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라> 리뷰
1. 해군 주둔지에서 복무를 끝내고 마침내 집에 돌아온 '포드 브로디(애런 존슨)'. 사랑하는 아내 '엘(엘리자베스 올슨)', 그리고 아들과 재회하기가 무섭게 그는 일본에서 지내던 아버지 '조(브라이언 크랜스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집을 나선다. 포드와 재회한 조는 과거 일본에서 살 때 아내 '산드라(줄리엣 비노쉬)'가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았다며 아들을 설득한다. 아버지의 노력에 마침내 화난 마음을 진정시킨 포드는 아버지를 따라 거대한 세계와 재회한다.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된 가렛 에드워즈 감독의 <고질라>(2014)는 개봉 당시 호불호가 명확히 나뉜 평을 받았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고질라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독특한 연출을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보여준 점은 호평받는 대목이었다. 반대로 인간 캐릭터들의 드라마 비중이 너무나도 크고 개연성이 약하다는 점은 혹평받는 요소였다. 이러한 혹평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고질라>의 인간 주인공인 '포드 브로디'의 서사를 들여다보면 혹평에 대해 재고할 여지가 보이기도 한다.
2. 미 해군 대위인 포드 브로디는 서로 다른 두 세계에 발을 걸치고 있는 인물이다. 겉으로 보이는 포드는 번듯한 직장이 있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삶이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일본에서 원자력 발전소의 엔지니어였던 부모님과 함께 살았었다. 아버지의 생일날 발전소에서 '무토'가 일으킨 사고로 인해 어머니를 잃기 전까지는. 즉, 누구보다도 평범해 보이던 포드 브로디는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괴수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함께 경험하며 살아가던 인물인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포드의 배경이 고전적인 영웅들의 배경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많은 이야기와 신화는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으며, 그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두 세계 사이의 갈등이라는 배경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대표적인 사례가 그리스 신화다. 그리스 신화는 반신반인이거나 인간이지만 신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영웅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신과 인간의 세계 사이를 오가면서 좌절, 혼란, 역경을 경험하지만 이를 딛고 일어선다.
이는 현대의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해리 포터는 마법사와 머글 세계 사이에서 성인 마법사로 성장한다. MCU의 토니 스타크도 일반인과 히어로들의 세계 사이에서 스스로를 자책하며 히어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 캐릭터들은 수많은 관객들을 열광시켰고, <고질라>가 캐릭터를 구축하는 화법 역시 다르지 않다.
3. 포드 브로디를 신화 속의 영웅으로 바라보면, 그가 무토와 고질라의 싸움에 계속해서 개입하는 이유 역시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신화학자인 조지프 캠벨은 영웅의 여정에 겉으로 보이는 모험과 내면적인 여정이 함께 있다고 말한다. 즉 외면적으로 영웅은 집을 떠나서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 귀환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그는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풀리지 않는 의문, 자신에게 진짜 중요한 가치를 깨닫는 여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작중 포드에게 풀리지 않는 의문은 어머니의 죽음이다. 핵 발전소 사고로 알려진 그녀의 죽음에 대해 그는 철저히 숨기고 함구한다. 그래서 그는 과거를 잊지 못하는 아버지인 조를 싫어한다. 그가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상처를 거듭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드는 내심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이는 그가 어머니의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조가 출입금지 구역으로 가는 것을 말리지 않고 함께 떠나는 이유다.
영웅의 여정을 시작한 포드는 그 여정에서 거쳐야 할 단계들을 하나씩 밟아나간다. 캠벨에 따르면 영웅은 스스로 부여하는 시련이나 계시를 통해서 변모한다. 포드는 아버지와 함께 금지구역인 원자력 발전소에 들어가고, 공항에서 아이를 구하려다가 괴수들을 맞닥뜨린다. 영웅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한다. 포드는 무토에게 탈취당한 폭발 직전의 핵폭탄을 해체하기 위한, 탈출 계획이 없는 임무에 자원한다. 영웅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가두고 있던 장애물을 물리친다. 포드는 무토의 알을 불태우면서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달성함으로써 자신을 괴롭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난다. 영웅은 무엇인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핵폭탄을 해체하는데 실패한 포드는 목숨을 던져 무토와 함께 죽으려고 한다. 영웅으로서 포드는 가족들과 재회하며 자신의 아픔을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는 데 성공한다.
4. <고질라>에서 가장 인상적인 시퀀스는 영웅의 모험을 시각적으로, 또 상징적으로 구현해주고 있다. 핵폭탄 해체 임무에 자원한 포드와 특수 부대는 먹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에서 신호탄의 붉은 연기를 내뿜으며 지상으로 뛰어내린다. 고질라가 기다리는 곳으로, 운명과 죽음이 기다리는 곳으로 포드는 오디세우스가 하데스의 지하세계로 향하듯 망설임 없이 뛰어내린다. 포드는 그곳에서 과거의 트라우마를 떨쳐내고 가족의 품에 돌아갈 계기를 만들어내는데, 이는 오디세우스가 저승에서 트로이 전쟁 그 사이 죽은 아버지와 전우들에게 사과를 전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시퀀스는 작중 두 주인공, 고질라와 포드가 서로 상호작용하지 않는다는 비판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영웅은 심연으로, 자신의 내면으로 하강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맞닥뜨린다. 작중 먹구름에 뒤덮인 지상에서 임무에 실패하고 무토에게 죽을 뻔하던 포드는 고질라 덕분에 살아난다. 이때 고질라는 그저 지구의 균형을 지킬 뿐이라는 세리자와 박사이 말처럼 인간의 발버둥에 영향받지 않는, 오이디푸스, 아킬레우스 그리고 아이언맨도 벗어나지 못한 거대한 운명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고질라를 쉽게 보여주지 않는 연출이나 고질라를 올려다보는 앵글은 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을 쉽게 알려주지 않으면서도 운명의 무게를 강조해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에 더해 그 운명마저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포드의 결연함은 시퀀스에 숭고미를 불어넣으며 러닝타임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데도 성공한다.
5. <고질라>에 대한 평가 중 하나로 일본의 괴수 영화를 할리우드 영화와 결합시키는 데 성공한 작품이라는 평도 있다. 할리우드 상업 영화의 서사가 기본적으로 신화적인 구조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고질라와 포드 브로드라는 인물을 신화 속 운명과 영웅들의 관계에 대입시킨 선택은 충분히 효과적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단지 과한 우연에 의해 주인공이 무토와 고질라의 동선을 다소 억지스럽게 따라가는 전개, 그리고 후속작인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즈>가 이 성공요인을 잊은 것이 옥에 티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