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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Jun 01. 2024

<고지전> 대신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찍을 순 없나

12사단 훈련병 사망 사건에 대한 푸념


나름 영화를 좋아한다는 입장에서 한 가지 부끄러운 사실이 있다. 고전 영화에 문외한이라는 것. 특히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과 친하지 않다는 것. <파벨만스>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도 영화관에서 안 봤으니까. 그 유명한 <E.T.>조차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필름 콘서트로 겨우 봤을 정도다. 그조차도 폭우 때문에 절반만 봤고.


그런데 단 한 작품, 스필버그 영화 중 단 한 작품만큼은 평생 동안 못 잊을 거라고 확신한다. 다시는 겪을 수 없는,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 이 영화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다. 



라이언 일병과의 첫 만남은 2017년 10월이었다. 당시 나는 9월 25일부로 22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훈련병이었다. 군필자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본격적인 훈련은 2주 차에야 시작한다. 하지만 나는 사정이 달랐다. 3주 차부터 본격적인 훈련을 받았다. 입대 2주 차인 10월 첫 주에 추석 연휴가 낀 관계로 10월 1일부터 8일까지 전부 빨간 날이었으니까.


교관과 조교들은 아무것도 할 게 없는 훈련병들을 위해 체육대회 등 많은 준비를 했다. 영화 감상도 그 일환 중 하나였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그중 첫 타자였다(내 기억으로는 그렇다). 내심 번은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기에 개인적으로 기대가 컸다. 특히 입대 직전 여름에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가 개봉했고, 두 작품을 비교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영화 시작과 동시에 나는 강당에서 뛰쳐나가고 싶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묘사한 그 유명한 오프닝 시퀀스를 보면서 내 안의 공포를 비로소 마주했기 때문. 이 작품은 그전까지 본 그 어떤 전쟁 영화, 액션 영화와도 달랐다. 제2차 세계 대전 참전용사가 이 영화를 본 뒤 "그때와 다른 건 냄새뿐이었다"라고 인터뷰했다는 일화가 진실임을 곧바로 납득할 수 있었다. 


화면 속 병사와 장교는 계급 가릴 것 없이 순식간에 죽어 나갔다. 포격으로 인해 다리가 잘리고, 내장이 튀어나온 채로 엄마를 부르짖고, 잘린 팔을 찾아 헤맸다. 의무관은 수통에서 피를 쏟았고, 기껏 치료한 부상병은 바로 총 맞아 죽었다. '저게 전쟁이구나' '총을 쏘고, 총에 맞는다는 건 저런 거구나...' 169분 동안 나는 비로소 군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훈련소에 들어오고, 군복과 생활복을 받고, 머리를 한 번 더 밀고, 집에 소포를 부칠 때보다도 더. 



2019년 6월 5일, 전역날이 찾아올 때까지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군생활을 따라다녔다. 살면서 처음 총성을 듣고 총의 반동을 느꼈을 때. GOP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고성 GP에 투입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DMZ를 뒤덮은 산불을 피해 GP 철수 작전을 펼칠 때. 북한이 GP를 폭파할 때. 바로 옆 기지에서 북한 병사 귀순을 간신히 포착했을 때. 


매 순간 무서웠다. 사건사고가 많기로 악명 높았던 22사단이라 더더욱. 지금이야 웃으며 회상하는 추억 조각 중 하나지만, 그때는 오마하 해변에서 죽어간 수많은 이가 될까 봐 두려웠다. 불과 5~600m 앞에 위치한 북한 GP를 정면으로 마주 보는 빨간 공중전화부스 안에서 부모님 전화번호를 누를 때 나는 항상 겁쟁이였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내 안의 패닉은 조금씩 잦아들었다. 왼쪽 가슴에 붙은 작대기가 4개로 바뀔 즈음엔 북쪽 친구들이 이상한 짓을 할 때만 최전방에서 복무 중이라는 사실을 겨우 자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안의 패닉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이 막 시작되던 2020년 2월, <1917>을 보면서 내 마음속 판은 다시 소리 질렀다. 끊길 듯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전투 광경을 보면서 마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던 때로, 일산에서 고성으로 시간여행을 한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아주 좋아한다. 주저 없이 인생 영화 중 하나로 뽑는다. 이 작품은 겁쟁이 훈련병에게 작은 희망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두려움, 군인이라는 신분의 무게가 온몸을 사로잡는 와중에도.


미 행정부는 4형제 중 유일하게 생존한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 구출부대를 보냈다. 누군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전쟁터지만, 영화 속 군대와 군인은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더 살려서 집으로, 가족 품으로 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전역일이 600도 더 남은 훈련병에게는 그조차도 자그마한 위안이었다. 


이제 와 생각하면 내심 우리 군대가 <태양의 후예>에는 못 미치더라도, <고지전>은 아닐 거라는 기대 섞인 감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병사 한 명 한 명을 소모품으로 내던져 버린 70여 년 전 군대로부터 조금은 변했을 것이라는 그런 기대. 



하지만 2024년 '호국보훈의 달'을 마주하는 첫날, 현실은 그 어떤 영화보다도 비참하다. 어떤 겁 많은 훈련병은 2주 차에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면서도 무서워하는데, 어떤 2주 차 훈련병은 목숨을 잃었다. 40kg에 달하는 완전군장에 깔린 채로. 그것도 직속상관인 중대장이 직접 지시한 가혹행위 때문에. 


심지어 군은 그 사실을 은폐하려 했단다. 숱한 정황 증거와 증언에도 불구하고 이 중대장은 구속 수사를 피했다. 대신 무려 본가에서 휴식 중이다. 군의 대처가 얼마나 비상식적인지, 뉴스를 보면서도 눈을 의심한다. 사망한 훈련병의 영결식 날, 술을 들이키며 어퍼컷을 날리는 국군 통수권자는 덤이다. 


차라리 휴전협정이 발효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적군과 싸우라고 명령하는 <고지전>이 현실이면 다행이다 싶다. 직속상관의 가혹행위 때문에 죽느니, 전투 중에 죽는 게 그나마 더 군인답고 명예롭지 않을까 싶으니...


입소 첫 날인 2017년 9월 25일, 22사단 신교대 대대장은 모든 훈련병이 집에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 약속이 얼마나 공허했는지 새삼 깨닫는다. 2024년에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라이언 일병 구하기> 대신 <고지전>을 찍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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