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있는 곳이 매트릭스의 가상 세계라면

<빛나는 TV를 보았다>, 제인 쇼엔브런

by 무한한 사각우물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앞에 갑자기 나타난 남자는 진실을 알고 싶으면 빨간약, 이대로 살고 싶으면 파란 약을 선택하라고 한다. 빨간약을 삼킨 주인공은 꿈에서 깨어나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세계는 거짓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너무나 현실 같은 꿈을 꿔본 적이 있나? 만약 그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그럼 꿈과 현실을 어떻게 구분하지?"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매트릭스의 가상 세계라면. 이런 생각을 한 번쯤은 해본다. 가끔은 겁도 난다.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게 아닌지. 어쩌면 더 크고 중요한 진실을 내가 깨닫지 못하고 내 자리를 찾아가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드라마 속 인물들은 이뤄내야 할 임무가 있고 사명이 있는데 내 삶은 왜 이렇게 초라하고 2년이 드라마 속 2시간 같을까. 2년 후, 8년 후, 20년 후를 건너뛰어도 달라지는 게 하나 없다.

지금 내가 있는 자리가 맞는지 한참을 생각한다. 삶에 대한 불일치감이 계속 나를 콕콕 찌른다. 진짜 나는 땅 속에 묻혀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게 현실이 아니고 악당이 만든 감옥이며 진짜 나는 좀 더 대단하고 멋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빨간약을 먹는 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땅 속에 깊이 파묻힌 기분을 애써 무시한다. 내 속에 있는 걸 꺼내보는 게 무섭다. 내 삶에서 한 발짝도 떠날 수가 없다. 챗바퀴처럼 회사에 가서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온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내 삶에 만족한다고 자기 합리화를 해본다. 어차피 난 안 됐을 거다. 모든 게 다 내 망상이고 진짜 나 같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거니까.


다른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어린 시절 잠시 방황하는거라고, 어른이 되고 가정을 꾸리면 다 괜찮아질거라고.


하지만 내 삶은 도통 괜찮아지지가 않는 거 같다. 나만 빼고 행복한 사람들에게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내가 이렇게 죽어가고 있잖아.


어릴 때 느끼던 혼란스러움이 영원히 사라지지가 않아도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빛나는 티비를 보면서 삶은 그렇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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