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었던 밤, 미국에서의 첫날의 기억
10여 년 전, 나의 첫 회사에서 퇴사를 결정한 후 나는 약 한 달간 유럽여행을 떠났다.
그 한 달간의 여행을 통해서 외국에서 생활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그 길로 해외취업에 대한 리서치를 시작했다. 당시 나는 여태까지 살아온 방식이 아닌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갈망하던 시기였다.
유학을 가기에는 넘어야 할 벽이 너무 많았었고 일도 하면서 영어도 배울 수 있는 워킹 홀리데이 같은 기회가 당시 상황에서는 좀 더 현실적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게 해외취업의 기회를 찾던 중 미국에 문화교류 비자(J1)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 다른 나라의 워킹 홀리데이와 비슷한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실 반드시 미국으로 가야겠다! 하는 생각은 없었다.
영어권 나라 중에는 영국이나 호주, 비영어권 나라 중에는 프랑스나 독일이 나의 위시리스트였는데 큰 기대 없이 지원했던 미국 내 한국 대기업에서 인터뷰를 하자는 제안이 왔다.
비록 나의 위시리스트에 있던 나라는 아니었지만 소중한 기회가 주어졌기에 면접에서 최선을 다했고 다행히도 좋은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미국행이 결정된 이후, 미국이라는 나라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와 훨씬 가까운 나라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원래도 한국 가요보다는 팝을 더 좋아했고 미국 영화나 TV시리즈들을 좋아했었다. 이미 문화적으로 친숙했던 나라였기에 여러모로 적응하기에 더 수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비록 우연한 기회가 이어준 나라였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나에게 친숙하지 않던 유럽권 나라로 방향을 정하지 않고 미국행을 결정했던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괜한 기대를 하실까 봐서 부모님께는 면접 사실을 알리지 않았었다. 합격이 통보된 이후 그 날 저녁 가족들이 모인 식사자리에서 합격 사실을 전했는데 모두들 축하+놀라는 반응이었다. 부모님께서 반대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흔쾌히 미국행을 허락해주셔서 나 또한 놀랐다. 당시에는 1년 비자였기에 아마도 이렇게 길게 미국에 체류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나 또한 그렇게 떠났던 길이 8년의 세월이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떠나기로 한 날, 하필이면 초대형 태풍 샌디가 미 동부를 강타하는 바람에 대부분의 비행기는 연착되거나 취소되었다. 나 역시 예상 날짜보다 하루, 이틀 정도 후에 출발했던 기억이 있다.
미국으로 오기 전 여행으로도 미국을 방문했던 적이 없어서 미국의 대한 이미지는 뭔가 백지상태였는데 하필이면 첫 도착 타이밍이 태풍이 지나간 후여서 미국에 대한 첫인상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화려함은 없고 회색의 느낌이 강했던 뉴욕.. 바닥에 나무가 쓰러져있고 도로에도 쓰레기가 가득해서 마치 배트맨에 나온 고담시티 같았다.
오후가 다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잘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에 기뻤다.
나의 첫 번째 집은 특별할 것이 없는 일반 콘도였는데 방에 나있는 창문의 모양이라던지 바닥의 깔려있는 카펫이 나에겐 왠지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긴장이 풀렸는지 몸이 축 늘어졌지만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로 쉽게 잠들 수 없었다.
내일은 어떻게 될까? 어디를 가야 할까?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한 첫날의 밤이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