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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시호 Sep 13. 2018

음악의 언저리<1>:  사랑

무엇이 작곡가를 추동하였나


요즘은 작곡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많이 등장하고, 작곡 과정을 미디어를 통해 노출하면서 대중들에게 제법 구체적인 이미지로 인식되는 것 같습니다. 뭐 그마저도 많은 부분이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지만요. 하지만 그 이전에 작곡가라는 사람은 꽤 신비로운 존재로 여겨져 왔습니다. 음악이 만들어지는 프로세스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작곡가는 마치 아름다운 소리의 조합을 머릿속에서 만들어내고, 혹은 절로 떠올리고, 그것을 꺼내 가공하여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아주 신비로운 역할을 하는 존재였을 테니까요. 아님 말고


이 글을 쓰는 저는 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했는데, 다음과 같은 말들을 참 많이 들었어요.


- 나중에 ***같은 유명한 작곡가 되는 거야? 사인해 줘! 아니 안 되는 거야 응

- 그럼 너 작사도 해? 나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고는 있지만 일단 돈 주면 쓸 수 있는 글은 거의 다 써 

- 날 위해서 곡 하나만 써줘~~ 응 선입금

- 막.. 영감이 떠올라? 너는 영감이 떠올라서 대차대조를 하는지?


안 떠올라 그런 거.. 안 떠오른다고!!!!!!!!!!!! 물론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늘 창조적 영감에 사로잡힌 친구들도 분명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수많은 일개 작곡과 재학생으로 하여금 곡을 쓰게 하는 유일한 동력은 학기마다 제출해야 하는 의무, 그거 하나였습니다. '과제'와 ‘마감’이라는 기표가 가지는 힘은 상당히 커서, 어쨌든 무언가를 뱉어내게 만들기는 하거든요. 


저것이 단지 일개 작곡가도 아닌 작곡과 재학생의 이야기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대작곡가는 정말 다르냐 하면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가령 때마다 종교 행사나 귀족들의 다른 행사에 소모품처럼 사용되는 작품들을 쓰기 위해서, 교회나 궁정에 속해있는 음악가는 정말 정기적으로, 그것도 꽤 밭은 텀으로 곡을 써야만 했습니다. 당시 시스템에 의하면 아마 곡도 쓰고 오케스트라 연습도 시키고 당일에 지휘까지 해야 했겠죠. 뿐만 아니라 음악에 관련된 교육이나 행정 업무도 떠맡아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뭐 굳이 멀리서  찾지 않아도 바흐 같은 사람들은 죽을 맛이었을 거예요. 바흐나 되니까 그렇게 시간에 쫓겨 다작을 했더라도 고퀄의 작품들이 뽑아져 나왔던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바흐가 라이프치히에서 봉직하던 시절의 생활을 잘 알 수 있는 중요한 기록물로 친구 에르트만에게 보낸 편지(라고 쓰고 하소연이라고 읽는다)가 있는데, 에르트만 서간이라고 불리는 이 글의 대부분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이직 괜히 한 듯, 생각보다 페이가 적고 생활비는 비싸다.
- 업무 스콥이 계약이랑 다르잖아!!!!
- 상사가 거지 같은 놈임 완전 ^@$%^&#%^$#@%#
- 다른 자리 있으면 연락 주라. 여기 진짜 너무...워라밸이 헬이라고!!!!!


엄청난 기시감 아닙니까. 우리의 요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바흐는 킹왕짱 유능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이 이야기를 꺼낸 건,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서양 예술 음악 작곡가들이 그렇게 “영감을 받아서 펜을 놀려 일필휘지로 곡을 써 내려가지는 않았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특정 시대까지 작곡이란 생업이었고, 회사원이 일을 해야 하는 것처럼 그저 주어진 의무였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다른 예술사조들이 변하면서 음악 또한 당연히 영향을 받았습니다. 작곡가의 사회적 지위와 음악이 만들어지는 구조도 변했죠. 방송국에 속해있던 아나운서가 프리선언을 한 것을 떠올리면 쉬울 겁니다. '작품'이라는 개념이 생겨서 언젠가부터 작곡가는 자신이 작곡한 곡 가운데 원하는 것을 자신의 ‘작품’ 1번으로 스스로 넘버링을 할 수도 있게 되었죠.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작곡가 슈만은, 자신의 첫 작품!! 첫! 작! 품!으로 아베크 변주곡을 발표합니다. 변주 전체가 훌륭하지만 오늘은 그 테마에 대한 이야기만 할게요. 



아베크 변주곡의 도입부(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이 변주곡이 작곡된 배경은 드라마타이즈를 거쳐, 다음과 같이 알려져 있습니다. 슈만이 뭐 무도회인지 사교회장인지 아무튼 갔는데 완전히 이상형을 발견하고 사랑에 빠졌다. 그 여자 이름은(엄밀히 말하자면 성은) 아베크, ABEGG! 이걸 써서 너를 사랑한다는 걸 티 낼 테야. 그리고 이걸 내 첫 작품으로 선포하지. 너는 나에게 그렇게나 의미 있는 운명의 데스티니.. 그리하여 슈만은 그녀의 이름을 풀어 음악의 주제로 만들고, 대단한 성공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당시 슈만이 이 곡에 대해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보면 설레발이 넘칩니다. 본인도 알았겠죠 이 곡을 너무 잘 썼고, 그래서 대박이 날 거라는 걸. 슈만은 많은 작곡가들이 자신의 성공적인 작품을 그렇게 발전시키는 것과 같이 이 곡을 관현악 편성으로도 만들려고 했지만 결국은 피아노 곡으로만 남기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아쉬우면서도, 이 주제를 피아노보다 아름답게 소화하는 다른 편성을 상상하기는 또 어렵네요. 라 -시♭-미- 솔- 솔을 건반으로 분명하게 짚어주는 그 느낌적인 느낌느낌은 현악기나 관악기와는 분명 다른 매력이기 때문입니다. 


어찌 됐든 슈만이라는 이 젊은 음악학도를 세상에 작곡가로 데뷔(?)하도록 한건 강렬한 사랑의 감정이었다고 하면, 네 비약이 맞긴 맞습니다. 게다가 슈만이 클라라와 주고받은 서신과 당시의 기록은 무려 단행본으로 출판될 분량만큼 남아있는 반면, 이 여인과 교류했던 것에 대한 사료는 구체적으로 남아 있지 않아, 그저 '카더라'정도로 여겨지는 이야기기도 하죠(파울리네 폰 아베크라는 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는, 예술가에게 사랑의 에너지는 분명 창작욕을 고취시킨다는 겁니다. 슈만이 법정싸움까지 해가며 결혼을 성취한 그 해에는 가곡을 얼마나 써댔던지 가곡의 해 가곡의 해라고 불릴 정도잖아요. 물론 신접살림을 위해서 바짝 벌어야 했을 수도 있겠지만 뿐만 아니라 다른 작곡가들도 사랑에 빠지면 그렇게 그 사랑을 모티브 삼거나 그 맘을 곡에 녹여내거나 합니다. 슈만의 제자 브람스가 완전히 절대음악으로 보이는 곡을 쓰면서, 슈만으로 하여금 송사를 치르게 한 그 여인에게 "이 곡에는 사실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이 녹아있어요우요우" 하는 편지를 쓴 것처럼 말이죠.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자꾸 작사를 한다거나 무대에서 이상한 몸짓을 하거나 한다면 연애를 의심해 보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연예인들의 비밀 연애를 보면 숨기긴 숨겨야 하는데 또 어떻게라도 티는 내고 싶어서 나름대로 몰래 티를 내다가 발각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사랑을 하면 에너지가 폭발하기도 하고 내 사랑은 웬일이야 대박 세상 특별하지 뭐야 꺄아 이렇게 느껴지기 때문에 남들도 다 그렇거든 막 티 내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하니까 말이죠. 클래식 음악사에 남은 작곡가들도 그랬을 겁니다. 사랑의 에너지로 곡을 썼고, 자신의 너무 버거운 사랑이란 감정을 그렇게 스스로 소화했고, 아니면 그렇게 세상에 자랑을 했고, 어쩌면 그것으로 돈을 벌어 사랑의 사회적 결실인 결혼에 대한 돈을 마련했고, 줄 수 있는 게 이 노래밖에 없었고.


어쨌든, 슈만의 아베크 바리에이션 작곡 일화를 보고 급식을 먹던 시절의 작곡과 입학 지망생(?)은 너무나 큰 인상을 받게 됩니다. 뭐???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곡의 모티브에 넣었어??? (이렇게 어떤 문자적 메시지를 음으로 치환하여 소재로 쓰는 것을 소제토카바토 기법이라고 하는데요,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루어 볼게요) 그래서 당시 사귀던 사람의 성, 이름, 이름의 한 글자 등을 다 풀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스스로 곡을 쓰고 싶은 열망에 불타올랐습니다. 내 사랑을 담아 곡을 쓸 거야. 그래서 너에게 선물할 거야. 너를 감동시킬 거야. 무형인 내 사랑을 이렇게 작품으로 남길 거야!!!!!!!!! 그런데 이름을 어떻게 풀어봐도 마땅한 선율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베크ABEGG는 첫 음을 비화성음으로 치면 F장조의 도미넌트 화음을 구성하는 음이 되는데, 뭐 이렇게 각이 나와야 뭘 쓰든 말든 하는데 너무.. 전위적이기 요이를 데 없는 기괴한 음들이나 나오고... 그래서 작곡을 공부하는 내내 연인이, 혹은 좋아하는 사람이 바뀔 때마다 시도를 했지만 결국 실패할 뿐이었습니다. 현대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꼭 조성 안에서 해결을 하고 싶었거든요. 결국 글로 벌어먹고 살게 되었을 때, 글을 한 편 선물한 적은 있었습니다만, 아베크 바리에이션 같이 낭만적인 곡을 쓰지는 못했어요. 아마 죽을 때까지 쓰지는 못할 겁니다. 그냥 돈을 아주 많이 벌어서, 건물에 이름을 붙여 선물하는 것으로 꿈을 선회했는데, 어느 쪽이든 요원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곡 쓰는 건 그만뒀고, 돈 버는 건 안 그만뒀으니까요!!!






건물은 없지만 음악은 들을 수 있다. 같이 들어요 : ) 
Robert Schumann, Variations on the name "Abegg" in F, Op. 1
Pf. Christoph Eschenbach
https://www.youtube.com/watch?v=0c7ZPGSEjWQ






가곡의 해에 대한 다른 글이 여기 있어요 : ) 
https://brunch.co.kr/@jh486b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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