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스위트홈>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한강 변에 위치한 오래된 아파트 단지 '그린 홈'. 계단에도 덩굴이 무성하게 난 이곳에는 끔찍한 사고로 가족을 잃은 고등학생 '차현수(송강)', 남편과 이별하게 된 소방관 '서이경(이시영)', 부모를 잃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은유(고민시)'와 '이은혁(이도현)' 남매, 베이시스트 '윤지수(박규영)'와 국어교사 '정재헌(김남희)'이 각자의 방에서 나름의 목표와 욕망을 지닌 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현수는 문 밖으로 피를 쏟는 증상을 보이는 한 여성을 목격하고, 동시에 이경과 은혁도 잠겨 버린 아파트 문밖으로 괴물을 목격한다. 이에 그들은 살인청부를 의뢰받고 그린 홈에 들어온 '편상욱(이진욱)'과 함께 괴물에 맞서 살아남기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
결론부터 말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은 재미보다 아쉬움이 앞서는 작품이다. 물론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부문 국내 1위, 전 세계 및 미국 3위를 차지할 정도의 재미는 충분하다. 다양한 모습의 괴물들 사이로 펼쳐지는 액션은 그간 한국 드라마에서 보기 어려웠던 스펙터클을 선사하며 한국형 크리처물 드라마의 인상적인 시작을 알린다. 송강, 고민시, 이진욱 등 트렌디한 배우들이 연기한 캐릭터 사이에 피어나는 다양한 케미스트리도 서사에 강한 흡입력을 부여하며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장르물 본연의 재미, 작품의 구성, 그리고 메시지가 화려한 외양에 미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이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게 볼 수는 없다.
2. 기본적으로 <스위트홈>은 크리처물이다. 예고편이나 홍보를 통해 꾸준히 강조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괴물에 맞서 싸우는 생존자들의 사투를 스토리의 중심에 둔 드라마인 것이다. 따라서 본 작품이 가장 공들여야 했던 대목은 괴물의 묘사와 활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좀비물에서 좀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좀비의 특성은 무엇인지, 좀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등장하는지를 효과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스위트홈>이 괴물을 다루는 방식은 아쉬움이 크다.
우선 괴물의 특성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지 못했다. 작중 괴물은 단순한 질병의 감염자 혹은 외계 생명체가 아니다. 이들은 인간이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혔을 때 그 욕망의 모습에 따라 등장하는 생명체다. 따라서 괴물은 단순히 건물 안의 생존자들을 물리적으로 위협할 뿐만 아니라 인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생존자들을 정신적으로 괴롭히고 서사에 깊이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작중 인간이었던 모습이 등장한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괴물은 아무런 사연 없이 단지 기괴하고 추악하게 생긴 생명체에 불과하며, 연인 혹은 가족 중 일부가 희생하는 신파를 위해 단편적인 수단으로 소비되는 데 그친다.
또한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 괴물이 활용되는 방식도 효과적이지 않다. 작중 괴물은 대부분 문이나 어둠 같은 장애물에 가려져 있다가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이는 단발성 서프라이즈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으로, 다양한 모습의 괴물을 각인시키고 빠르게 전개되는 초반부 스토리에 힘을 더해준다. 그러나 10부작이 끝날 때까지 같은 방식이 활용되기 때문에 점차 괴물의 등장 타이밍은 예상 가능해지며 긴장감도 낮아진다. 이처럼 괴물이 순간적인 감정선과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한 연출의 희생자가 된 결과,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크리처물이라는 정체성은 점차 약화된다.
3. 장르물의 정체성 약화로 인한 공백을 <스위트홈>은 심리 스릴러로 채우려고 시도한다. 실제로 드라마가 중반 이후부터 주인공 차현수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의 트라우마와 두려움을 다루며 괴물이 되는 과정에서의 내적 갈등을 다룬다. 이는 나름의 의도적인 구성으로 보이기도 한다. 필요한 CG 작업을 수행하기에는 제작비가 절대적으로 모자라다는 점을 고려할 때, 초반에는 괴물들을 등장시켜 시선을 사로잡고 이후 생존자의 내면 심리 변화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진행해 원작과의 차별화를 꾀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전략이 실패하면서 <스위트홈>은 끝내 장르의 모호함이라는 결정적인 단점을 드러낸다.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주인공의 감정선이나 심리 변화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인 차현수는 장기간 학교 폭력을 당해 가족과 친구들의 관계가 끊어지고 자살하고 싶어 하는 은둔형 외톨이다. 하지만 그는 아파트 내의 생존자들과 함께 괴물에 맞서 싸우고 사람들과 교감하고 관계를 맺으며 그들을 지키고 싶다는 새로운 욕망도 갖는다. 그렇기에 그가 끝내 날개 달린 괴물로 변하는 장면은 그간 피해왔던 트라우마를 직시, 극복함과 동시에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그들을 지키고 싶다는 욕망이 발현되는 카타르시스와 쾌감이 느껴지는 대목이어야 한다.
그러나 작중 현수의 심적 변화나 그의 변신이 지니는 중요성은 잘 체감되지 않는다. 그가 자신의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이고, 또한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장면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군상극의 성격도 띠다 보니 각각의 인물이 겪는 심적 변화를 설명할 공간 자체가 부족하기도 하다. 이는 다른 인물들의 경우에도 왜 특정 형태의 괴물이 되는지 혹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이유다. 그 결과 <스위트홈>은 크리처물의 정체성도 잡지 못하고, 심리극으로서의 차별화도 꾀하지 못한 채 그 중간에서 부유한다.
4. 이는 드라마를 사회적 맥락 안에서 읽어낼 때 더욱 아쉽다. 작중 경비원에게 썩은 생선을 주는 주민의 모습은 아파트라는 구조 안에서 사회 계층과 차별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고, 재판 결과 대신 사적 복수를 선택한 편상욱의 서사로부터는 사법불신이 만연한 한국 사회를 볼 수 있다. 이은혁 - 이유리 남매의 이야기는 취업난과 입시와 같은 청년, 청소년의 괴로움을 담고 있다. 그 외에도 노인, 장애인, 소년 소녀 가장 등 여러 소외 계층이 등장하며 드라마의 조각을 하나씩 채워준다.
그렇기에 이들이 함께 괴물과 싸우는 것, 그리고 서로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연대하고 노력하는 과정은 곧 한국이라는 사회 안에서 사람들이 갖게 된 트라우마와 욕망을 어떻게 이겨내고 분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메시지도 세밀한 묘사가 부족한 드라마의 구성 안에서 명확한 시사점을 제시하지 못하고 균형을 잃은 채 표류하고 만다.
5. <스위트홈>은 여러모로 기대가 큰 작품이었다. 장르물을 만나기 힘들었던 현실을 고려할 때, 특히 외면받던 <에이리언> 시리즈와 같은 크리처 공포물의 등장은 그 자체로 눈여겨볼 가치가 충분했다. <킹덤>에 버금가는 수준인 한 회당 30억 원이라는 제작비, 평가와 흥행을 모두 잡은 원작 웹툰의 유명세, <도깨비>와 <미스터 선샤인>을 연출했던 이응복 감독의 만남 역시 작품 외적으로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이었다.
그러나 공개된 결과물은 부픈 기대를 온전히 충족시키기에는 약간 모자라 보인다. 방대한 원작의 내용과 설정을 옮기지 못해 장르물로서의 재미가 줄어들고, 그로 인해 원작과의 차별화도 메시지의 전달도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Imagine Dragons의 'Warriors'를 비롯한 몇몇 음악이 전체적인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은 이유가 단지 선곡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첫 시도로 멋지게 성공을 거둔 듯 보이지만, 만약 시즌 2에서 단순히 음악만 바꾼다면 <스위트홈>은 그저 화려한 사상누각으로 남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