증후군을 어떻게 극복했냐고요? 다행히 30살 넘어 만난 한 상사가 저의 사고 패턴을 보고 바로 지적해 줬습니다. 회의실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들고 우물쭈물 말 못 하는 저를 보고 번개처럼 혼냈어요. 정신이 확 들 정도로 훅 들어왔죠.
"너의 가치를 그렇게 평가절하하면, 그 누구도 너를 신뢰하지 못할 거야. 설마 그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게 한번 크게 혼나고, 상사의 새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한뒤 열심히 새로운 증거를 모았습니다. 인간은 증거를 모아서 ‘이야기를 새로이 쓰는 능력’이 있거든요.
일단, '난 밥값 잘 하는 인간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일했습니다. 누가 칭찬해 주면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해봤고,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에 박하지 않게 넉넉하게 마음의 비료를 주었습니다. "나는 못났어"라는 목소리가 들리면 진짜 내 의견인가, 아니면 이제는 기억도 안 나는 '그 상사의 목소리'인가를 구분해 보려고 노력했어요. 의도적으로요. (요기 밑줄 쫙)
자기 자신을 믿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부족해"라는 말에만 휘둘리다 보면, 나의 잠재력을 스스로 가둬놓게 되죠.
가면을 누군가가 씌울 수는 있지만, 그 가면을 내가 스스로 벗을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누군가의 목소리는 빌려온 것일 뿐, 진짜 나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 안에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