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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Aug 26. 2020

<다운튼 애비>, 변하는 세상에서 전통이 갖는 위치

<다운튼 애비> 리뷰

1927년, 다운튼 애비 저택으로 버킹엄 궁전에서 출발한 한 통의 편지가 전해진다. 영국 국왕 부부가 요크셔 순방 중 저택에서 하룻밤을 묵을 거라는 소식을 접하자 '메리(미쉘 토커리)'와 '톰(엘렌 리치)'을 비롯한 크롤리 가문 사람들과 '배로(롭 제임스 콜리어)'와 '데이지(소피 맥쉐라)' 같은 고용인들까지 비상이 걸린다. 국왕 부부 보필을 위해 미리 도착한 왕실 사람들과 거듭 마찰이 생기는 와중에 그들은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국왕의 퍼레이드를 준비하며, 왕실을 노린 음모를 파악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이처럼 모두가 정신없이 움직이는 사이, 마침내 국왕 부부가 다운튼 애비에 도착한다. 


북미와 영국에서 작년 9월에 개봉한 <다운트 애비>는 에미상을 수상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동명의 영국 드라마 시리즈의 후속작이다. 드라마가 잘 알려지지 않았고, 영국의 왕실 혹은 귀족 문화와는 큰 접점이 없는 국내에서는 북미 지역에서의 흥행에도 불구하고 극장 상영이 불발된 바 있다. 실제로 영국 국왕 부부가 한 귀족 가문의 저택을 방문한다는 내용 자체는 큰 흥미를 자아낼 만한 요소가 아니기도 하다. 그러나 그저 먼 나라의 오래된 이야기로 넘기기에는, 특히 짧은 시간 동안 급변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화 속 전통과 변화에 대한 메시지는 남다른 구석이 있다.  



<다운트 애비>는 영국 국왕 부부가 요크셔를 지나갈 때 다운튼 애비에서 하룻밤을 묵을 거라는 연락이 갑작스럽게 당도하면서 시작한다. 이때 영화는 국왕을 맞이할 기회를 잡았다는 소식에 기뻐하는 사람들, 그리고 왕이 와봐야 할 일만 많아진다며 불평하고 굳이 왜 왕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내뱉는 이들의 반응을 모두 보여준다. 영국 사회가 내외적으로 큰 변화에 직면한 시기인 1927년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왕실의 전통과 권위에 대한 의구심이 퍼지기 시작한 변화의 시대를 포착하는 것이다. 영화는 두 명의 인물을 통해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제시한다.


우선 크롤리 백작 부부의 막내 사위인 톰은 아일랜드 출신으로, 수백 년 전 헨리 8세에 의해 점령된 아일랜드의 독립을 염원하며 영국의 귀족 사회 안에 편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왕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영화의 배경인 1927년이 아일랜드 독립을 둘러싼 IRA의 활동이 활발한 시기이자, 아일랜드를 자치령으로 인정한 '영국-아일랜드 조약'을 빌미로 발발한 내전이 종결된 직후라는 점은 그가 왕실의 전통과 권위에 의문을 가지기에 충분한 이유다. 또한 주방에서 일하는 데이지는 1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대영제국의 위세가 꺾이고, 공산주의가 노동자들 사이에서 힘을 얻으며 각종 파업이 발생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만큼 왕실의 존재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렇게 영화는 당장 도움이 되지 않는 왕실의 예법과 전통이 변화하는 시대에서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왕실의 유용성과 필요성에 대한 의문은 주인공들의 개인사와 더해지면서 전통 그 자체의 의미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실제로 주인공들은 왕실의 요구와 명령에 고뇌한다. '이디스(로라 카마이클)'는 남편이 왕의 명령 때문에 아기 출산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점에 크게 실망하고, '메리 공주(케이트 필립스)'는 왕실 예법에 따라 원치 않는 남편과 함께 살아야 하는 현실에 진저리 친다. 왕실 관리인들이 온갖 의례를 들먹이면서 본래 다운튼 애비 저택을 관리하던 고용인들의 존재를 무시한 결과 갈등은 점점 격렬해진다. 이러한 주인공들의 역경은 각기 다른 듯 보이지만, 그들의 시련은 온전히 개인적인 인생을 지니지 못하게 하는 폐단의 중심에 기존의 질서와 전통이 위치해 있음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왕실 이외의 전통이 이유가 되기도 한다. 크롤리 가문의 최연장자인 '바이올렛(매기 스미스)'은 가문의 전통과 명예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마우드 백셧(이멜다 스턴튼)'처럼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친척들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집사인 배로는 개인의 성적 지향성이 그저 기존 사회 질서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공권력의 탄압을 겪는다. 다운튼 애비의 상속자인 메리는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틀에 박힌 귀족의 삶에 염증을 느끼며 평범한 삶을 꿈꾼다. 이처럼 왕실 예법을 비롯한 가문의 관습과 사회적 통념 등 앞선 세대의 전통이 항상 동일한 의미일 수 없음을 지적하면서 영화는 전통의 중시가 오히려 개인들의 희망과 삶을 짓밟고, 장애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왕실 예법으로 대표되는 굳건한 전통과 관습의 굴레를 어떻게 떨쳐낼 수 있는가에 대해 <다운튼 애비>는 다음과 같은 답을 전한다. "우리의 조상들은 우리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았지.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도 전혀 다른 삶을 살 테지만 다운튼 애비는 늘 그 삶의 일부"라고. 마치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아스가르드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에 있다던 오딘의 말처럼, 전통과 예법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달려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영화는 전통을 반대하는 이가 전통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전통을 지켜야 할 사람은 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결말을 통해 이 대사에 힘을 실어준다. 영국 왕실에 반감을 가지는 톰은 메리 공주를 설득해 왕실의 분열을 막는다. 바이올렛은 가문의 수치일 수도 있었던 루시를 넓은 아량으로 받아들이며, 예법과 왕실을 우선해오던 왕은 이디스 부부의 가족사를 우선하라며 자신의 명령을 거둬들인다. 


그렇기에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무도회 장면은 영화의 메시지가 단적으로 함축된 만큼 가장 인상적이다. 원래 왕실 무도회는 화려한 장식과 옷, 아름다운 인테리어와 음악으로 가득하며 가장 우아하면서도 수많은 예법으로 가득한 장소다. 하지만 바로 그 공간에서 주인공들이 자신을 억누르던 전통에서 벗어나고 각자의 일상을 되찾는 의미의 전환이 이루어지기에 무도회 장면의 감흥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다운튼 애비>는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새로운 전통과 관습이 진정한 의미를 지닐 수 있는 조건, 즉 세대를 지나 내려오는 전통이 춤과 같은 형식에 담겨 있지 않으며 그 춤을 추는 사람들 덕분에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아름다운 영화가 끝난 후 한국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전쟁과 사상의 변화 등으로 인해 급변하는 당시를 배경으로 전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운튼 애비>의 메시지는 유독 남다를 수밖에 없다. 급격한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외환위기로 인한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과 이제 코로나 시대로 인해 다가올 변화까지. 한국 사회가 짧은 사이 경험한 변화는 작중 묘사되는 세대 간의 가치관의 충돌과 대립이 마냥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 같은, 아름답고 행복하며 그저 우아해 보이는 이 영화는 예상치 못한 울림과 공감을 남긴 채 지나간다. 



A(Acceptable, 무난함)

100여 년 전 먼 나라의 왕실과 귀족 이야기가 주는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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