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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Mar 29. 2022

<킹 리차드> 능력주의의 현실을 환기시키는 부성애

<킹 리차드>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시기에 거리를 다닐 때도 목숨을 위협받는 빈민촌에서 살아간 '리차드 윌리엄스(윌 스미스)'. 어느 날 TV에서 테니스 대회 우승자가 막대한 상금을 받는 장면을 본 그는 자신의 두 딸 '비너스(사니야 시드니)'와 '세리나(데미 싱글턴)'를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로 키우기로 결심한다. 테니스 코치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그는 균형 잡힌 시각과 면밀한 통찰력을 지닌 아내 '오레이슨(안저뉴 엘리스)'의 도움을 받아 두 자매의 육성에 몰두한다. 캘리포니아 컴튼의 형편없는 테니스 코트에서 시작된 여정은 주변인의 부정적 예측과 불리함을 모두 극복해 나가고, 성공을 눈앞에 둔 두 딸에게 리차드는 마지막 교훈을 가르친다.  


현대 축구를 논하는 데 있어 메시와 호날두를 빼놓을 수 없고, 농구를 논하는 데 조던을 빼놓을 수 없듯이, 테니스를 논하는 데 있어서 윌리엄스 자매를 빠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5번의 윔블던 오픈을 포함해 수 차례 메이저 대회 트로피를 차지한 비너스와 슈테프 그라프를 제외하면 4대 메이저 대회 우승과 올림픽 단식 금메달을 모두 차지한 유일한 커리어 골든 슬램 달성자인 세리나는 문자 그대로 테니스계의 전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두 자매의 성공 신화가 미디어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결코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또 성공 신화를 알고 있는 한, 그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그러나 윌리엄스 자매의 신화를 묘사하는 <킹 리처드>의 접근 방식은 예상을 벗어난다. 수많은 스포츠 전기 영화와는 결이 다소 다른, 신선한 접근법을 선택했다. 그 중심에는 자매의 아버지인 리차드 윌리엄스가 있다. 영화는 성공을 일구어 낸 당사자들이 아니라 조력자의 시선으로 신화를 들여다본다. 신선한 뉘앙스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킹 리차드>는 스포츠 전기 영화의 흔한 공식을 넘어선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결과 <킹 리차드> 보다 보편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입장에서 자칫 신화에 가려질 수도 있었던 현실을 끄집어낸다. 특히 영화는 '능력주의'라는 이름의 현실이 지닌 여러 모습을 흑인으로서의 리차드, 코치로서의 리차드, 아버지로서의 리차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흑인으로서의 리차드

매일 같이, 또 비가 오는 날에는 젖은 코트에 대한 적응력을 높인다고 딸들을 훈련시키는 리차드를 두고 주변 이웃들은 그가 딸들을 학대한다고 비난하며 경찰에 신고하기까지 한다. 또 부유층도 쉽사리 뒷바라지해주기 힘든 테니스를 굳이 할 필요가 있냐며 다른 종목을 추천하는 이들의 권유에도 리차드의 결심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단순히 딸들의 재능을 봐서가 아니다. 그에게 테니스는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나 불우하게 자란 자신과는 다른 삶을 딸들이 살고, 더 밝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세상은 날 무시했지만 너흰 달라, 존중받게 할 거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리차드와 비너스, 세레나의 이야기는 흑인으로서의 꿈을 이루어낸다. 비너스가 처음으로 참가한 프로 무대에서 그녀의 플레이를 보는 흑인, 여성 관중들의 표정과 반응은 호기심에서 열광과 팬심으로 변해간다. 세 부녀가 ‘백인 스포츠’인 테니스에 낸 균열은 그들을 보고 테니스 선수를 꿈꾸기 시작한 흑인들로 인해 점점 더 커진다. 그 덕분에 흑인이라는 이유로 과잉진압 당하거나 총에 맞지 않고 마빠지지 않는 삶의 가능성도 덩달아 커진다. 흑인에게도 다른 미래가 있음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리차드의 결심은 특히 그가 흑인 사회에 만연한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장면에서 강조된다. 공용 테니스 코트에서 딸들을 훈련시키는 리차드는 코트가 있는 지역의 갱들에게 숱한 모욕과 폭행을 당한다. 전설적인 NBA 선수였던 찰스 버클리도 지적한 바 있는, 학교를 제대로 다니고 좋은 성적을 받아서 사회적으로 성공하려는 흑인의 노력을 폄하하는 잘못된 관념과 리차드는 흑인이었기 때문에 맞서 싸워야 했던 것이다. 이는 리차드가 흑인으로서 지니고 있던 트라우마를 아내에게 위로받는 장면, 또 비너스에게 자신의 불우한 어린 시절을 고백하는 대목이 더욱 뭉클한 이유이기도 하다.



코치로서의 리차드

이때 그가 같은 흑인들 사이에서도 팽배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뚫고, 빈민촌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철저한 능력주의다. 미리 짜 놓은 계획대로 딸들에게 능력을 증명하기를 요구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스티브 잡스를 보는 듯하다. 불가능할 것 같은 프로젝트를 끈질기게 설득하고, 때로는 협박으로 성공시킨 잡스처럼 현실을 왜곡한 게 아닌가 싶은 능력을 끌어내는 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 챔피언이 될 거라는 거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혀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굳은 믿음을 딸들과 공유하면서 그저 열정이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불가능을 가능으로 뒤바꾸는 자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끄집어낸다.


그러면서도 리차드는 결코 막연한 기대나 예측, 그리고 호의와 혜택의 힘에 기대려 하지 않는다. 능력을 확실하게 증명하고, 또 보여준 능력으로서만 가치를 인정받으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부유하지 않은 흑인으로서 비너스와 세리나를 지도해 이루어낸 성과와 업적이 대단하다고 칭찬하는 에이전트들의 말에 크게 분노하고, 그들의 계약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마찬가지로 비너스의 프로 데뷔 직전에 거대한 계약금을 제시한 나이키와의 협상에서도 아직 능력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능력과 증명이라는 잣대에 충실했기 때문에 작중 비너스는 리차드가 누누이 말했던 대로 테니스계의 스타이자 롤모델로 자리 잡는 데 성공한다.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자리를 차지하거나 외부의 평가에 의해 매겨진 가치에 안주하는 대신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믿고 자신을 둘러싼 차별과 편견을 진정으로 하나하나 깨부순다. 이처럼 작고 좁은 문틈을 뚫어서 스스로를 증명했기에 그녀의 성공은 유사한 처지에 있고 동질감을 느끼는 모든 사회적 약자에게 힘과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다. 리차드는 단순히 테니스뿐만 아니라 인생을 가르친 코치인 셈이다.



아버지로서의 리차드

흥미로운 것은 코치로서의 리처드가 철저히 능력주의에 입각한 사고로 딸들을 성공까지 이끄는 와중에도, 아버지로서의 리처드는 능력주의가 낳을 수 있는 병폐를 경계하고 예방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능력주의의 폐해를 지적한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은 능력주의의 승리자들이 두 가지 문제를 겪게 된다고 지적한다. 하나는 오만함이다. 성공이 자신의 능력에 대한 보상이고, 노력에 따른 대가로만 여기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 이들을 무시하고 조롱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스스로를 갉아먹는 피폐함이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이나 삶의 가치를 숙고하는 대신 계속해서 능력을 증명하고 성공해야 하기에 완벽주의에 빠져들고, 그로 인해 정신적으로 쇠약해진다.


이러한 문제점은 작중 아버지 리차드의 시선이 오랫동안 머무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는 주니어 대회에서 연전연승하는 비너스와 세리나, 그리고 다른 딸들이 패배한 경쟁자들을 조롱하는 모습에 크게 분노한다. 또 어려서부터 수많은 대회에 참가해 큰 성공을 거둔 스타 유망주가 마약에 빠지고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모습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코치와 싸우는 한이 있어도 겸손과 평범함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려고 한다. 아이들에게 <신데렐라>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면서 신데렐라의 성공이 아닌 그녀의 내면을 가득 채운 바른 품성을 보고 느끼게끔 한다. 나날이 유명해지는 딸들에게 그들이 갖는 영향력을 일깨우고, 엔딩 크레디트 속 내레이션에서도 언급하듯 사회로 그들의 능력과 성공을 환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시에 두 딸을 끝없는 경쟁에서 떼어 놓으려고 한다. 주니어 대회에 참가해 커리어를 쌓아야 한다는 에이전트와 코치의 의견을 무시하는 한이 있어도, 언론과의 접촉을 통제하면서 독선적이라는 비판을 듣더라도 평범한 학생이자 청소년으로서 필요한 모든 경험을 보장해주려 한다. 이처럼 능력주의적 성공관으로 인해 오만해진 승자와 굴욕을 느낀 패자 간의 긴장관계를 풀기 위해 사회적 연대와 유대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센델의 주장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특히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고 그로 인해 피폐해지는 청소년들을 현실이나 미디어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회적 맥락 안에서 보면, 그 위험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아버지의 진심은 더욱 감동적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아버지 리차드의 모습은 영화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해준다. 사실 세 부녀의 성공을 온전히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하면 된다'는 능력주의의 구호가 모두에게 희망찬 미래를 약속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공을 움켜쥐는 이들은 언제나 소수이고, 다수는 공허한 빈손에 그쳐야만 한다.


그러나 깔끔하고 세련됐지만 무난한 할리우드의 문법과 방식으로 풀어낸 세 부녀의 이야기는 결코 ‘하면 된다’는 명제의 반복에 그치지 않는다. 리차드와 윌리엄스 자매가 걷지 않은 길, 정반대의 길에 대한 경계와 의심이 영화 전반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킹 리차드>는 기적을 보여주지만 기적의 결과가 아닌 과정을 보여주고, 그 기적에 속하지 않는 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할지를 되짚어 보게 만드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상술하였듯이 신화의 주인공이 아닌 조력자인 리차드의 관점에서 성공 신화를 바라본 신선한 접근법이다. 그래서인지 전반적인 완성도가 준수하나 평범한 영화에서  윌 스미스의 연기가 유달리 인상적인 것도 사실이다. 문자 그대로 리차드 윌리엄스의 현현이 되어버린 그는 흑인으로서, 코치로서, 아버지로서 리차드가 느꼈을 모든 것을 미소 하나에, 웃음 한 번에, 눈물 한 방울에 고스란히 담아서 전달하기 때문이다. 이는 비록 시상식에서의 논란으로 인해 의미와 가치가 퇴색된 감이 있기는 하나 윌 스미스에게 돌아간 남우주연상 오스카 트로피 자체는 정당해 보이는 이유다.  



A(Acceptable, 무난함)

능력주의의 명과 암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부성애




https://youtu.be/JH_EPtKSC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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