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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Aug 06. 2019

질서 뒤에 가려진 혼돈의 아름다움

<유포리아> 리뷰

1. "혼돈은 형태가 없는 잠재적 가능성이다" 토론토 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인 조던 B. 피터슨 교수가 저서인 <인생의 12가지 법칙>에서 한 말이다. 그는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말씀으로 혼돈에 질서를 가져왔듯, 그의 피조물이 사람도 마찬가지이며 따라서 "혼돈은 곧 자유, 무시무시한 자유"라고 주장한다.


한편 그는 혼돈의 반대항인 질서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는 곳"이라고 평가하며 "확실성과 획일성, 순수성에 대한 집착이 커질 때 질서는 통제와 폭압의 형태"로 보이기도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의 발언을 종합하면 (그리고 그가 자신의 책에서 주장하는 부분이지만) 혼돈은 우리가 흔히 두렵게 생각하는 존재만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우리를 강하게 둘러싸고 있는 질서라는 울타리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울타리를 세울 수 있는 동력인 셈이다.


그리고 우리는 10대라는, 미래에 대한 '확실성'을 원하고 '획일적'인 규칙에 분노하며 가장 이상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원하는 시기를 반드시 보내야만 한다. 질서를 깨부수고 혼돈스러운 세상과 자기 자신을 대면하기 최적인 시간을 경험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혼돈 그 자체로서의 10대를 다루는 드라마가 바로 HBO에서 제작한 젠데이아 주연의 <유포리아>다. 



2. <유포리아>는 청소년기를 보내는 아이들의 혼란스러움에 관한 이야기다. 가족, 이성친구, 동성친구, 성인들처럼 자신과 사회가 이루는 모든 관계, 곧 기존 질서에 의문을 느끼고 그 질서에 도전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반항 가득한 그들의 태도와 시각이 항상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10대 특유의 자기주장적인 자아가 자신 내면에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혼돈의 매력을 맛보는 그 순간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하기 힘든 독특한 경험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유포리아>는 그 찰나의 순간을 멋지게, 그리고 솔직하게 카메라에 담아낸다. 



3. <유포리아>는 섹스, 마약, 폭력, 임신, 낙태, 원조교제, LBTQ, 외모 트라우마 등 극단적인 형태의 외양으로 시청자들을 만난다. 그래서인지 <유포리아>를 두고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모든 에피소드를 마주하고 나면 첫 번째 에피소드를 접할 때와 전혀 다른 시각으로 이 드라마를 바라보게 된다.


왜냐하면 <유포리아> 속 섹스, 마약, 폭력 등의 소재들은 단지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유포리아>가 정말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외모에 대한 불만족과 비하, 성적 정체성, 가족과의 불편한 관계, 삐뚤어진 사랑, 미래에 대한 불안과 같은 청소년들의 거칠고 혼란스러운 내면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의 선정적인 요소들은 그저 10대들이 확실성, 획일성, 순수성을 두고 고뇌하는 내면을 묘사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유포리아>는 선정적이고 충격적이며 단편적인 이미지가 범람하는, 타락과 죄악 속에서 버둥거리는 10대들을 일상을 보는 드라마가 아니다. 오히려 청소년들이 외부에서 주입하는 질서와 정체성을 거부하고 자신에게 맞는 질서와 정체성에 조금씩 눈 떠가는 과정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즉 <유포리아>는 (피더슨 교수의 말에 따르면) "가능성이고 근원이며 잉태와 탄생을 주관하는 신비로운 왕국"으로서의 혼돈을 영상화한 드라마인 셈이다. 



4. 혼돈과 성장, 자아의 관계를 다룬 <유포리아>의 주제의식은 연출과 배우에 의해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유포리아>는 총 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에피소드는 시작할 때 각각 한 명의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소개하며 다양한 10대들의 고민, 일탈, 혼돈이 드라마에서 드러날 수 있다. 이에 더해 일반적인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기 드문 원색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색조와 화려한 조명, 빠른 화면 전환과 실험적인 카메라 앵글 등은 10대들의 방황을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그 시절 그들만의 쿨한 에너지로 재조명하는 수단들이다. 


 

'젠데이아 콜먼'이라는 스타를 활용한 것 역시 드라마의 테마를 강조하는 데 성공한 영리한 선택이다. 젠데이아는 디즈니 채널에서 성장한 디즈니 스타로 미국 내에서 10대들의 롤모델이다. 또한 현재는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위대한 쇼맨>을 거치면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그녀는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갈 때 모두가 상상하는 '밝은' 측면을 대표하는 스타일 지도 모른다. 여러 인터뷰를 통해 줄곧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기도 하고.  


이러한 젠데이아의 스타로서의 이미지를 <유포리아>는 영리하게 활용한다. 작중 젠데이아는 마약, 섹스,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주인공 '루'를 연기하며, 그녀는 비슷한 상황에 처한 주변 인물들의 상황으로 전달하는 관찰자다. 이러한 '루'의 모습은 그간 대중들이 젠데이아로부터 소비했던 이미지와는 정반대다. 


하지만 <유포리아>를 보는 시청자들은 '젠데이아'라는 스타의 변신을 보면서 청소년기의 혼돈이 단지 부정적이고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한 인격체로서 성장해 가는 과정이라는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사실 스타는 연기하는 배역에 완전히 녹아들지 않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유포리아>에서 '젠데이아'라는 스타의 이미지와 '루'라는 배역의 이미지가 공존하는 와중에 충돌하면서 그녀의 일탈에도 (잘못된 것은 맞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순기능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배우는 고정된 스타로서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한 단계 성장할 수 있고, 드라마 역시 주제의식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 스타를 어떻게 활용할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셈이다. 




5. <유포리아>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보면 같은 제목을 지닌 방탄소년단의 'Euphoria'가 흘러나온다. 



"모르겠어 이 감정이 뭔지 

혹시 여기도 꿈속인 건지

꿈은 사막의 푸른 신기루 

내 안 깊은 곳의 a priori

숨이 막힐 듯이 행복해져 

주변이 점점 더 투명해져 

저기 멀리서 바다가 들려 

꿈을 건너서 수풀 너머로 

선명해지는 그 곳으로 가"


노래의 가사처럼 자신의 감정조차 알기 힘들고 꿈꾸는 것과 꿈속에 있는 것을 알아채기도 힘든 혼돈 속에서 사는 10대들. 그럼에도 그 과정을 거치며 정체성을 찾고, 자신과 사회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혼돈에서 벗어나 새로운 질서 안으로 돌아오는 청소년들. 그렇게 조금씩 다시 행복해지는 이들의 모습을 다루는 드라마.


시종일관 어둡고, 충격적인 이미지가 가득한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제목이 <Euphoria 유포리아(극도의 행복함과 희열)>인 이유일 것이고, 아직 끝나지 않은 다음 이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혼돈은 새로운 것과 더 나은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곳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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