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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Jan 02. 2020

<두 교황>, 학자와 봉사자 사이에서 신의 음성을 듣다

<두 교황> 리뷰

1.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세상을 떠나고 추기경들은 콘클라베를 통해 '베네딕토 16세(안소니 홉킨스)'를 교황으로 선출한다. 베네딕토 16세와 경합을 펼치던 '베르골리오 추기경(조나단 프라이스)'은 아르헨티나로 돌아가 낮은 위치에서 사목활동을 이어간다. 그러나 베네딕토 16세의 재임 기간에 가톨릭 교회는 사제들의 성추문 사건과 바티칸 은행 비리 사건 등으로 인해 대내외적으로 위기에 빠지고, 이에 베니딕토 16세는 반대파인 베르골리오 추기경을 바티칸으로 불러 위기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대화를 나눈다. 


제목에 걸맞게, <두 교황>은 두 명의 교황의 관계에 집중한 스토리텔링이 눈에 띄는 영화다. 베네딕토 16세의 이야기는 전체적인 배경을 조성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야기는 그 배경을 무대로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를 위해 <두 교황>은 진보 대 보수, 개혁 대 전통, 세속과 교회 사이에서 사사건건 충돌하는 둘의 대조적인 관계도 두 가지 방식으로 풀어낸다.



2. 하나는 교황의 업무, 가톨릭 교회의 교리 및 공적 사안에 대한 첨예한 논쟁이다. 교회와 사회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교회가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가톨릭 교회를 둘러싼 성추문을 비롯한 논란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서 영화는 두 교황의 논쟁을 적당한 유머를 곁들여 펼쳐 보인다. 이를 통해 <두 교황>은 자칫 지루하고 어려울 수도 있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환기시키면서, 두 교황의 선택이 지닌 그 무게감을 전달하는 데도 성공한다. 


다른 하나는 두 교황의 일상에 대한 묘사다. 축구를 보는 사람과 아닌 사람, 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과 클래식 연주를 즐기는 사람, 사람과 함께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홀로 시간을 즐기는 사람은 작중 거듭 대조된다. 이는 거대한 교황의 권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효과적으로 부각하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둘 중 하나에게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 


두 인물을 대조하는 것과 별개로, 서로 다른 영역에서의 차이점들을 연결시키는 연출 또한 인상적이다. 두 교황의 교리적, 신학적 입장이 성격과 라이프스타일과 이어지는 그 고리가 적절히 부각되기 때문으로, ABBA의 'Dancing Queen'에 대한 둘의 취향 차이를 보여주는 씬 다음에 2003년 콘클라베에서 경쟁 구도를 형성하는 씬이 붙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3. 가톨릭이라는 종교의 특징을 살린 연출도 인상적이다. <두 교황>은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 교황 간의 대화와 토론으로 가득한데, 그들이 강조하는 주장 혹은 그들의 내면적 변화는 가톨릭의 의례, 예술, 건축 등을 통해 더 명료하게 제시된다. 실제로 두 교황이 시스티나 성당에서 설전을 벌일 때, 카메라는 천장화와 벽화의 구석구석을 담아내며 그들의 논지를 강화하기도 하고 그들의 인간적 결점을 명백히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두 교황이 서로에게 고해성사를 해주는 장면이다. 모든 면에서 상극에 있던 두 교황은 고해성사를 통해 자기 자신과 서로의 과오와 결점을 완전히 깨닫고, 인정하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위로하며, 신의 용서를 구한다. 도저히 타협점이 보이지 않던 둘의 관계에서 그 중간 지점을 찾아내는 영리한 선택으로, 실제로 있었던 일이든 아니든 간에 가장 감정적인 장면인 것이다. 또한 가톨릭 교회가 그간 인정하지 않으려던 잘못을 드디어 인정하고, 겸허하게 그 죄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4. 다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베네딕토 16세보다 많은 분량을 할당하면서 영화의 태도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영화는 사제들의 성추문과 바티칸 은행의 금융거래를 영화 초반부에 배치하고, 난민, 동성애, 낙태 등 다양한 현대사회의 의제에 발맞춰가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적을 후반부에 삽입하면서 베네딕토 16세의 정책과 신념을 일견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에 한해서는 약혼자, 직장 동료, 친구 사제들과 관련된 일화를 통해 그가 가톨릭 교회 내에서 진보적인 스탠스를 선택한 배경에 대해 자세한 설명도 제시한다. 즉, 교회의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주장하는 진보적 입장을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교리와 전통을 유지하려는 보수적 입장을 부정하는 셈이다. 


그러나 <두 교황>은 이러한 진보적인 입장이 가톨릭 교회의 단일한 입장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교회 내부의 보수적 의견과 진보적 의견 모두 성경과 신학적 해석에 근거한 주장으로 선악 혹은 우열의 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더 나아가 프란치스코 교황도 가톨릭 교회 내부의 성추문 사건을 대처하는 데 있어서는 실제로 적극적이거나 개방적이지 않으며, 베네딕토 16세와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도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이러한 묘사는 두 교황의 행적을 비교하고 대조하기 위한 선택의 결과물로써 필연적인 영화적 허용에 해당하겠지만, 다소 편협하고 편파적인 시각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5.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디테일하고 재치 있는 아이디어들은 이러한 아쉬움마저 가려준다. 안소니 홉킨스와 조나단 프라이스는 실제 교황을 보는 것 같은 싱크로율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이고 강력한 권력과 권위의 무게감에 짓눌린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훌륭히 표현해낸다. 흑백에서 컬러로의 전환과 화면비의 전환을 통해 시대의 변화와 인물의 변화를 담아내고, 두 교황이 함께 아르헨티나 대 독일의 2014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을 시청하는 식의 재치 있는 아이디어도 인상적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자칫 낯설고 지루할 수 있는 스토리에 숨 쉴 틈을 제공하면서 몰입도를 꾸준히 유지시킨다. 


2019년에 넷플릭스는 <더 킹: 헨리 5세>, <아이리시 맨>, <결혼 이야기> 등 오리지널 영화들을 잇달아 공개했고, 많은 영화들이 뛰어난 완성도를 갖췄다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두 교황>은 이러한 넷플릭스의 상승세를 이어나가는 영화로, 2019년에 공개된 가장 인상적인 영화들 중 하나라 말해도 손색없을 것이다.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라는 두 교황 간의 관계를 재해석한, 넷플릭스가 선사한 또 하나의 명작, <두 교황>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거의 완벽하다. 영화적 허용과 의도적인 왜곡 사이에서 불안하게 줄 타는 것만 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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