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라 VS. 콩> 리뷰
<고질라 VS. 콩>은 <고질라>를 시작으로 <콩: 스컬 아일랜드>,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즈>를 통해 기반을 쌓은 몬스터버스의 4번째 이야기이자, 마무리다. 타이탄들의 왕이 되고 3년이 흐른 후, 고질라는 '월터 시먼스(데미안 비쉬어)'가 이끄는 다국적 기업 에이펙스에 존재하는 강력한 힘을 감지하고 공장을 습격해 초토화시킨다. 이에 고질라를 막기 위해서는 지구 내부의 지구이자 타이탄의 고향인 할로우 어스에서 에너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네이선(알렉산더 스카스카드)은 또 다른 타이탄인 콩에게 길 안내를 부탁하기 위해 콩을 보호관찰 중이던 '아일린(레베카 홀)'을 찾아간다. 그들은 콩과 특별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아이 '지아(케이리 호틀)'와 함께 타이탄들의 고향 일지 모르는 그곳으로 위험한 여정을 떠난다. 그러던 중 분노에 찬 고질라의 공격을 받고, 마침내 고질라와 콩은 격돌한다.
솔직히 말해 <고질라 VS. 콩>에서 기대하는 것은 제목 그대로 고질라와 킹콩, 거대한 괴수들의 박력 있는 대결, 강렬한 스펙터클이다.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퍼시픽 림>에서 거대 로봇이 유조선으로 괴수를 때려잡는 것만큼이나 화끈한 액션에 대한 기다림이 유튜브에서 예고편 조회수가 7,000만을 넘길 수 있었던 원동력인 것이다. 실제로 영화는 그 자체로 숨죽이고 볼 정도로 긴장감 넘치고 웅장하고 강렬한 괴수들의 격돌을 보여준다. 하지만 <고질라 VS. 콩> 한 가지 대목을 간과했다. 사는 곳도 다르고 만나본 적도 없는 두 괴수가 난데없이 싸우는 광경은 최소한의 배경과 이유가 설득력 있게 제시될 때 더욱 흥미로워진다는 점이다.
<고질라 VS. 콩>이 기대에 부응하는 환상적인 볼거리를 선사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영화는 세 번의 큰 전투 시퀀스를 보여주는데, 각 시퀀스마다 다른 포인트에 중점을 둔 연출은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사한다. 우선 바다에서 펼쳐지는 고질라와 콩의 싸움은 첫 번째 대결답게 압도적인 스케일을 강조한다. 수면 가까이에서 혹은 전함의 갑판 바로 위에서 싸움을 목격하는 연출로 인해 수직적인 구도가 부각되기 때문이다. 고질라와 달리 바다가 어색한 콩을 지원하는 미군 전투기의 공습이나 군함의 포격 역시 수직적인 움직임을 더해준다. 이로 인해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두 괴수의 압도적인 규모나 싸움으로 인한 거대한 파도는 엄청난 위압감과 긴장감을 준다.
홍콩에서 펼쳐지는 두 번째 전투는 극명히 다른 두 괴수의 장점을 극대화한 액션 시퀀스의 연출 아이디어가 빛을 발한다. 고질라는 거대한 체격과 압도적인 힘, 킹콩에게 없는 꼬리와 방사능 열선 등 본연의 피지컬을 앞세운다. 반대로 콩은 빠른 스피드와 순발력, 두 손을 활용해 무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홍콩의 빌딩 숲을 마치 나무 타듯 넘나들면서 고질라를 공략한다. 그러다 보니 점유율 중심의 맨체스터 시티와 역습 중심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간의 더비 매치 마냥 펼쳐진 두 괴수의 2라운드 대결은 누가 이길지 쉽사리 가늠되지 않는 짜릿한 서스펜스를 안긴다.
또한 이러한 상성의 차이는 새로운 적에 맞서야 하는 마지막 싸움에서 고질라와 콩의 협력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그 결과 액션 시퀀스가 연달아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볼거리는 관객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데 성공한다. 콩이 도낏자루를 고질라의 입에 쑤셔 넣는 원작의 오마주와 중력이 뒤집힌 지구의 내부가 보여주는 환상적인 영상미는 덤이다.
그러나 <고질라 VS. 콩>은 화려한 기술력이 돋보이는 영상에서 멈출 뿐, 이야기를 전달하지는 못한다. 아무리 인간이 괴수의 조력자, 혹은 사건을 설명하는 화자에 그치는 것이 괴수물의 관습이라 하더라도 철저히 우연에 의존하는 인간 주인공들은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동력을 거의 제공하지 못한다. 드라마의 전개가 우연과 운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등학생의 신분인 '매디슨(밀리 바비 브라운)'은 음모론자인 '버니(브라이언 타이리 헨리)'를 우연히 만나서 고질라의 공격을 받고 정부 기관인 '모나크'에 의해 통제 중인 에이팩스의 본사에 침투한다. 그들은 우연히 홍콩으로 이동할 수 있는 수송선에 탑승하고, 도착한 공장에서 우연히 메카 고지라의 정체와 월터 시먼스가 '세리자와(오구라 슌)'와 꾸미는 음모를 파악한다. 그나마 콩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소녀 지아의 존재 덕분에 콩을 타이탄의 고향인 지구 내부로 데려가는 네이선과 아일린의 여정에 최소한의 무게감이 실릴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버팀목이 되어야 할 두 괴수의 서사가 설득력이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영화는 작중 사건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에 대해서 설명을 사실상 제공하지 않는다. 단지 일어나고 있는 사건과 현상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 에이팩스가 어떻게 킹 기도라의 머리를 확보해 메카 고질라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는지, 시먼스와 세리자와가 두 편의 영화에 걸쳐 인간 세상을 구원해 준 고질라를 악으로 규정하고 적대시하는 이유 등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전작에서 스컬 아일랜드의 왕으로 군림하게 된 콩이 어떤 연유로 실험실에 갇히게 되었는지도 대사 한 줄로 처리된다. 콩이 고질라에게 치명타를 안길 수 있도록 편리하게 준비된 도끼를 손쉽게 발견하는 장면, 고질라가 메카 고지라의 존재를 감지한 뒤 홍콩을 직접 공격하는 대신 굳이 콩과 여러 번 싸워야만 하는 이유와 당위성도 그저 주어질 뿐 이해시키고 설명해주려는 노력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입체적인 스토리를 풀어놓을 수 있는 기반이 충분했다는 점에서 잠재력을 온전히 끌어내지 못한 작위적인 스토리텔링은 아쉬움이 적지 않다. 몬스터버스는 앞선 세 편의 영화를 통해 고질라와 콩과 같은 괴수들을 선악의 범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압도적인 힘과 능력을 지닌 타이탄들은 인간을 의도적으로 적대시하거나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자연에 비유되는 존재들로 묘사되었다. 그렇기에 괴수를 접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 인간의 관점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양태들, 그리고 서로 다른 자연에 대한 이해로 인한 갈등을 담을 수 있었다. 달리 말해 메카 고지라를 이용하는 에이팩스와 시먼스의 음모, 이를 막으려는 매디슨과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의 역할을 강조하는 지아의 서사는 영화 전개를 위한 기능 이상의 역할을 맡을 수도 있었다.
이러한 가능성을 포기한 결정적인 이유는 전작의 실패다.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는 타이탄들을 자극해 테러를 일으키려던 이들과 그들을 막으려는 인간 간의 갈등이 지나치게 많은 분량과 비중을 차지하면서 정작 타이탄들의 전투를 유려하게 묘사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실패했던 전철을 피하기 위해서 아예 인간 캐릭터들의 서사를 쳐내고 고질라와 콩, 두 괴수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킨 결과가 이번 작품인 셈이다. 물론 장점에 확실히 힘을 실어주는 <고질라 VS. 콩>의 선택은 나름대로 성공적이다. 그러나 최소한으로 필요한 배경 설명, 캐릭터들의 내면 묘사 등이 삭제되면서 영화는 최소한의 깊이도 지니지 못한 채 매우 명면적이고 뻔한 전개로 흘러가 버린다. 그렇게 괴수들이 싸우는 찰나의 순간을 위해 나머지 러닝타임을 참아내기에는 플롯들의 연결이 너무나도 헐겁다.
연극의 아류로 여겨졌던 영화는 편집이나 카메라의 클로즈업, CG와 같은 차별점을 강조한 뮌스터베르크, 아른하임과 같은 학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고 예술성을 정립해오면서도, 결코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라는 특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영화는 얼마나 그럴싸하고 생생하게 보여주느냐는 물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도 함께 바탕이 되어야 한다. 실제로 흑백에서 컬러로, 무성에서 유성으로, 2d에서 3d를 거쳐 4dx까지 표현 방식은 변화해 왔지만 여전히 영화는 이야기에 근간을 두고 있다. 이는 관객들의 기다림에 충실히 보답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질라 VS. 콩>이 보여준 한 시리즈의 마무리가 끝내 불만족스러울 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