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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Nov 07. 2022

<그 남자, 좋은 간호사> 연쇄살인범보다 무서운 병원

넷플릭스 <그 남자, 좋은 간호사>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집중치료실 간호사로 일하며 고된 업무와 야간 근무를 감당하는 싱글맘 '에이미(제시카 차스테인)'. 그녀는 심장병을 앓는 와중에도 치료비를 감당하고 의료 보험에 들기 위해 매일같이 병원으로 향한다. 어느 날 육체적, 정신적 한계에 다다른 그녀 앞에 '찰스 컬린(에디 레드메인)'이 등장한다. 사려 깊고 공감력 높은 찰스와 병동에서 함께 일하며 우정을 쌓아가기 시작한 에이미. 그녀는 찰스의 도움을 받아 그간 잊고 지내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는다. 그러나 병원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환자들이 연이어 사망하고, 형사들이 찰스를 살인 용의자로 지목하자 에이미는 다시 혼란에 빠져든다. 이에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찰스 그래버의 동명 소설을 영상화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그 남자, 좋은 간호사>는 미국의 간호사 연쇄살인범 찰스 컬린의 이야기를 다룬다. 찰스 컬린은 뉴저지주와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10개의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40명에 달하는 환자를 약물로 투여해 살해했다. 그는 397년 형에 처해 복역 중이며, 그가 시인하지 않은 범죄들까지 합하면 피해자는 400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영화는 이 섬찟한 사건을 소름 돋게 그려낸다. 보다 보면 살인범의 행적이 무서운 건지, 그의 범죄 행각을 묘사하는 영화의 방식이 무서운 건지 헷갈릴 정도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스릴러의 진수가 느껴지는 대목은 컬린의 범죄 수법이 드러나는 순간도, 그가 마침내 범죄를 인정하는 순간도 아니다. 영화를 끝내는 자막이 보이는 때다. "병원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라는.



<그 남자, 좋은 간호사>는 제목에 충실하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우선 좋은 간호사인 찰스를 비춘다. 수많은 병원에서 근무했던 경력이 헛되지는 않은 듯, 처음 출근한 병원에서도 찰스는 일을 곧잘 해낸다. 시스템을 알려주면 바로 적응한다. 돌발상황이 생겨도 에이미가 나서기 전에 수습해낸다. 붙임성이 좋아 환자들의 고충도 순식간에 해결한다.


동료도 놓치지 않는다. 그는 근무 중 과호흡 때문에 괴로워하는 에이미를 발견한다. 그에게 자신의 병과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사정을 설명하는 에이미. 그러자 찰스는 자신이 도와줄 테니 걱정할 것 없고, 넉 달만 버티자며 에이미를 독려한다. 자신이 옆에 있으니 혹시 쓰러지거나 병원에서 그녀의 병력을 눈치챌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안심시킨다. 아무도 모르게 필요한 약을 가져다주며 그녀를 도와준다.


심지어 찰스 컬린은 병원 밖에서도 좋은 남자다. 그의 따뜻함 덕분에 에이미의 일상은 자연스럽게 찰스를 받아들인다. 일 때문에 집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해 딸과 불화가 생긴 에이미는 찰스 덕분에 딸과의 관계를 조금씩 회복한다. 첫째 딸의 연극 대본 암기를 도와주고, 집안일도 함께 하고, 휴무인 시간을 함께 보낸다. 에이미가 응급 상황에 대비해 큰딸에게 병과 증상을 털어놓을 때도 옆에서 대화의 물꼬를 튼다. 충격이 덜할 수 있도록. 그렇게 에이미는 찰스에게 점점 더 의지한다.



하지만 에이미가 아는 찰스와 시청자가 아는 찰스는 영화 오프닝 시점부터 다르다. 그 덕분에 <그 남자, 좋은 간호사>는 긴 호흡으로 서스펜스를 유지할 수 있다. 에이미가 등장하기도 전에 영화는 중환자실에 있는 찰스를 보여준다. 환자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자 찰스는 곧바로 CPR을 실시한다. 코드블루를 들은 다른 의료진이 하나둘 모이자 그는 자리를 교대하고 한쪽 구석으로 빠진다. 다른 이들이 정신없이 움직이는 가운데 그는 숨을 돌리며 조용히 죽어가는 환자를 주시한다. 마치 환자가 확실히 죽는 건지 관찰하는 것처럼. 카메라도 그의 시선을 차분히 담아낸다.


그 결과 실제 인물 찰스 컬린이 살인범이었던 걸 몰랐다 하더라도 이 순간부터 앞으로 2시간 동안 찰스의 모든 행동은 묘하게 의뭉스럽고, 서늘하고, 거리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에이미에게 친절하고 아이들에게 다정해도 무용지물이다. 환자들과 교감하며 즐겁게 병원에 다녀도, 이혼한 전처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와 어려움을 토로한다고 해도 진정성을 느낄 수 없다. 시청자는 따스함과 불쌍함으로 가득한 가면 뒤에 숨어 있을 찰스의 본모습을 찾아 그의 표정, 제스처, 목소리 하나하나를 관찰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꺼질 줄 모르던 의심의 불씨는 에이미가 찰스의 살인 수법을 발견한 순간 마침내 활활 타오른다. 찰스가 체포되고 범죄를 시인하는 순간까지 에이미와 한마음 한뜻이 되어 마음 졸이는 시간이 이어진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범행 동기와 정당화 기제가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불은 꺼지지도 않는다. 그 결과 <그 남자, 좋은 간호사>에게는 모범적인 스릴러라는 평이 아깝지 않다.



하지만 <그 남자, 좋은 간호사>의 서스펜스에는 찰스와 에이미의 관계 변화가 자아내는 스산함과는 결이 다른 긴장감도 깃들어 있다. 그 중심에는 병원이 있다. 작중 에이미와 찰스의 직장인 병원은 새삼 서늘하다. 시종일관 채도와 명도가 낮은 색들로 가득하다. 코드블루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는 불안함을 증폭시킨다. 병원 측 관계자들의 대처도 미심쩍다. 의문사가 발생한 지 7주가 지나도록 내사를 진행할 뿐 경찰에게는 신고하지 않는다. 뒤늦게 신고받고 온 형사에게는 극도로 비협조적이다. 직원 면담은 관리자 동석 하에만 허용하고, 수많은 내사 자료 중 A4 몇 장만 넘겨줄 뿐이다. 경찰이 찰스를 의심하자 계약서에 날짜를 잘못 기재했다는 이유로 그를 해고한다. 다른 병원들도 다르지 않다. 형사들이 찰스의 근속기간과 평판, 근무 태도 등을 묻자 한 병원 관계자는 전화기를 변호사에게 넘긴다.


한 섬뜩한 장면은 이 모든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카메라는 복도 유리창에 비치는 찰스의 모습을 포착한다. 그는 복도와 유리창 위에 둘로 나뉘어 있다가 중환자실 문 앞에 도착하자 하나 된다. 마치 겉으로는 좋은 간호사일지 몰라도 그 속은 살인범이라고 고발하듯이. 하지만 이미 찰스는 아무런 제지 없이 병원 내부를 조용히, 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그는 환자를 합법적으로 진찰하고 그들에게 투약할 수 있다. 그가 중환자실에 들어가기까지, 수액들이 보관된 창고에 들어가기까지, 불법적으로 인슐린을 인출하고 그 증거를 인멸하기까지 그를 제지하는 사람도, 시스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복도를 홀로 걷는 찰스의 모습은 유달리 소름이 끼친다.


영화는 병원들의 태도가 찰스의 살인 범죄를 가능케 한 또 다른 이유라고 지적한다. 의문사 사건에 냉담하고, 적극적인 문제 해결 의지가 없으며, 찰스라는 폭탄을 떠넘기기에 바쁜 병원도 최소 방관자, 최대 공범이라는 것이다. 닭과 달걀 중 무엇이 먼저인지 알 수 없듯이, 무책임한 병원의 책임을 묻지 않은 채 비인간적인 간호사 개인에게 책임을 씌우는 것은 온전한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병원이 연쇄살인범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무서운 이유다.



<그 남자, 좋은 간호사>는 모범적인 스릴러 영화일지는 몰라도, 자칫 특별하지 않은 작품일 수 있었다. 물론 뚝심 있게 서스펜스를 자아내는 기법은 인상적이다. 그러나 <그 남자, 좋은 간호사>는 사실 속도감도 강하지 않고 시각적으로 자극적인 장면도 많지 않다. 찰스가 범인이라는 걸 미리 알고 있는 시청자의 관점에서는 올곧은 스릴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선정적인 연쇄 살인 사건에서 살짝 거리를 둔 채 사건을 더 넓고 입체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보려는 시도만 아니었더라면. 바로 그 시도 덕분에 <그 남자, 좋은 간호사>는 실제 사건이 주는 무게감과 부담감에 눌리지 않는, 품격 있는 스릴러 영화로 끝을 맺는다. 


A(Acceptable, 무난함)

아무 처벌도 받지 않은 병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무거워 보이는 그의 징역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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