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탄생일?
어느덧 한 해의 마지막 공휴일인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거리를 나가보면 화려한 조명과 아름다운 트리들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덧 한 해의 마지막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는 시기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우리가 오래전부터 기념하여 온 예수의 탄생일이며 산타클로스가 생각나는 날입니다. 산타클로스와 루돌프 그리고 흥겨운 캐럴이 처음부터 크리스마스의 일부였을 것이라 대부분 생각할 것입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재밌는 사실들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예수의 탄생일 둘러싼 비밀과 루돌프와 산타의 탄생이야기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캐럴 중 하나인 징글벨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Christ)와 미사(Mass)의 합성어로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12월 25일을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날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역사학적 관점에서 이 날이 예수의 실제 생일일 가능성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경과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아도 예수의 생일이 12월 25일이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가복음 2장에서는 예수 탄생 당시 "목자들이 밤에 들판에서 양 떼를 지키고 있었다"라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이스라엘의 12월은 우기이자 혹한기이기에 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입니다. 이러한 날씨에 양들을 들판에 방목한다는 것은 당시 목축 환경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에 학자들은 예수가 기후가 온화한 봄이나 가을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테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헤롯왕 통치 기간에 태어났습니다. 헤롯왕은 병으로 인하여 기원전 4세기에 사망하였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2장에 의하면 당시 헤롯왕은 당시 2살 배기 아기를 다 죽인후에 죽었다 하였습니다. 또한 누가복음에 나온 구레뇨의 인구조사를 기원전 7~6년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근거들을 바탕으로 학자들은 기원전 4~6년 사이에 태어났을 것으로 바라보며 그 중 기원전 4년경으로 추정하는 학자들이 가장 많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기념하게 되었을까요? 여러가지 가설들이 존재하지만 그중 비중이 가장 높은 가설을 하나 소개하려 합니다.
우선 기독교가 생긴 이후 처음 300년 동안은 크리스마스 축제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에 대하여 가장 오래된 기록은 4세기 초의 이집트 파피루스에 남겨진 기록입니다. 1월6일 저녁부터 7일 저녁까지 성탄절을 축하하였다는 기록이 나와있습니다. 1월 6일은 예수가 세례를 받은 날로써 이 날을 기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날 역시 12월 25일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가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기념하게 된 이유는 그 당시 로마의 종교였던 미트라교와 관련이 있습니다.
기원전 1세기경,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에서 파생되어 로마의 종교로 자리잡은 미트라교는 태양신을 섬기는 종교였습니다. 이 태양신인 미트라의 탄생일이 당시 로마 달력상 1년 중 낮이 가장 짧은 동지날인 12월 25일이었습니다.
274년 당시 로마 황제였던 아우렐리아누스에 의하여 태양신인 미트라는 국가 수호신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 해 12월 25일 미트라를 섬기는 신전을 세우고 이 날을 태양절로 선포하였으며 이날은 '무적의 태양의 탄신일'(Natale Solis Invicti)이라 하며 로마인의 큰 명절이 되었습니다. 이후 태양신을 국가수호신으로 섬기는 것은 로마 황제들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이후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며 기독교를 공인하였습니다. 이후 기독교의 세력이 미트라교를 넘어서게 되며 두 종교를 자연스레 접목시키려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로마제국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아 세속화되던 교회는 이방 사상과 상징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무적의 태양의 탄신일'(Natale Solis Invicti)을 기독교화시키며 이교도들의 반발을 최소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340년, 교황 율리오 1세가 12월 25일을 예수의 탄생일이라 공식 선언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는 주장이 가장 비중이 큰 가설입니다.
또한 이후 392년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유일 국교로 선포하고 다른 종교들을 금지하며 기독교의 위상을 더욱 확실히 하였습니다.
크리스마스 하면 빨간 옷을 입고 썰매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선물을 나누어주는 할아버지와 그 썰매를 끄는 순록들과 맨 앞에서 썰매를 끄는 9번째 순록, 빨간 코의 루돌프가 떠오릅니다. 우리는 이 캐릭터가 북유럽의 오래된 전설이나 동화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선 산타클로스는 실존인물인 4세기 기독교 주교이자 수호성인인 성 니콜라오스에게서 기원한 것입니다. 그는 뷰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많은 재산을 상속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자선사업을 하는데 사용하였다 합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대한 선물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였습니다. 특히 가난한 기독교인 세 딸이 가난하여 결혼이 아닌 매춘부가 될 위기에 처하자 그들을 돕기 위하여 집 앞에 몰래 결혼 두고 간 것으로 유명합니다.
또한 그는 아이들을 사랑하여 12월 6일 성 니콜라스 축일에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곤 하였으며 이러한 그의 이야기는 유럽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이후 17세기 네덜란드 인들이 자선을 베푸는 사람을 성 니콜라오라 부르며 네덜란드 발음인 산타클로스가 그래도 영어가 되며 오늘날의 산타클로스로 불리게 되었다 합니다.
또한 오늘날의 이미지는 코카콜라 광고에서 비롯된다고 알고 있는 이들도 있지만 1863년 만화가였던 토마스 나스트의 의하여 후덕한 외양과 풍성한 수염을 지닌 산타클로스의 이미지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빨간 모자와 빨간 옷의 이미지는 미국의 인쇄업자인 루이스 프랭이 1885년 붉은 옷의 산타는 만들어 냄으로써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루돌프는 백화점 마케팀 팀의 의하여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미국의 대형 백화점인 몽고메리 워드는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어린이 고객을 위한 색칠 공부 책을 무료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외부에서 책을 구입하여 나누어 주는 것은 비용이 상당하였고 이에 경영진은 홍보팀 카피라이터였던 로버트 L. 메이에게 돈을 아끼기 위하여 자체적으로 만들라 지시하였습니다.
이에 로버트는 자신의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투영하여 코가 빨게 놀림받는 순록의 이야기를 구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상사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그 당시 빨간 코는 만화나 삽화에서 주로 만취한 술주정뱅이를 묘사할 때 사용하는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버터는 이에 포기하지 않고 일러스트레이터 친구에게 부탁하여 귀엽고 사랑스럽게 묘사한 붉은 코 그림을 통하여 경영진을 설득하였으며, 배포된 루돌프 이야기는 첫 해에만 240만 부가 소진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후 로버트 메이의 여동생인 마가렛의 남편인 조니 마크스가 이 이야기를 통하여 노래인 '루돌프 사슴코'를 만들어 루돌프는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며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캐럴 중 하나인 '징글벨' 이 노래 역시 원래는 크리스마스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노래였습니다. 심지어 이 곡은 교회에서 부르기에 다소 속된 가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곡은 1857년 제임스 로드 피어폰트가 '한 마리 말 썰매'(One Hores Open Sleigh)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곡입니다. 이 곡은 본래 크리스마스가 아닌 추수감사절 축제를 위한 노래였으며 백인이 흑인 분장을 하고 희화화하는 민스트럴 쇼에서 상연된 것이 시초입니다.
또한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꼬리 짧은 말(Bobtail)은 당시 경주용 말이나 일하는 말의 꼬리를 짧게 자르던 관행을 의미하는 가사입니다.
이에 일부 역사가들은 이 노래가 당시 썰매 경주 도박이 벌어지던 술집에서 건배가처럼 불리던 노래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경쾌한 멜로디와 눈이라는 계절적 배경 덕분에 이 노래는 점차 인기를 얻었고, 이내 가사가 아이들에게 맞게 순화되면서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노래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늘은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와 관련되어 신기하고 흥미로운 내용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어느덧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올 한 해 마무리 잘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