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년 전 남편과 사별한 60대 여성 '낸시(엠마 톰슨)'. 교직에서 퇴직하고 아이들마저 성인이 되어 자신을 떠나 홀로 남게 되자 그녀는 처음이지 마지막으로 인생의 숙원이었던 버킷리스트를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한다. 단 한 번도 섹스에 만족해 본 적이 없으니 남편이 아닌 다른 남성과 성관계를 갖기로 한 것. 그런 그녀의 앞에 젊고 매력적이며 자신의 일에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리오 그랜드(다릴 맥코맥)'가 나타난다. 마침내 버킷리스트가 현실이 되려는 찰나에, 긴장해서인지는 몰라도 낸시는 리오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리오도 유려하게 답하며 그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리고 대화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두 남녀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인생의 방향성을 둘러싼 고민에 직면한다.
8월 11일에 개봉하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는 여러모로 놀라운 영화다. 수많은 영화팬들에게 익숙한 대배우 엠마 톰슨이 처음 노출 연기에 도전한 작품이자, 성매매자들의 이야기를 양지에서 다루는 영화이기도 하고, 성을 사는 이가 중년 여성이고 파는 이가 청년 남성이라서 거듭 예상을 빗겨나가는 영화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 어떤 작품보다도 선정적이고 논란으로 가득한 영화일 것 같다고 느낌을 받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첫인상만으로 평가받기에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를 관통하는 주제의 가치가 눈에 밟힌다. 이 작품은 단순히 성매수자와 성매매자가 네 차례에 걸쳐 만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예상 밖의 사람을 만나 수십 년간 자신을 감싸고 있던 금기라는 단단한 알을 깨고 나오는 부화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목적이 단지 성적인 만남을 중계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낸시와 리오의 첫 만남에서부터 두드러진다. 카메라가 리오 그랜드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낸시가 아니라, 서비스의 존재 자체에 반응하는 그녀의 모습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남편과 사별한 그녀는 평생 사회의 규칙을 충실히 따른 인물이다. 은퇴한 60대 종교 교사였던 그녀는 대학원에 다니는 아들과 스페인에서 예술을 하는 딸을 하나씩 두고 있고, 오랜 기간 동안 성공적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했으며, 자신의 오랜 커리어도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그런 그녀는 리오의 서비스를 예약하면서 두 개의 서로 다른, 그러면서도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반응을 보인다.
낸시는 우선 섹스에 대해서 대화를 나눈다. 그녀는 섹스를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담대하고 솔직히 드러낸다. 그간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 대신 남편의 쾌감만을 우선시했던 그녀는 경험한 상대방의 수나 다양한 체위에 대해 물어본다. 리오의 청산유수 같은 대답을 들으면서 그녀는 완벽해 보이던 자신의 삶이 사실은 완벽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는 리오보다 오랜 기간을 살았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 그래서 공허한 것들이 많다는 현실을 알게 된다. 만약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상태를 그대로 두었다면 그녀를 감싸고 있던 알과 껍질들은 더 강해졌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리오 그랜드를 만나면서 낸시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새롭게 눈을 뜬다. 그래서 그간 억압된 삶을 살던 그녀는 리오와의 두 번째 만남에서 크게 변하기로 결심하고, 그를 통해 새로운 섹스에 도전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녀는 리오를 궁금해한다. 낸시는 수십 년간 자신의 삶을 구성한 원칙과 신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리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더 알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리오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에서는 용기와 결함이 동시에 느껴지고, 깨달음만큼이나 깊은 고정관념과 편견도 함께 드러난다. 낸시는 리오가 숨기려 했던 사적인 정보를 캐내고, 호텔방 밖에서도 만날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고 착각하며, 당당하게 직업을 밝히며 어머니와의 관계를 회복해보라고 말한다. 정작 그녀가 모범적인 삶을 사는 아들을 지루해하고 정반대로 열정적으로 자유롭게 사는 딸을 골치 아파하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녀의 조언은 리오에게 모순적이다.
이는 모든 갈등이 끝난 뒤, 호텔방이 아닌 호텔 커피숍에서 리오를 만난 다음에야 낸시가 난생처음 오르가슴을 경험할 수 있는 이유다. 특히 리오와의 섹스가 아닌 스스로, 자신의 힘으로 오르가슴에 도달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는 마치 그녀가 섹스로 상징되는 스스로를 향한 억압을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타인에게 지닌 고정관념과 편견마저도 떨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한 단계 성장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지 섹스와 성매매를 다루는 영화가 아니다. 그것들은 그저 트리거에 불과할 뿐, 성을 비롯한 다양한 금기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던 개인들이 비로소 금기를 깨고 자유로워지는 순간을 영화는 진정으로 그려내고 싶어 하는 듯 보인다. 그렇기에 리오에게 이별을 고한 낸시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바라볼 수 있다. 단순히 섹스라는 금기에 갇혀 있지 않고, 60여 년간 살아온 자신의 삶과 자기 자신마저 되돌아보는 것이다.
낸시의 섹스 파트너인 리오 그랜드도 다르지 않다. 그는 사실 상당히 신선한 캐릭터다. 열의를 다해 감정적으로 건강한 쾌락을 주고자 하는 파트너는 스크린에서 쉽게 만나는 인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건강한 성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는 낸시에게 진정한 섹스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는 섹스, 접촉, 쾌락의 관점을 모든 소통으로 확대한다. 섹스는 언제나 대화의 일부이며 친밀감과 교감을 향한 갈망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되짚어 준다. 비록 그의 직업은 윤리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섹스를 바라보는 리오의 시각만큼은 교과서적으로 건강하고 개방적이다. 그 덕분에 수치심을 느껴야 하고 통제해야 하고 몸을 가꿔야 한다는 규칙 하에서 살던 낸시는 자신의 신체를 대하는 태도가 크게 바뀐다. 사실 리오는 가족들에게 석유 회사에 다니면서 바다 밑바닥에 구멍을 뚫어 석유 탐사를 하고 있다고 말해놨는데, 이는 리오의 직업과 일맥상통하며 꽤나 섹슈얼한 알레고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런 그조차도 낸시와의 만남 이후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또 다른 억압과 금기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점이다. 세대가 다르면 섹스와 쾌락에 관한 이해도 다른데, 영화는 이를 놓치지 않는다. 실제로 낸시와의 네 차례에 걸친 만남과 대화, 그리고 갈등은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분기점이 된다. 고등학생 시절 어머니에게 문란한 모습을 보인 후 가족과 의절하며 성적인 수치심을 겪은 바 있는 리오. 이처럼 어머니와 연관된 깊은 상처는 자기 일을 잘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자신의 정체성과 쾌락을 개방적으로 탐색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오에게 낸시와의 갈등과 말다툼은 또 다른 기회가 된다. 그는 본래 자신의 과거사를 고객에게 절대 밝히지 않는다. 다름 사람과의 다양한 육체관계와 소통을 즐기면서도 그 선을 넘는 것을 원치는 않는다. 하지만 낸시를 만난 그는 때로는 규칙을 어기며 인간적 교류를 하고, 그 과정에서 그가 낸시에게 알려주었듯이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온전히 긍정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 자신의 치부라고 생각해서 완전히 단절되었던 가족과의 관계를 다시 펼치고, 리오 그랜드라는 가명 대신 그의 진짜 이름을 알아낸 낸시를 다시 만나며, 본인의 일에 대한 자부심을 회복한다.
이처럼 두 남녀가 진정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깨달아가는 이야기는 그 이야기가 호텔 방이라는 한 공간에서 진행되기에 더욱 흥미롭다. 기본적으로 질감이 느껴지는 푸른 카펫과 소파, 베개처럼 관능성이 느껴지는 가구들의 배치가 눈길을 끈다. 또 그 방 안에서도 나뉘어 있는 공간들의 기능도 흥미롭다. 호텔 방 안의 공간은 크게 소파, 침대, 거울, 화장실로 나눌 수 있다. 이때 소파에서는 낸시와 리오가 서로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침대에서는 모험에 나선 낸시의 과감한 도전이 돋보이는 공간이다. 한편 화장실은 잠시 그들이 호텔 밖 현실을 만나는 공간이자 순간이다. 딸에게 걸려 온 전화를 낸시가 화장실에 받는 사이에 어떻게 하면 더 섹시해 보일까 하고 고민하는 리오의 짧은 고뇌를 담아낸 장면이 대표적이다. 마지막으로 거울에는 자신의 몸을 보면서 마인드의 변화를 새삼 깨닫는 낸시의 사색과 해방의 쾌감이 담겨 있다.
하지만 눈길은 이내 방의 한쪽 면을 모두 차지하는 창문으로 향한다. 두 사람의 만남이 같은 공간에서 반복되더라도, 넓디넓은 창문에 담기는 조명과 풍경의 변화는 마치 외부 세계의 이야기들을 실내 공간 안으로 미묘하게 끌어들이는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첫 만남에서는 맑기 그지없었던 창문 속 날씨는 선을 넘은 낸시와 개인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리오가 다툼을 벌일 때 비로 가득하다. 이처럼 한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은 마치 낸시와 리오의 몸에 대한 비유 같기도 하다. 그들이 어떤 감정과 생각을 투사하느냐에 따라 호텔방은 대화의 공간이었다가 도전하는 공간이고, 갈등하고 싸우는 장소였다가 쾌감으로 가득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들의 몸도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공간적 배경을 활용한 스토리텔링을 보면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는 참으로 스마트한 영화라고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물론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는 그 자체로 논란일 작품이다. 소재이자 발단인 성매매를 둘러싼 논쟁의 연장선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작품임에 분명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들을 둘러싸고 구매자가 판매자의 우위에 설 수 있다. 그러나 성은 이야기가 조금 다를 수 있다. 여성의 성을 구매하는 남성과 달리 남성의 성을 구매하는 여성은 자신이 구매자이지만 판매자인 남성에게 우위를 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본과 젠더 권력의 우열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는 성매매에 대한 전통적인 문제의식의 발로라고 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신선하다. 사실 여성의 신체는 남성의 신체보다 자주 스크린에 전시되고 소비된다. 그런데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는 남성의 성과 신체를 판매 대상으로 삼으면서 그 문화적 서열을 역전시킨다. 덕분에 성매매를 둘러싼 옹호와 부정 사이에서 성매매를 매개로 만난 두 남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틈이 생겨난다. 물론 시작점이 성매매이기에 그 관계 자체가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있는 것은 여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호불호를 이유로 눈길을 안 주기에는 금기 내지는 성역이라 여겨지는 소재를 이용해 보편적인 삶의 자세와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내는 도전적인 스토리텔링의 맛이 찰진 것도 사실이다. 소피 하이드 감독이 데뷔작 <52번의 화요일>로 제30회 선댄스영화제 감독상과 제64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수정곰상을 받은 이유가 새삼 느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