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리뷰
지난 5월 20일, 잭 스나이더 감독은 본인이 제작, 감독을 맡은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 컷'이 2021년에 HBO 맥스에서 공개될 거라고 발표했다. 프로젝트에서 그가 개인사로 하차한 후, 메가폰을 이어받은 조스 웨던 감독이 <어벤져스>를 의식한 듯 밝고 유머스럽게 완성시킨 <저스티스 리그> 개봉 후 혹평을 받으며 흥행에 실패한 바 있다. 이에 많은 DC 팬들은 스나이더 감독의 영화를 공개해달라는 캠페인을 온라인에서 개시해 왔고, 스나이더 컷의 공개가 확정된 후 8월 23일에 온라인으로 열린 DC 팬돔에서 공개된 각종 이미지와 예고편에 열광하고 있다.
사실 팬들의 요구로 이미 개봉되었던 영화가 재편집되고, 심지어 공개에 이르는 경우는 그다지 흔한 사례가 아니다. 이는 바꿔 말해서 잭 스나이더의 비전과 세계관이 유달리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스티스 리그>의 전편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은 고전적인 서사시와 신화에서 느낄 수 있는 숭고함이 바로 그 매력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슈퍼맨(헨리 카빌)'의 승리로 끝난 슈퍼맨과 조드 장군 간의 격렬한 전투는 메트로폴리스를 파괴했고 일반 시민들에게 수많은 피해를 남겼다. 전투 과정에서 부하 직원들이 죽고 다친 모습을 생생히 경험한 브루스 웨인, '배트맨(벤 애플렉)'은 그동안 타락했던 많은 자들처럼 슈퍼맨 역시 언젠가 타락을 할 것이라 생각하며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로 여기기 시작한다. 한편 마찬가지로 슈퍼맨을 경계하는 '렉스 루터(제시 아이젠버그)'는 슈퍼맨에 대한 논쟁에 불을 붙이고, 그 논쟁을 지켜보던 배트맨은 세계의 미래를 위해 슈퍼맨의 무모하고 제어할 수 없는 힘을 막기로 결심한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은 DC 히어로들의 팀인 '저스티스 리그'가 만들어지게 된 이유를 가장 유명한 두 영웅의 대립을 통해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 대립의 중심에는 팀 이름에 걸맞게 정의(justice)에 대한 상이한 신념이 위치한다. 영화의 영어 제목을 보면 대결을 의미하는 표시로 vs가 아니라 v가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해 잭 스나이더 감독은 인터뷰에서 단지 두 영웅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신념, 가치, 정의가 충돌하는 지점을 그려내려고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두 영웅이 생각하는 정의는 어떻게 다를까? 배트맨에게 정의란 공포와 형벌이고 그 심연에는 의심이 존재한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강도에게 살해당한 장면을 목격하고, 그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그는 박쥐들이 자신을 빛으로 인도하는 꿈을 꾼다. 그래서 그는 배트 시그널로 밤하늘을 수놓은 채 박쥐가 되어서 직접 수많은 범죄자들을 처벌하고, 그 과정에서 친구를 포함해 수많은 이들을 잃으며 점점 인간에 대한 믿음을 내려놓는다. 대상이 누구든 조금의 위험도 좌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슈퍼맨은 도시 하나를 손쉽게 파괴할 수 있는, 반드시 막아 세워야 할 위협 그 자체다.
슈퍼맨의 정의는 정반대다. 그는 크립톤과 지구, 양쪽 부모님의 사랑과 신뢰 속에서 인류의 희망과 도움이 될 운명으로 자라났으며 사람들은 위기의 순간에 그의 가슴팍에 놓인 희망의 상징을 찾는다. 한편 그 역시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자신에 비하면 무력하지만, 그들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가 불합리한 의회의 청문회에 기꺼이 참석하고, 사람들이 만든 질서를 파괴하는 배트맨의 정체를 추적하는 이유다. 그래서 두 영웅, 사람에 대한 의심과 믿음은 거듭 부딪힐 수밖에 없다. 실제로 배트맨이 슈퍼맨을 처음 본 순간부터 그를 죽일 고민을 하는 데 비해, 슈퍼맨은 배트맨에게 기회를 주고 직접 싸우기 직전까지 그를 설득한다.
정반대를 바라보고 있는 두 영웅이 한 팀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마음을 돌려야만 한다. 영화는 생각을 바꾸는 영웅으로 배트맨을 지목한다. 슈퍼맨을 궁지에 몰아놓은 그는 죽어가는 순간에도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는 슈퍼맨을 본다. 꿈속에서도 괴물이나 위험한 외계인 정도였던 그로부터 자신처럼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될 수도 있는 한 사람을 목격한다. 위험은 결코 좌시할 수 없다는, 믿을 수 있는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본인의 신념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마주한 것이다. 이후 슈퍼맨과 힘을 합쳐 둠즈데이와 싸우고, 슈퍼맨이 목숨 바쳐 희생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배트맨은 조금씩 생각을 바꾼다. 슈퍼맨의 장례식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팀을 만들어야 한다며 "그가 살아서 이루지 못한 것을 죽어서라도 이루게 해 주겠어"라고 말하는 이유다.
영화는 배트맨과 다양한 공통점을 지닌 렉스 루터를 빌런으로 등장시키면서 그의 변화를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배트맨과 렉스 루터는 모두 명망 높은 사업가이면서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 법을 가볍게 무시하는 이중성을 갖고 있으며 영웅과 악당으로서 이중생활을 한다. 또한 부모가 없거나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성장배경의 영향으로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의심하기도 한다. 슈퍼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둘은 그의 힘과 선함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한 가지 존재한다. 슈퍼맨을 직접 만난 뒤 자신의 신념과 생각을 바꾼 배트맨과 달리 렉스 루터는 그렇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언론의 프레임을 이용해 배트맨에게 슈퍼맨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면서 두 영웅의 갈등과 대립을 유도하고, 대중들의 불안감을 자극한 루터. 그는 자신이 슈퍼맨의 부정적인 면, 잠재된 위험성만을 바라보듯 다른 이들도 그 면만을 바라보기를 원한고, 슈퍼맨을 직접 만난 후에도 부정적인 면만을 강조하며 자신의 신념을 바꾸지 않는다. 이러한 두 인물의 대비는 배트맨이 믿음과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슈퍼맨의 신념에 동조하게 되는 과정에 힘을 실어준다. 배트맨과 루터의 존재는 슈퍼맨의 선함과 그가 믿는 신념과 정의가 옳더라도, 그를 바라보는 인간의 태도와 관점에 따라 그가 선함과 악함 사이를 오갈 수 있음을 결국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캐릭터들이 지닌 사상, 가치, 철학의 차이를 잭 스나이더 감독은 전작인 <맨 오브 스틸>이 그러했듯, 고전적인 서사시와 신화를 연상케 하는 방식으로 풀어낸다. 예를 들어 슈퍼맨은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구도로 등장하거나 그의 뒤에 해가 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영화는 제우스를 비롯한 많은 이름을 거론하면서 그를 사실상 신의 위치에 둔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자신에게 거는 막중한 기대를 무거워하고, 자신이 그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다고 절망하며, 그 가운데 산에 올라 아버지를 만나면서 마음을 다잡는 슈퍼맨은 마치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던 한 남자를 연상시킨다. 목숨을 바쳐서 지구를 구한 슈퍼맨을 보면서 그의 뜻을 따르기로 하는 배트맨과 그러지 않는 루터의 대조는 예수의 제자들 혹은 그와 함께 못 박힌 두 죄수들이 보여준 태도 변화를 닮았다. 이렇게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표현 방식은 전체적으로 진중하고 어두운 영화 톤에 더해지면서 '숭고함'이라고 부를 만한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는 상당히 직설적이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MCU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MCU는 가장 아주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동기를 기반으로 서사를 진행하며 '인간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의에 대한 대립에서 만들어진 저스티스 리그와 달리, 어벤져스는 기본적으로 죽은 동료의 복수를 위해 만들어진 팀이다. <엔드게임>에서 마지막 타노스와의 대결 역시 결국 타노스에게 원한이 가득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복수하는 이야기였다. 물론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처럼 그들도 자유, 통제, 책임을 사이에 두고 토론을 벌이지만, 그 토론은 이내 가족과 친구에 대한 애정과 관련된 이야기로 이어진다.
개봉 당시 <배트맨 대 슈퍼맨>은 대중적으로나, 상업적으로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 상징과 비유를 읽지 않으면 매우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전개, 스케일은 크고 거대하나 시종일관 피곤하게 만드는 액션, 히어로 간의 애매한 분량 배분, 다음 시리즈를 염두에 둔 무리한 연출 등 여러 단점을 노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배트맨 대 슈퍼맨>이 보여준, 다른 프랜차이즈와 차별화된 비장하고 숭고한 분위기의 세계관은 여전히 많은 팬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특히 슈퍼맨의 죽음이 아직 잭 스나이더 감독이 구상한 서사의 중간 지점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수많은 팬들은 자신만의 매력으로 재무장할 스나이더 컷을 기다리고 있다.
https://brunch.co.kr/@potter1113/318(<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