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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Apr 16. 2020

<라이프 오브 파이>, 섬을 떠나야만 그는 살 수 있다

<라이프 오브 파이> 리뷰

1. 인도 출신의 이민자로 캐나다에서 지내던 파이에게 어느 날 신과 기적을 찾는 작가가 방문한다. 신과 관련된 경험이 있는지 묻는 작가에게 파이는 어린 시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의 가족은 동물들을 싣고 이민을 떠나지만 도중 거센 폭풍우를 만난다. 배가 침몰한 채 혼자 살아남은 파이는 구명보트에 올라 타 얼룩말과 하이에나, 그리고 오랑우탄과 함께 표류한다. 그러나 이내 배고픔에 허덕이는 동물들은 서로를 공격하고, 유일하게 남은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함께 파이는 보트에 남는다.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는 개봉 당시 화려한 시각효과로 화제를 일으켰던 작품으로, 특히 파이가 바다에서 표류할 때 에피소드를 담은 아름다운 영상미가 인상적인 영화였다. 실제로 <라이프 오브 파이>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각효과상과 촬영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러나 시각효과에만 집중해서는 이 작품이 왜 그토록 큰 사랑을 받았는지를 온전히 느낄 수 없다. 파이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종교는 무슨 의미이고, 그들에게 왜 필요한지에 대해 말하는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을 때, 이 작품의 화려한 영상미는 진정으로 그 빛을 발한다. 



2. 모든 영화의 초반부는 중요하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해 물밑작업을 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초반부에 파이가 서로 다른 종교들을 경험하는 모습을 제시하며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던진다. 중요한 것은 이때 파이가 신을 믿어야 한다는 맹목적인 신념을 배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그는 힌두교의 신들을 통해 여러 신들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웠고, 신부님을 만나 예수를 배울 때, 그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었다며 비슈누 신에게 감사를 전한다. 


이처럼 한 종교의 가르침으로 다른 종교를 배우고, 한 종교의 시각에서 다른 종교를 경험하는 파이에게 종교들은 단순한 신의 대한 믿음이 아니다. 그에게 종교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이고, 세상을 구성하는 방법이다. 즉 그는 단 하나의 진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진실이 함께 공존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실제로 파이는 많은 종교들을 접하는 와중에도 논리와 이성에 근거해서 세상을 이해하기도 한다. 이름을 파이로 개명하는 에피소드나 바다에서 표류할 때 과학적 지식에 판단해 생존하는 대목이 그 예시로, 이는 파이가 종교들을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음을 더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3. 종교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 영화는 파이의 입을 통해 캐나다인 작가에게 전해지는 서로 다른 두 이야기를 통해 종교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답으로 마무리된다. 파이의 회상 속에서 일본 보험회사 직원들은 리처드 파커와 함께 표류하며 신비한 경험을 마친 그의 이야기를 믿지 못했고, 다른 이야기를 요구했다. 그러자 파이는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함께 표류하던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고 잡아먹는 과정을 거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는 끔찍하고 잔혹한 이야기를.   


이때 파이의 두 번째 이야기는 첫 번째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필요한 이유를 알려준다. 캐나다인 작가는 두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처음 들려준 이야기가 더 좋은 이야기라고 말한다. 신화 혹은 종교로 만들어지는 첫 번째 이야기가 참혹한 현실을 극복하고 삶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을 부여해줄 뿐만 아니라, 두 번째 이야기에 담긴 인간의 잔인한 현실과 인간이 꿈꾸는 이상 사이의 간극을 메워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이의 첫 번째 이야기, 즉 영화의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종교적 관점에서 사실을 신화적 구조로 구성한 것이 분명하다. 인간인 파이, 자연을 대표하는 호랑이인 리처드 파커, 그리고 초자연적 일들로 가득하며 내면의 공포와 불안을 느끼면서도 이를 극복하는 소년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신화의 구조다. 자신의 생존에 신의 도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언급도, 또 듣는 사람들이 믿기 힘들지만 입증하기도 힘들다는 점 역시 그의 첫 번째 이야기가 종교적 관점에서 비롯되었다는 증거다. 



4. 하지만 <라이프 오브 파이>는 종교의 긍정적인 역할을 부각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영화는 종교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 아니며, 종교에도 부정적인 측면이 있음을 함께 지적한다. 신의 품 안에서, 종교의 틀 안에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은 마냥 행복하고 언제나 위안을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파이의 첫 번째 이야기가 더 좋은 이야기라고 말한 작가도, 막상 첫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반신반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종교는 완전할 수 없다. 설사 종교의 틀 안에서 만나는 세상이 설사 진실이더라도, 이를 남들에게 설득시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이는 진실을 설명하기 위한 또 다른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종교의 불완전성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신의 형상을 한 섬에서 펼쳐지는 에피소드다. 생명을 죽이는 섬. 처음에 파이는 그 섬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다. 그러나 파이는 이내 죽은 사람의 유골을 발견하고 그 섬에 머무를 수 없는 이유를 깨닫는다. 아무리 아름답고 행복해 보일지라도, 현실에 발 붙이고 있는 한 현실을 외면한 채 종교와 신만 쫓으며 살아갈 수 없음을 알아챈 것이다. 그래서 파이는 죽을지도 모르고 어디에 갈지도 알 수 없으나 섬에서의 휴식과 위안을 뒤로한 채 다시 바다로 나아간다. 


한편 파이의 이야기는, 그의 깨달음은 이미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었던 오디세우스는 지중해를 떠돈다. 그러다 마침내 칼립소의 섬 '오기기아'에서 안식을 찾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행복을 뒤로하고 떠난다. 아내와 아들과 다스려야 하는 국가라는 현실에서 벗어나 여신이 주는 위안만을 쫓을 경우 자가 자신으로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의 섬에 그저 머무르는 것은 우리의 삶의 목적과 의미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그렇기에 우리는 현실이라는 바다를 항해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바다와 섬을 아름답게 묘사해 낸 이 작품의 시각효과와 영상미는 진정으로 그 빛을 발한다. 



5. 사실 처음 접할 때 영화의 전반부는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꼭 필요한 이야기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판데믹 위기 속에서도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라도 종교를 찾고, 종교에 의지하려는 모습을 보면 <라이프 오브 파이>가 던지는 화두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다. 


파이는 세 종교를 한 번에 믿을 수 있었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종교는 그 방식 중 하나이자, 효과적인 도구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서로 다른 내용의 두 이야기도 만들 수 있었다. 신이 어떻게 힘이 되는지, 또 동시에 신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결과가 무엇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섬을 떠난다. 그것이 그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파이를 인간(human being)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라이프 오브 파이>는 과학과 이성의 헤게모니 속 여전히 종교가 살아 숨 쉬고 필요한 이유에 대한 해설이나 다름없는 아름다운 영화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아름다운 영상으로 탄생한 심오한 매력의 내러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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