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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Aug 31. 2020

<더 리더> 과거의 아픔으로 현재와 미래를 읽어주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리뷰

1. 10대 소년 '마이클(데이빗 크로스)'은 우연히 연상의 여인 '한나(케이트 윈슬렛)'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마이클이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고, 격렬하게 사랑도 나누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던 둘. 그러나 함께 여행을 다녀온 후에 한나는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한나를 잃은 아픔을 누른 채 살아가던 마이클은 법대 진학 후 우연히 나치 부역 혐의로 법정에 선 그녀를 만나고, 재판 과정에서 그녀가 자신을 떠나야만 했던 콤플렉스가 있음을 깨닫는다. 세월이 흐른 후에 '마이클(랄프 파인즈)'은 과거에 그랬듯 다양한 책들의 내용을 자신의 목소리로 녹음해 수감되어 있는 그녀에게 보낸다. 한나가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자신의 사랑을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멜로드라마는 작품에 따라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불호 측에서는 멜로드라마가 흔히 수준이 낮거나 주로 여성들의 눈물을 짜내기 위한 장르라고 폄하한다. 일반적으로 멜로드라마는 신분, 계급, 질병 등 다양한 사랑의 아픔을 정서적으로 과장시키는 특징을 지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는 젠더적 관점에서 볼 때 멜로드라마가 이성적이고 지적인 남성성과 감상적이고 충동적인 여성성이라는 고정된 속성을 재생산한다는 비판과도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멜로드라마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울려온 인기 장르이기도 하다. 멜로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나 메시지에 감상적인 정서가 적절하게 조화될 때, 해당 작품은 관객들의 뇌리에  즉각적이고 강렬하게 각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09년에 개봉해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총 다섯 부문의 후보작에 선정된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는 멜로드라마가 지닐 수 있는 짙은 호소력의 진수를 보여준다. 



2. <더 리더>는 한 여성과 한 남성의 애절한 멜로드라마를 보여준다. 마이클은 몸이 안 좋던 자신을 도와주었던 연상의 여인 한나에게 첫눈에 반한다. 한 소년의 진실한 감정을 느낀 한나도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져든다. 그래서 그는 사랑하는 여인의 부탁, 그가 가지고 있는 책들을 하나씩 소리 내어 읽어달라는 부탁을 기꺼이 들어준다. 그 이유는 물어보지 않은 채. 그저 책 속의 인물들과 함께 호흡하며 흥분하고 화내고 울고 기뻐하는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좋아서. 


젠더의 측면에서 봤을 때 한나와 마이클의 멜로드라마에는 불편한 부분이 일부 존재한다. 영화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섹슈얼리티를 깨닫게 해 주고, 반대로 남성은 여성에게 글이라는 지성을 가르친다. 남성에게 여성은 정서적인 위로와 만족감이고, 여성에게 남성은 구원이다. 이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을 비롯한 우디 앨런의 여러 작품에서 여성들이 어떤 일을 겪든 남성에게 되돌아가는 것처럼, 남성을 여성보다 우월한 위치에 두는 젠더 사이의 위계질서를 재생산하는 문법처럼 보이기도 한다.



3. 하지만 젠더적 관점에서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더 리더>의 멜로가 말하는 메시지는 주의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한나와 마이클의 멜로와 로맨스는 하나의 콤플렉스를 독일인이라는 공동체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한나는 분명 2차 세계 대전에 참여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죄가 불가피했다고 말한다. 나치의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는 문맹이라는 콤플렉스 때문에 죄를 인정한 것이지, 진정으로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감옥 안에서 글을 알고, 다른 이들의 아픔을 공유하면서 그녀는 진정으로 죄를 뉘우친다. 


이러한 한나의 서사는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전쟁 당시 독일인들의 집단적인 이야기처럼 보인다. 현재를 살아가는 독일인들이 공유하는 심리를 표출하는 도구인 것이다. 전쟁 중에 그들은 한나가 글을 몰랐듯이 전황에 대해서 무지했고, 그녀처럼 무엇이 악인지에 대한 성찰이 없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 그들은 자신들의 무관심, 무지, 그리고 성찰 의식의 부재가 유대인과 집시를 비롯한 수많은 죽음을 야기한 죄라는 것을 인정하고 반성해 왔다. 마치 글을 알게 된 한나처럼. 



4. 한나라는 캐릭터를 통해 과거를 속죄하고 반성한 영화는 마이클을 통해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남겨둔다. 마이클은 전쟁을 겪은 세대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한나가 유산으로 남긴 돈을 피해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한나의 돈을 피해자가 받지 않자 그는 그 돈을 문맹 퇴치 재단에 기부하고 딸에게 자신과 한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의 결말은 배경과 이유에 관계없이 전쟁 당시의 잘못을 인정하고 속죄하는 것은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현재 독일을 사는 젊은 세대의 일이기도 하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과거에 지은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일을 해도 피해자들의 아픔은 치유될 수 없다. 단지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과거의 피해자가 아닌 미래 세대를 위한 재단에 한나의 돈이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더 나아가 극우주의가 다시 득세하고 난민들에 대한 혐오가 마치 유대인들을 향했던 혐오처럼 확산하는 현재 독일과 전 세계에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5. 수감 상태인 한나에게 마이클은 오디오 북을 보내서 글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또 한나는 자신의 사후에 자신과 관련된 모든 일을 마이클에게 일임한다. 이별한 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남녀가 서로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었던 이유로 영화는 둘의 사랑이 진실된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마이클이 한나와 이별한 후 끝내 그녀에게서 느꼈던 사랑을 찾지 못하고 한나 역시 마이클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사랑. 그들의 사랑이 어긋나고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는 일련의 과정이 결국 서로의 모습을 직시하고, 잘못을 깨닫고, 앞으로 해야 할 할 일을 알려주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는 감정적이고 통속적이며 고정된 젠더 관념을 반복하는 안이한 멜로드라마라고 <더 리더>를 비판할 수 없는 이유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가 읽는 책은 두 남녀의 사랑 안에서 개인의 콤플렉스를 한 사회와 공동체의 것으로 확장시키고, 그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방향과 가능성을 제시하며 뜨거운 아픔과 밝은 감동을 함께 남기는 특별한 책이기 때문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개인에서 공동으로 확장된 콤플렉스의 발견과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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