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noDAY Jan 07. 2020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실패한 리모델링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리뷰

스타킬러 베이스는 파괴되었지만, 퍼스트 오더는 압도적인 전력 차이를 과시하며 '레아(캐리 피셔)'가 지휘하는 저항군의 기지까지 쳐들어 간다. '포 다메론(오스카 아이삭)'은 독단으로 공격을 지휘하지만 퍼스트 오더를 막지 못하고, 이에 '핀(존 보예가)'은 퍼스트 오더의 추격을 막기 위해 '스노크(앤디 서키스)'의 전함에 잠입할 계획을 세운다. 한편, 은둔한 '루크 스카이워커(마크 해밀)'를 설득하러 간 '레이(데이지 리들리)'는 알 수 없는 포스의 힘으로 인해 '카일로 렌(아담 드라이버)'과 교감하면서 포스의 선과 악 사이에서 혼란에 빠진다.  


영화 프랜차이즈의 생명력을 연장시키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기존 시리즈의 매력과 장점을 유지할 수도 있고, 시리즈의 전통과 고별한 채 새로운 변화를 추구할 수도 있다. 디즈니의 스타워즈는 후자에 해당한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나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성공은 오랜 기간 지속된 프랜차이즈의 클리셰와 전통의 쇄신, 그리고 정치적 올바름과 같은 현대적 감성의 가미라는 디즈니의 정책이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는 전작들과 같은 기조를 유지한다. 구체적으로는 정치적 올바름, 시리즈 구조, 그리고 영화의 메시지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변화를 시도하며 시리즈의 유효기간을 늘리려고 한다. 단지 딱 하나가 다른데, 바로 라이언 존슨 감독의 이 리모델링은 처참한 실패라는 사실이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는 '로즈 티코'와 '홀도 제독'이라는 새로운 여성 캐릭터들을 등장시키면서 젠더와 인종 등의 문제로 무시받던 계층의 목소리를 투영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두 가지 문제점을 지닌다. 우선 <라스트 제다이>는 스타워즈 시리즈 안에서의 다양성을 온전히 이해하지 한 것처럼 보인다. <스타워즈> 세계관 내에는 인간 외에도 다양한 외계 종족이 존재한다. 제다이 요다, 한 솔로의 동료였던 츄바카, <로그 원>에서 스카리프 전투를 이끌었던 라더스 제독 및 프리퀄 시리즈의 자자 빙크스 등은 그간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비인간 캐릭터들이다. 하지만 <라스트 제다이>는 이처럼 다양한 종족들에 대한 고려가 전무한 채, 그저 여성과 남성, 백인과 유색 인종이라는 현실의 고정된 틀 안에서만 다양성을 논한다.


다른 하나는 페미니즘을 드러내기 위한 연출이 엉망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홀도 제독(로라 던)'은 저항군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자이지만 선상 반란이 일어날 정도로 독단적이고 폐쇄적인 리더십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는 무조건적으로 홀도 제독을 띄어줄 뿐 그녀의 문제점을 전혀 지적하지 않는 작위적인 전개를 이어간다. 사실 홀도 제독은 전형적인 기득권층 백인 여성으로서 다양성을 보여주기보다는 기존 페미니즘의 한계를 강조하는 스테레오 타입으로 보일 여지도 충분하다.


'로즈 티코(켈리 마리 트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불필요한 인물인데, 등장하는 장면들이 대부분 영화의 중심 스토리와 별개이기 때문이다. 또한 증오 아닌 사랑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원론적이고 추상적인 주장에 불과하며, 남성성과 대비되는 여성성의 힘을 보여주기보다는 극의 진행과 어우러지지 않는 어색한 소리일 뿐이다. 



시리즈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라스트 제다이>는 제다이와 시스라는 선과 악의 대립을 거부한다. 대신 선과 악이 나뉘지 않고 함께 있다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려고 한다. 또한 수련을 통해 포스를 다루는 제다이라는 구시대적인 개념을 거부하고 누구나 포스를 사용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개념도 정립하려 한다. 이는 영화의 중심 스토리 전개와 떨어진 카지노에서의 분량이 상당한 이유다. 왜냐하면 카지노 시퀀스는 저항군이든 퍼스트 오더든 결국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서의 행위자로, 둘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전달하고 제다이 이후의 세대를 보여주기 위한 의도로 삽입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라스트 제이>가 그 의도를 스크린에 구현하는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선과 악의 대립을 지우고, 제다이의 개념을 부정하려고 했다고 결과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카일로 렌은 여전히 시스이고, 레이는 루크의 후계자로서, 제다이로 다시 태어났다. 루크가 렌과 대적하는 장면에서 탈출구를 만드는 레이로 전환되는 영화의 연출이 명백한 증거다. 결국 <라스트 제다이>는 누구나 포스를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확실하지 않은 암시를 부여할 뿐, 새로운 세계관의 질서 혹은 설정을 제시하지 못하고 과거로 다시 회귀한 셈이다. 그러니 핀과 로즈의 카지노 시퀀스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영화의 메시지도 문제다. <라스트 제다이>는 이전 시리즈와의 차이점으로서 실패를 통한 성장을 강조한다. 레이는 루크를 설득하지도, 카일로 렌을 되돌리지도 못한다. 핀은 광속 추적기를 끄지 못했고, 포는 퍼스트 오더의 공격과 추격을 막지도 따돌리지도 못했다. 제다이 혹은 포스의 극적인 반격은 없으며, 레이는 스카이워커 가문과 연관이 없다. 그러나 이 메시지는 결코 새롭다고 볼 수 없으며 애써 새로운 척하는 오래된 관습일 뿐이다. 왜냐하면 오비완 케노비가 아나킨의 타락을 막지 못했고, 루크는 만용을 부리다 손 한쪽을 잃고 아버지를 한 번에 설득하지 못하는 등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주인공들은 언제나 실패를 통해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개별 작품으로서 <라스트 제다이>를 호평하는 의견도 있다. 그럴 경우 <라스트 제다이>는 선과 악의 관계에 대해, 선택받은 운명에 대해 클리셰를 따르지 않는 참신한 방식으로 다뤄 낸 영화로 보일 수 있다. 구세대는 장엄하게 퇴장하고, 신세대는 자신들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하는 감동적인 스토리로 여겨질 수도 있다.


다만 이 영화가 어디까지나 스타워즈 시리즈의 일부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프랜차이즈의 지탱시키는 힘은 시리즈와 관객들이 함께 함께 만들어 온 전통과 역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리즈의 맥락 안에서 영화를 이해할 때, <라스트 제다이>처럼 스타워즈의 매력을 모두 부정하면서 정작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설사 개별적으로 훌륭한 작품이더라도 실망스럽다고 할 수밖에 없다.



<라스트 제다이>에게 주어진 임무는 분명했다. 백인 남성 중심의 질서,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40여 년 동안 고정된 구도, 오마주조차 자기 표절로 보이는 지리한 클리셰 등을 모두 타파한다. 기존의 캐릭터들이 만든 질서가 아닌 새로운 캐릭터들과 함께 새로운 질서를 확립해 스타워즈의 미래를 만든다. 디즈니의 스타워즈가 나아갈 방향은 확립한다.


그러나 <라스트 제다이>의 리모델링은 처절히 실패했다. 시리즈의 기반을 모두 파괴하고 애정 받던 캐릭터들(특히 루크)을 전부 부정했지만, 이를 대신할 캐릭터도, 질서도, 세계관도 제시하지 못했다. 리모델링을 한다면서 집을 공중분해시킨 셈이다. 시리즈의 전통과 역사를 무대책으로 무시했을 때 시리즈가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작,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다. 



D(Dreadful, 끔찍한)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한 리모델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