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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Aug 08. 2022

<비상선언> 피로보다는 위험이 느껴지는 신파의 연속

<비상선언>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딸의 아토피 치료를 위해 비행 공포증을 무릅쓰고 인천발 하와이행 KI501 항공편에 탑승한 '박재혁(이병헌)'. 그는 공항에서 딸에게 이상한 말을 하던 '류진석(임시완)'이 같은 비행기에 탄 것을 보고 불편함을 숨기지 못하며 비행기 사무장인 '김희진(김소진)'에게 진석의 수상한 점을 알린다. 한편, 형사 팀장인 '구인호(송강호)'는 류진석이 바이러스를 이용한 살인 용의자이며 전날 비행기 테러 예고 영상을 올린 사실을 파악하고 수사에 착수한다. 그 와중에 기내에서는 온몸에 수포와 각혈이 증상을 보이다 죽은 사망자가 나오고, 부기장 '최현수(김남길)'는 승무원들과 승객들의 동요를 막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점점 기침과 가려움을 호소하는 승객들이 늘어나면서 비행기 안은 혼란과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이에 국토부 장관 '김숙희(전도연)'는 대테러센터를 구성하고 비행기를 착륙시킬 방법을 찾기 위해 긴급회의를 소집한다.



한국의 재난 영화와 세월호 사고

영화의 다양한 역할과 기능 중에는 공동체의 집단적 경험을 비추는 창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재난 영화는 가상의 재난을 스크린에 투사함으로써 공동체가 겪은 실제 재난을 마주하는 거울과도 같다. 그래서 재난 영화는 재난을 스펙터클로 활용하다가도 그 스펙터클을 온전히 오락의 영역에 남겨두는 대신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전달할 메신저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에서 관객들은 가상의 재난에 맞서는 이들을 보며 현실의 재난을 이겨내지 못한 과거를 반성하고, 상처를 함께 보듬고,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다짐을 공유할 수 있다. 동일본 대지진의 충격을 아름다운 혜성으로 모습을 바꾸어 반영시킨 <너의 이름은.>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2014년 이후 한국의 재난 영화에서는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세월호 사고의 흔적이다. 학원에 갇힌 고등학생들이 먼저 구조되도록 양보하는 <엑시트>의 두 주인공부터 구조를 기다리면서도 사회적 압력에 괴로워하며 살아남은 것을 미안해하는 유가족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터널> 등이 대표적이다. <판도라>처럼 무능한 정부 부처의 대응을 묘사한 대목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정부와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할리우드식 구원자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인식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대신 개개인에게 주어진 생명의 가치와 그들의 인간적 연대가 재난을 극복할 희망으로 대신 자리 잡은 셈이



예상을 벗어난 <비상선언>의 스릴 넘치는 전반부

<관상>과 <더 킹>의 한재림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고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 박해준 등 굵직한 배우들이 힘을 합친 <비상선언>도 다르지 않다. 이 영화는 항공기 재난의 스펙터클을 활용한 블록버스터이자 한국 사회 속 세월호 사고의 트라우마를 비추는 거울이다. 더 나아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마주한 현실을 비판하려는 메시지로 무장한 사회 비판 드라마다. 그래서 영화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극명히 나뉘어 있다. 전반부에는 재난영화에 기대하는 장르적 재미가 집중되어 있고, 후반부는 시스템이 제 역할을 못하는 가운데 개인들이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사회 드라마로 가득하다. 이는 영화가 유머 한 조각이 들어가기도 벅찰 정도로 밀도 높은 인상을 주는 이유다. 문제는 후반부에서 반복되는 신파와 공감하기 어려운 사회적 메시지가 예상을 벗어난 전반부의 강렬한 임팩트를 모두 지워버린다는 점이다. 


재난 영화를 담당하는 전반부는 후반부의 판을 까는 임무를 성공리에 수행해 낸다. 그 중심에는 장르 영화의 관성을 벗어난 화법과 생화학 테러범으로 변신한 임시완 '류진석'의 존재감이 있다. 이 인물의 가장 큰 특징은 숨기려는 생각이 없다는 데에 있다. 스릴러 영화는 기본적으로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두 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런데 비행키 티켓을 발권하는 첫 장면부터 영화는 류진석이 테러범임을 공개하며 미스터리를 포기한다. 흥미롭게도 그 덕분에 류진석은 최적의 불쏘시개가 된다. 작중 그의 테러 동기는 거의 알려지지 않는다. 대신 그의 테러 행각은 재난 상황의 문을 열고, 지상에서의 추격전과 하늘에서의 맞대응도 그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긴장감이 서서히 고조된다. 신속하고 깔끔한 퇴장은 그를 둘러싼 논쟁 대신 재난 자체에 초점을 맞추도록 유도하며 후반부로 넘어가는 분기점이 된다. 류진석의 미스터리를 제거한 결과 그의 존재감은 이륙 순간의 설렘과 기대감에 가려져 있던 긴장감과 위험을 극대화해 단숨에 스릴의 정점을 맛보게 한다.


<비상선언> 속 재난의 스펙터클도 류진석을 중심으로 높아지는 서스펜스를 조성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우선 비행기라는 한정된 공간을 활용한 연출이 인상적이다. 물론 제약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터널>이나 <더 테러 라이브>를 비롯한 여러 재난 영화의 흔적이 얼핏 보이기도 한다. 특히 제약이 있는 공간 안에서 감염 의심자들을 격리시키는 선택은 <부산행> 속 KTX 승객들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두 영화의 분위기는 다소 다르다. 눈에 보이는 좀비들이 즉각적인 공포감을 심어주는 데 비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안개 마냥 서서히 확산되는 <비상선언>은 한층 더 스산하게 느껴진다. 이에 더해 비행기라는 공간만의 특징도 영리하게 활용한다. 360도로 회전하는 비행기 세트는 추락 시퀀스에서 핸드헬드 촬영과 함께 엄청난 역동성과 리얼리티를 살려낸다. 회항하는 비행기 안에서 승객들이 노을을 마주할 때 조명을 활용한 연출 역시 놀랍다. 눈앞에서 희망이 꺼지고 좌절한 이들의 심경이 세련되게 스크린에 담기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고'를 투영한 항공재난영화 <비상선언>

이처럼 한바탕 블록버스터다운 볼거리를 몰아친 후에야, <비상선언>은 비로소 진짜 하고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그 이야기는 앞서 본 한국의 재난 영화들과 궤를 같이 한다. 세월호 사고의 트라우마에서 기인한 정부와 국가 시스템에 대한 불신, 그 빈자리를 채우는 개인들의 이야기가 후반부 1시간 20여분의 러닝타임을 채운다. 그래서 영화는 인솔자도 없이 교복을 입은 채 하와이로 여행을 가는 고등학생들처럼 세월호 사건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장치를 보여준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작중 대통령의 부재다. 얼굴은커녕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 대통령 때문에 KI501 편은 그저 하늘을 배회한다. 이는 2013년도 작품인 <감기>에서 대통령이 재난 상황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맡은 것과 대조를 이루며, 세월호 사건 당시의 충격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투사한다.  


사실 기내 생화학 테러가 발생한 상황에서 정부와 시스템은 분명 굴러가고 있다. 경찰은 사소한 제보도 놓치지 않고 신속하게 범행의 전모를 밝혀내며, 국토부 장관도 모든 일정을 취소한 채 상황에 대응하고, 청와대도 빠르게 대처 센터를 수립한다. 이는 하나의 판타지와 같다.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공무원이 이 재난을 금방 해결할 것 같은 환상을 심어준다. 비협조적인 제약 회사를 직접 압박하는 장관은 코로나 초기 정치인들의 행보를 연상시키고, 세월호 사고 유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에 출연했던 전도연이 바로 그 장관을 연기한다는 점은 판타지의 정점과도 같다. 그러나 “비상선언”의 의미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제공한 오프닝 크레디트와 달리 작중 비상선언이 아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 데에서 볼 수 있듯이, 시스템은 끝내 승객들을 재난으로부터 구해내지 못한다. 이처럼 <비상선언>은 이미 존재하고 작동하는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하며, 이 또한 세월호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장치다.



<비상선언>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

그래서 <비상선언>은 시스템이 못하는 일을 개인들이 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항공사고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재혁이 관제탑 대신 자신의 직감과 판단을 믿듯이, 영화는 개인의 판단을 믿을 때 재난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그중에서도 희생을 감수하는 개인의 선택이 해결하지 못하는 시스템과 리더의 부재를 대신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는 팬데믹 시국에서 경험한, 개개인의 자발적 참여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경험이 반영된 듯 보인다. 그래서 영화 곳곳에서는 희생의 가치가 두드러지는 장면들이 보인다. 희진은 감염된 와중에도 해열제를 승객들에게 양보한다. 감염된 현수를 대신해 조종간을 잡은 재혁도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딸의 말을 듣고 착륙하지 않겠다고 지상과 교신한다. 그리고 이들의 희생은 지상에서 자신의 한 몸을 희생해 치료제의 효력을 증명한 인호의 희생을 통해 보답받는다. 이처럼 대를 위한 소의 희생 덕분에 KI501편은 무사히 한국에 착륙한다. 


결국 <비상선언>은 시스템의 존재가 무의미해 보이는 세상에서 개개인의 판단과 협력, 연대와 희생의 가치에 주목하는 영화다. 그래서 영화는 개인주의적 사고와 열망의 분출이 초래할 비극과 위험을 경계한다. 그 중심에는 스마트폰이 있다. 스마트폰으로 상징되는 모바일 공간에서 이루어진 승객과 가족들을 향한 악플은 코로나 초기에 자행되었던 확진자 신상 털이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양극단으로 갈리는 청와대 국민 청원이나 탑승자들의 착륙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는 것으로 확장되며, 그렇기에 핸드폰은 코로나 시국에서 가속화된 개인주의적 열망을 비판하는 중심 소재로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암흑 속의 비행기에서 핸드폰 화면이 켜지며 착륙할 수 있다는 소식을 승객들이 접하는 모습은 그 반대로도 보인다. 즉, 핸드폰이라는 소재의 의미 전환은 재난 상황에서 공동체를 위한 희생을 거부하는 개인주의적 욕망의 발산을 개인의 희생과 연대로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더욱 강조하는 장치인 것이다.   



<비상선언>의 신파가 위험한 이유

바로 이 지점에서 <비상선언>은 전반부에 공들여 쌓아 올린 탑을 무너뜨리고 만다. 후반부의 서사와 메시지에서 두 가지 문제를 노출하기 때문이다. 우선 영화는 개인들의 판단을 믿는다는 메시지에 힘을 실어주지 못한다. 개인의 판단과 선택에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서 영화는 다양한 캐릭터에게 각각의 서사를 불어넣으려고 한다. 그러나 너무 많은 캐릭터들이 지상과 상공에 흩어져 있다 보니 주연급 배우들의 존재감으로도 그들 모두에게 설득력 있는 감정선을 부여하기에는 시간이 부족이다. 이에 <비상선언>은 그 감정선을 신파적 연출로 대체한다. 인호의 아내가 하와이행 비행기를 타는 순간부터 예상 가능한 과잉된 감정선은 재혁과 현수의 악연을 거쳐 승객들 간의 연대, 그리고 승객들과 가족들 간의 화상통화를 거치며 절정에 달한다.


하지만 흩어지는 개연성과 설득력을 한 데 모으려는 신파의 연속은 영화의 메시지가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극단적으로 느껴진다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사실 <비상선언>의 주제 의식은 다양한 측면에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코로나 시국의 현실을 반영한 메시지는 세월호 사고가 투영된 이야기와 충돌하는 듯 보인다. 영화는 개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적 방역의 성공 서사가 시스템이 구원자가 되지 못했던 사고의 트라우마를 이겨낼 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K를 생각한다>의 작가 임명묵이 지적한 것처럼, 이른바 K-방역은 부분적으로 한국 사회의 반자유주의적, 비민주주의적 시스템이 만든 결과일 수도 있다. 서구 국가들과 달리 마스크를 무기처럼 대량 생산하고, 의료 영역을 국가가 징발하고, 개인의 사생활을 감시할 수 있는 군사주의, 전체주의적 국가인 한국이라서 K-방역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비상선언>의 메시지는 현실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하다. 따라서 사회 드라마인 <비상선언>은 이에 대해 충분한 답을 내놓아야 했다. 


그러나 후반부에 범람하는 신파 때문에 영화는 여러 의문에 대해 답할 충분한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 결과 개인의 판단에 대한 믿음이라는 영화의 메시지는 단순한 집단주의, 전체주의로 흘러가는 듯 느껴진다. 비행기 승객들은 세월호 탑승자를 연상케 하는 고등학생부터 평범한 민간인들에 이르기까지 그저 재난에 휩쓸린 이들이다. 그런 개인들이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해 착륙하지 않는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는 점은 개인들의 판단을 믿는다는 메시지와는 모순된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마땅히 개인의 생명과 존엄,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체념 혹은 포기에 가까운, 자발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선택을 신파로 감싸며 대를 위한 소의 고귀한 희생으로 아름답게 포장하기에 <비상선언>의 신파는 더욱 위험해 보인다. 이는 신파의 반복보다는 자가당착을 피할 수 있는 세심한 스토리텔링에 초점을 맞추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떠나지 않는 이유다. 



심지어 관습적이라 할 수 있는 가벼운 사회비판적 연출로 인해 <비상선언>의 신파는 더욱 피로하고, 기시감마저 느껴진다. 부자와 빈자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비즈니스석에 탔던 한 승객은 이코노미석 화장실을 사용한 후 승무원에게 시설이 불편하다고 항의하면서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를 구분한다. 그런데 이 대목을 제외하면 작중 빈부격차가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장면은 없다시피 하다. 다국적 제약 기업을 악의 축으로 묘사하는 것, 일본 자위대가 민항기를 공격하는 비상식적인 묘사에 담긴 민족주의적 접근법 역시 그 순간을 제외하면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이처럼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보이는 장면들로 인해 영화의 메시지는 더욱 평면적으로 느껴진다. 


이에 더해 초반부 기내 테러 상황을 긴박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 바이러스에 대한 묘사가 일관되지 않은 것도 몰입도를 헤친다. 물론 작중 바이러스를 접촉하는 방식이나 개인의 차이에 따라 감염 증상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일정 부분 이해 가능하다. 또 좀비 영화와 같은 재난 영화에서 주인공이 바이러스에 걸리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익숙한 장르적 허용이기는 하다. 그러나 대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라 해도 이처럼 영화의 내용을 하나씩 타협하는 순간 언제 누가 감염되었을지 모른다는 스산함과 긴장감은 이내 풀려버릴 수밖에 없다. 좀비에 물리면 정확히 11초 만에 감염되는 설정을 뚝심 있게 유지해 일관된 서스펜스를 유지했던 <월드 워 Z>와 같은 작품과 비교해 보면 <비상선언>의 후반부가 갈수록 쳐지는 이유는 더 분명해진다. 결국 <비상선언>은 보기 드문 완성도를 보여주는 재난 영화로 이륙해 수많은 물음표를 남기는 사회 비판 드라마로 착륙하는 용두사미로 귀결되고 만다. 



D(Dreadful, 형편없음)

기시감과 불쾌함을 넘어서 위험해 보이기까지 하는 신파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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