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noDAY Mar 25. 2021

<프라미싱 영 우먼> 아직 끝나지 않은 카산드라의 비극

<프라미싱영 우먼>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연인 캐리 멀리건이 보이지 않는 씬이 거의 없을 만큼 <프라미싱 영 우먼>은 매우 직설적인 작품이다. 딱히 다른 길로 새지 않는 영화는 가슴 깊이 사무친 한을 풀어내려는 한 여성의 처절한 복수극을 집중적으로 비춘다. 촉망받는 의대생이었던 '카산드라(캐리 멀리건)'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친구 니나가 같은 과 학생들에게 성폭행당한 후 자살하자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간다. 사건이 일어난 지 7년이 지났지만 마음속 응어리를 털어내지 못한 그녀는 밤마다 클럽을 전전하며 술 취한 여성과 섹스하려는 남자들을 응징한다. 어느 날, 학부생 시절 호감을 표했던 '라이언(보 번햄)'을 우연히 만난 캐시(카산드라의 애칭)는 그로부터 니나의 가해자에 대한 결정적인 정보를 얻고, 치밀하고 무자비한 복수에 나선다. 


<프라미싱 영 우먼>이 관객을 사로잡는 방법은 다양하다. 영화 장르의 차원에서 복수자가 복수에 성공할지, 실패할지, 혹은 반전을 선사할지 여부는 예측을 적중하기도 하고 빗겨나가기도 하면서 상당한 긴장감을 안긴다.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빼곡히 삽입된 'Boyz', '2 Become 1', 'It’s Raining Men'과 'Angel of the Morning'과 같은 노래의 가사를 귀 기울여 들으며 카산드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도 좋다. <데드풀>처럼 갑작스럽게 장면을 전환시키거나 <킹스맨>의 머리 폭발신을 연상케 하는 잔인함과 유머가 뒤섞인 연출과 편집을 음미하는 것도 감상 포인트 중 하나다. 하지만 <프라미싱 영 우먼>이 가장 눈과 귀를 사로잡는 대목은 따로 있다. 바로 캐리 멀리건이 연기하는 주인공의 이름, '카산드라'다. 



캐시(Casey, Cassie, Kasey)로도 변형되어 사용되며 게임, 소설 및 영화에서도 흔히 등장하는 카산드라(Cassandra, Kassandra)라는 이름의 기원은 아나톨리아의 한 도시 국가, 트로이에서 찾을 수 있다. 프리아모스 왕의 딸이자 아킬레우스에게 살해된 헥토르의 누이인 카산드라는 뛰어난 미모로 예언, 광명, 의술의 신인 아폴론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녀는 아폴론에게 예언 능력을 주면 그의 사랑을 받아주겠다고 약속하지만, 예언 능력을 얻은 후 그가 자신을 떠날 미래를 보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에 아폴론은 그녀의 예언에서 설득력을 빼앗아 가고, 그녀의 예언은 평생 무시당할 것이라는 저주를 내린다. 


이후 전해진 그녀의 삶은 문자 그대로 기구했다. 파리스가 헬레네를 납치해 트로이에 전쟁을 몰고 올 것이라는 미래와 트로이 목마가 도시를 파괴하게 될 미래를 내다보았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예언을 듣지 않았다. 고국의 멸망을 알면서도 막지 못하고 지켜봐야만 했던 그녀는 이후 그리스 군의 총지휘관인 아가멤논의 포로가 되어 미케네로 끌려갔다. 그곳에서도 카산드라는 아가멤논이 아내의 배신으로 인해 참혹하게 살해당하고 자신도 함께 죽게 될 미래를 내다보았고, 그 미래는 현실이 되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카산드라는 신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비련의 여성 중 하나로 보인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그녀가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순간이다.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오레스테이아> 3부작 중 1부인 <아가멤논>에서 카산드라는 아가멤논이 아들인 오레스테스에 의해 죽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지만, 아가멤논을 포함한 그 누구도 그 예언을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죽음이 손으로 만질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온 순간, 그녀는 "이미 일리온의 도시(트로이)가 그토록 비참한 종말을 고하는 것을 보았고, 또 그 도시를 함락한 자들도 신들의 심판에 의해 이렇게 죽어가는 것을 보았으니, 가서 나도 용감하게 죽음을 감수하겠어요"라고 노래한다. 


자신의 예언이 모두 무시당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비극의 구렁텅이에 빠진 그녀는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 자신의 예언을 긍정한다. 모두가 예언의 불길함을 무시하려고 할 때 그것을 긍정하고 담담히 받아들인다. 물론 이는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와 비극이 언제나 신의 뜻이나 운명에 도전한 인간의 파멸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녀의 마지막 선택은 그녀가 아폴론을 거부했듯이 신의 저주에 (소극적으로나마) 저항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신화와 비극 속 카산드라의 최후를 살피다 보면 <프라미싱 영 우먼> 속 주인공이 카산드라인 것은 필연처럼 보인다. 평생에 걸쳐 자신의 모든 예언이 무시당한 그녀처럼, 캐시는 니나가 성폭행을 당한 순간부터 자신들의 말이 철저히 무시되고, 왜곡되고, 사실이 아닌 주장에 머무르는 삶을 살았다. 실제로 영화는 복수의 대상을 명확히 설정하지 못한 채 그저 클럽에서 만난 남자들에게 무작위로 분풀이를 하는 캐시를 비추는 오프닝에서 복수의 결과를 보는 이의 상상에 맡긴다. 대신 몸을 만지지 말고 바지를 내리지 말라는 캐시의 말을 남자들이 무시하는 것이나 알고 보니 술에 취하지 않은 캐시의 응징에 경악하는 남성들의 모습 그 자체를 포커스를 맞추며 그녀가 견뎌야만 했던 삶의 어둠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이는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의 말을 들어주며 소통을 하는 라이언과 사랑을 키워 나가고, 그에게 특히 실망하고 분노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 속 카산드라는 신화 속 카산드라가 걸어간 길의 뒤를 따르되, 답습하지는 않는다. 최후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결국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인물로 남아버린 과거의 카산드라는 끝내 자신의 말을 더 높은 지위에 있는 권력자들에게 관철시키지 못했다. 현재의 카산드라는 다르다. 그녀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이들, 피해자스러움을 강요하는 이들, 무조건적으로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쉼 없이 고함치고 자신의 이야기를 관철시킨다. 과거와 달리 더욱 적극적으로, 그리고 더 절박하게 행동한다.  


또 과거의 카산드라처럼 예상할 수 있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지만, 현재의 카산드라는 자신의 죽음마저 확성기 삼아 니나의 복수를 완성시키는 도구로 이용한다. 의술의 신인 아폴론에게 예언의 재능을 받았지만 그것을 써보지도 못했던 과거의 자신과 달리 그녀는 의대에서 배운 기술을 활용해 자신의 복수에 써먹는다. 비극 속 카산드라가 보여준 저항정신을 이어받아 오래된 신화의 구조와 그 안에 고정된 여성상에 변화를 준다. 이렇게 영화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제목대로 미래가 창창했던 여성(Promising Young Woman)의 목소리가 묵살당했던 현실을 날카롭게 후벼 팜과 동시에 이제는 옛날과 다르다는 희망 섞인 기대를 드러낸다. 그렇기에 카산드라의 복수극은 단지 한 여성의 복수를 넘어서 오랜 기간 쌓여온 수많은 여성들의 한이 데 담긴 일격처럼 느껴진다.


더 나아가 <프라미싱 영 우먼>은 여성이라는 젠더의 정체성 밖에서 살아 있는 고정관념도 파괴한다. 피해자에게 피해자스러움을 강요하지 않는 연출을 선보이며, 그렇기에 메시지의 진정성은 더욱 강해진다. 니나가 당한 성폭행당하는 상황을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않으면서도 그 장면의 잔혹함을 충분히 암시하면서 영화의 윤리 안에서 적정한 선을 지킨다. 과거는 접어두고 미래를 살자며 다그치는 카산드라의 어머니와 달리 카산드라의 아버지는 그녀가 온전히 자기 자신을 되찾을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준다. 



하지만 카산드라의 복수를 완전한 성공이라 할 수 있을지, 트로이의 카산드라처럼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사라지던 여성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을지에 대해서 영화는 확신을 주지 못한다. 캐시의 복수가 철저히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과거의 잘못을 되돌리고 자신들의 고통을 가능한 한 많이 가해자들에게 되돌려주는 데만 몰두할 뿐, 새로운 미래를 위한 비전까지 보여주지는 못한다. 이는 애초에 단추를 잘못 끼운 그녀에게 기대할 수 없는, 그녀가 꿀 수 없는 꿈이었을지 모른다. 


이러한 한계, 아쉬움, 과제와 숙제는 카산드라의 또 다른 이름, 그녀의 성인 '토마스'에 담겨 있다.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인 사도 토마스는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식을 전한 동료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보고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부활한 예수를 접한 후에는 그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신앙을 고백한다. 이 에피소드는 특정 사건에 대해 양쪽의 말을 동등하게 듣고 판단을 내릴 때 비로소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즉, <프라미싱 영 우먼>은 아직도 성폭력 피해자들의 말이 무시되고 명백히 전달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에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토마스 사도의 이름을 빌려 비판한다.


이처럼 <프라미싱 영 우먼>은 카산드라 토마스라는 그녀의 이름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영리하게 담아낸다. 이는 이 작품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각본, 여우주연, 편집상 후보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에머랄드 펜넬 감독이 크리틱스 초이스와 미국 작가 조합상에서 각본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더 나아가 주연인 캐리 멀리건이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강력한 수상 후보인 이유도 납득시킨다. 이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환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그녀의 눈물과 미소에는 과거의 카산드라와 현재의 카산드라가 공유한 응어리는 물론, 미래의 카산드라가 살아갈 삶이 보다 밝고 따뜻하기를 바라는 희망과 기대가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반복되는 틀에 반복되지 않을 이야기를 담은 처절한 복수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