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세폴리스> 리뷰
1. 이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무함마드처럼 위대한 예언자가 되기를 꿈꾸던 소녀 '마르잔'은 어느 날 부모님으로부터 놀라운 사실을 한 가지 배운다. 바로 자신이 학교에서 수없이 들어왔던 국왕이 사실은 듣던 대로 착하고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 이 날을 시작으로 마르잔은 자신이 알던 세상이 하나씩 무너지는 광경을 목격한다. 더 나아가 시위, 혁명, 시아파 이슬람 정부의 수립에 이르는 역사를 살아가면서 그녀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의문에 사로잡힌다. 혼란한 이란의 정치상황과 개인적인 어려움 속에 유럽으로 떠난 마르잔은, 전혀 다른 공간과 문화를 경험하며 어린 시절 품은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영화는 과거의 사건을 두 가지 방식으로 다룰 수 있다. 우선 <빅 쇼트>, <1987>처럼 서로 다른 인물들의 모습을 이어 붙여가면서 역사적 사건의 다양한 요인들을 펼쳐놓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특정 인물의 행보를 따라가는 것으로,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감정적인 면을 더하기도 하고 숨겨진 진실을 밝혀내기도 한다. <남산의 부장들>, <택시운전사>가 대표적이다. 후자에 속하는 <페르세폴리스>는 이란에서 태어나 다양한 공간을 오가는 마르잔의 인생을 쫓으며 한 여성, 종교, 국가가 거쳐야만 했던 굴곡진 여정을 보여준다.
2. 작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공간은 공항으로, 유럽에서 유학 중이던 마르잔이 이란 공항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상의 변화 혹은 탈피를 상징하는 공간답게 공항은 마르잔의 환경과 그녀가 겪을 경험의 주제가 달라진다는 암시하는 도구로서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이란에서 마르잔은 종교와 이데올로기의 충돌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녀는 왕정에 반대하고 마르크스의 사상의 영향을 받고 자유를 추구하는 혁명을 지지하는 분위기의 가정환경과 똑같이 왕정을 반대하지만 이슬람 근본주의에 입각해 전체주의적 사회질서를 만들던 국가 사이의 괴리감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다. 그러던 마르잔이 혼란의 탈출구로써 유럽 유학을 선택하는 삶의 전환을 영화는 공항을 배경으로 담아낸다.
유럽에 도착한 마르잔의 삶은 이제 인종과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사춘기 청소년의 괴로운 이야기로 전환된다. 그녀는 '발전된 서구'에 비해 '비 문명화된 야만적인 이란'에서 온 무식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어린 시절 유럽에 대해 품었던 그녀의 로망은 산산조각 나고 그녀는 이란인과 유럽인의 정체성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이에 그녀는 다시금 테헤란 공항으로 되돌아온다. 이란에 되돌아온 마르잔의 이야기는 이제 경직된 이슬람 사회 안에서 여성으로서 경험하는 대학 생활과 결혼생활에 대한 내용으로 바뀐다. 이처럼 <페르세폴리스>는 공항이라는 공간을 통해 마르잔의 삶의 여러 단면을 풀어놓는다.
3. 한편 영화는 마르잔의 꿈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그녀가 공항을 오가며 겪은 겪은 경험들이 그녀를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때 그녀의 인생 경험 중심에는 종교가 자리한다. 이란이라는 이슬람 문화권 내에서 살던 어린 마르잔은 꿈속에서 만난 신에게 무함마드와 같은 예언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슬람 정권에 의해 의지하던 삼촌이 처형되자 그녀는 신과의 관계를 끊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이란으로 돌아온 후 무기력함에 빠져 있던 마르잔은 어느 날 꿈속에서 다시금 신을 만나고, 지금까지 겪은 아픔을 위로받는다.
여기까지만 보면 마르잔은 많이들 생각하는 무슬림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신으로부터 위로받을 때, 그녀는 칼 마르크스에게서 앞으로 살아나갈 삶의 방향에 대한 힌트를 받는다. 그녀의 정체성을 형성한 종교는 이슬람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같은 종교의 신자여도 다른 요인에 의해 전혀 다른 가치를 중시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사는 무슬림은 히잡을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을 여기지만, 이집트에서는 여성 탄압의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무슬림에 대해 폭력적이라는 '정형화되고 동일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따라서 <페르세폴리스> 속 마르잔의 꿈은 개인과 종교 간의 관계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물론, 실재하지 않지만 서구에 의해 만들어진 무슬림의 이미지까지 무너뜨리는 실재하지 않는 종교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영화는 마르잔네 가족의 삶의 터전이자 이란의 수도이기도 한 테헤란의 거리를 그려내며 이란의 사회적 현실도 함께 들려준다. 작중 테헤란의 거리에서는 온갖 일들이 벌어진다. 왕정 및 친서방 정권에 항거하는 혁명의 거리는 전쟁으로 인해 폭격을 당하기도 하고, 이슬람 근본주의에 의해 이른바 사상범들과 여성들에 대한 탄압의 장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이처럼 <페르세폴리스>는 서로 다른 공간 안에 개인과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단면을 하나씩 담아내면서 외부에서는 보기 힘든 이란의 모습을 보여준다.
4. 이처럼 다양한 공간을 넘나들며 이란의 개인, 종교, 사회를 담아내는 스토리텔링은 이 작품의 제목이 왜 '페르세폴리스'여야 했는지에 대한 힌트를 주기도 한다. 작중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페르세폴리스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공간이다. 아케메네스 조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이 도시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정복하면서 불타 없어졌고 재건되지 않았다. 즉, 페르세폴리스는 서양 문명 때문에 쇠퇴한 이란을 상징하는 공간이나 다름없다. 중요한 것은 이란 사람들에게 페르시아의 후예라는 정체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1971년 팔레비 왕조가 페르시아 제국 건국 250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을 때 이를 비판했던 호메이니가 좋지 못한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렇기에 페르세폴리스는 쇠퇴한 이란, 또 이란 사람들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자부심이라는 양가적인 상징물이다.
영화는 페르세폴리스가 지니는 이러한 상징성을 끊임없이 암시한다. 갓 유럽에서 돌아온 마르잔에게 그녀의 아빠가 이란–이라크 전쟁은 사실상 서방의 무기 산업을 위한 대리전이었다고 자조 섞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왕정과 혁명 인한 극심한 혼란과 탄압이 서구 식민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마르잔 삼촌의 이야기가 그 예다. 과거 페르시아가 그리스에 의해 멸망했던 역사와 서구 열강에게 공격당하고 이용당한 이란의 현재를 오버랩시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이란 사람들이 혼란을 딛고 일어서기를 바라는 열망도 표출한다. 이는 다시금 자유를 찾기 위해 유럽으로 간 마르잔의 마지막을 비 오는 배경 안에 담아내면서 결코 긍정적으로 제시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란의 근현대 상황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동시에 서구에 대한 비판과 이란 스스로 자유를 찾고 발전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모두 담는 제목에는 역사적 공간으로서 페르세폴리스가 가장 적합했을 것이다.
5. 사실 <페르세폴리스>는 접근성이 좋은 영화라고 볼 수는 없다. 이란과 이슬람은 인기 있고 대중적인 영화의 소재로 보기 어려우며, 프랑스어 영화라는 점도 낯설게 느껴질 만한 이유다. 심지어 쉬운 영화도 아니다. 이란의 역사와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다면, 다소 벅차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르세폴리스>가 낯섦과 이질감을 뒤로 한채 충분히 감상할 가치가 있는 영화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한 개인과 한 민족, 그리고 한 국가의 굴곡진 삶을 그들의 내부자적 관점에서 그려낸, 단순하면서도 힘이 있고 개성적인 그림과 서양 언론들이 만들어 낸 이란의 이미지 사이에서 생각할 게 많아지는 영화가 바로 <페르세폴리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