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평가 정상화 컨퍼런스”. 이름만 봐서는 이게 뭔 소리인가 싶다. 부제를 보면 조금 더 이해가 된다. ‘수학교육을 망치는 평가, 이대로 괜찮은가’ 수십 년이 지났어도, 학교시험의 기억은 다들 생생히 갖고 있다. 어느 과목인들 시험과 평가에 대한 기억이 좋을 리 없지만, 수학시험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시간에 쫓겨 반도 못 풀거나, 고등학생 즈음 되면 수포자 대열에 들어서, 한 번호로 찍기 일쑤였다. 학창시절 ‘수학을 못했다, 수학 공부를 안했다’라고 생각할지언정, ‘수학 평가’가 비정상이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 우리나라 수학교육을 망치는 주범은 ‘평가’라고 줄기차게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수학교육혁신센터이다.
이들은 학생들이 수학 개념과 원리를 스스로 발견해서 그 사고 과정을 서술할 수 있는 문제를 직접 만들어냈다. 그렇게 중학교 전과정 문제은행을 탑재한 플랫폼 ‘모두의 수학’이 완성되어 작년 가을 오픈했다. 뿐만 아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고3이 치르는 모의평가, 대학별 논술고사, 수능의 문제를 매년 꼼꼼히 점검해 교육과정에서 벗어난 문제가 얼마나 되는지 감시하고 사회적으로 고발한다.(2018년, 연세대는 교육과정 위반이 수차례 적발돼 정원감축이라는 큰 징계를 받았다.)
이날 컨퍼런스 1부에서 발제를 맡은 김상우 연구원은 지난 4월에 실시한 ‘학교 내신 시험에 대한 인식 설문조사’를 소개했다(설문대상:중고생 4,785명, 학부모 3,136명, 교사 194명) 여기에서 학생의 60.5%는 수업에서 배운 내용보다 시험이 과도하게 어려워서 수학을 포기한다고 응답했다. 교사조차도 64%가 ‘변별을 해야 해서 시험문제를 가르친 내용보다 어렵게 출제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평가의 목적은 우리가 제대로 배웠는지 아닌지, 보충할 것은 없는지 알기 위해서이다. 적어도 평가의 목적이 ‘변별’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교사는 없지 않을까. 그러나, 입시와 내신이 상대평가로 엄존하는 한, 교사는 최대한 대입에 유리하도록 학생을 가르치고 훈련시킬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를 새롭게 하려는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중학교 교육과정은 10년 전부터 성취평가제(절대평가)로 바뀌었다. 여전히 변별에 치우친 학교가 많지만, 절대평가의 취지에 맞게 재학습의 기능을 살리고자 노력하는 교사와 학교가 있다.
이날 토론자로 참여한 인천 선학중학교 유영의 선생님은 지필고사는 서술형평가로, 수행평가는 모둠협력평가로 치른다고 했다. 특히, 평가를 통해 재학습이 이뤄지도록 오픈 북 평가로 치러 효과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오픈 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다 보면 학생들은 스스로가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 알게 되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서 비로소 이해의 완성에 도달한다. 오픈북 평가에서는 그 누구도 한 번호로 찍고, 잠을 자지 않는다. 모두가 끝까지 시험에 임한다. 모든 학생이 자기가 모르는 것을 더 알아내고자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보다 잘 하는 아이와 더 잘하는 아이를 변별하는 게 중요할 리 없다.
현재 혁신학교에서 근무하는 유영의 선생님은 이전에 일반학교에서도 이 평가 방법을 택했다. 학생들은 모두 이 평가 방식을 환영한다. 다만, 주변 학원가에서 이 학교 시험을 대비해줄 수가 없다. 그래서 학원을 신뢰하고 입시 준비를 우선시하는 일부 학부모들은 이러한 방식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럼에도 서술형평가와 모둠협력평가, 오픈 북 평가 등 새로운 방법을 고수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수학을 가르치는가에 대한 대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 가기 위해 수학을 공부한다면 대학에 가지 않는 아이들은 수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는 걸까. 그렇게 고생해서 수학을 공부해봐야 살아가는데 아무 쓸모 없는 걸까. 우리나라 학생들은 수학이 배울 가치가 있는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학의 가치를 이토록 왜곡시킨 주범이 바로 ‘평가’, 그 중에서도 킬러문항이다. 킬러문항을 탄생하게 만든 본거지, 대치동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