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혼의 흔적
3-1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노동력을 매매하는 매매혼의 흔적
현재 40~50대의 부모 세대, 즉 60대부터 80대까지, 한국 전쟁 직후와 군사 정권, 새마을 운동을 거친 그분들은 결혼이 원가족의 확대이자 노동력의 증가를 의미하던 시대를 살았다.
예를 들어 농사를 짓는 가족이라면, 며느리를 들여온다는 건 부족한 내 자식과 결혼해 준 소중한 인연이 아니라 일손이 늘어나는 걸 의미했다.
밭일도 시키고, 새참도 나르게 하고, 그 사이사이 자식(이것도 노동력)도 숨풍숨풍 낳은 후 시부모님, 심하면 시조부모님까지 공경하고 모시는, 세탁기, 청소기, 요리사, 일꾼, 그리고 손주들은 알아서 잘 키우는 어머니인 존재.
며느리가 삶에 대해 어떤 기대와 꿈을 가지고 있는지, 아들과 사이가 좋은지 아닌지, 아이를 낳고 싶은지 아닌지 그 개인에 대한 관심은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해낼 것이라 기대하는 역할들의 상징 정도로만 여겼고, 늘 누군가의 아내이거나 며느리이거나 엄마로만 불렸고, 소 한 마리 들여 새끼치고 밭 갈게 하는 것이나 며느리나 본질적으로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며느리가 낳은 손주는 핏줄이지만 며느리는 아들과 손주를 비롯한 친족을 보살피는 존재로, 가족의 일원이어도 손주보다 못한 피라미드의 밑바닥이며, 죽으면 시댁 귀신이 되는, 그녀 자신의 뿌리는 이제 아무런 상관이 없는 호주제의 소유물.
대단히 대접해주지 않아도 결혼과 즉시 알아서 다 하는, 귀찮고 힘들고 불편하고 자잘한 일들을 떠맡겨도 그만인, 머리 컸다고 말 안 듣는 아들보다 더 편한(만만한) 사람.
연장자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과 가부장적 사회의 여성 인권 문제로 우리의 부모 세대가 보고 느끼고 배운 며느리는 바로 그런 존재였다.
그때는 시부모님 사는 집으로 들어와 건넛방에 짐 풀면 끝이니 어느 지역에 몇 억짜리 집을 해줬느니 말았느니, 얼마를 받았으니 뭘 해야 되니 말아야 되니 하는 논란조차 드물었다.
오히려 받은 건 없이 갈아넣기만 해야 하는 구조였으나 그 시대, 가정은 여성들의 무임금 노동을 착취해 버텼고 사회는 남성들의 과로를 착취해 버텼으니 서로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살았다.
하지만 한국이 빛의 속도로 발전하면서 그 자식들은 갑자기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향하고, 농사를 짓기보다 공장에 취직했으며, 부모의 소를 팔아서라도 대학을 가는 시대가 되었다.
여성들은 초졸이 놀랍지 않던 부모 세대에서 겨우 한 세대만에 고졸 정도는 되는 시대가 왔고, 9명을 낳아서 4명이 죽었다는 시절에서 2명만 낳아 잘 살자, 1명만 낳아 귀하게 키우자로 빠르게 넘어오며 드디어 딸들도 대학에 가고 집에서 공주님 소리 듣는 순간이 도래했다.
나는 80년대 생 여자이며 하나만 낳아 귀하게 키우자는 외동딸이고 대를 잇는다는 말 자체를 우습게 생각하는 아빠의 공주님이었으며 대학을 나왔고 전공을 그대로 살려 강사였다.
결혼 전 내 임금이 남편보다 높았고, 사회생활 경험도 훨씬 길었으며 결혼할 당시 여전히 무일푼 학생 신분인 남편보다 사회적 성취가 더 컸다.
그러나 몇 세대에 걸쳐 모두가 근처에 사는 집성촌 부모님의 둘째 아들로, 집 안에서 유일한 고학력에 윗 지방 사는 남편과 결혼한 나는 첫 방문에서 코 앞에 사시는 시아버지의 큰 집에 끌려갔다.
남녀 상을 따로 차려 여자 8명이 부엌 앞 쪽상에 반찬도 제대로 못 올려놓고 밥그릇을 손에 들고 먹으며 남자들이 물이라도 떠오라고 하면 벌떡 일어나야 하는 상황이라니, 심지어 제사상인지 차례상인지에 올려놓느라 다 굳고 마른밥이었다.
누구 제사냐고 물으면 시아버지조차 조상 이름도 모르는 그런 정체불명의 귀신 밥상을 생판 남들을 갈아 차리고 정작 그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그런 이야기.
어렸을 때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을 2000년대에 겪으니 정신이 혼미한 것도 잠시, 당일 점심까지 먹고 이제 친정 부모님을 뵈러 출발하겠다고 하자 시아버님이 밥상에 숟가락을 던지며 소리치셨다.
"어디 결혼한 여자가 명절에 친정을 가? 넌 이제 이 집 안 사람이다."
그래서 나도 숟가락을 내려놓고 말씀드렸다.
"아버님. 저도 부모가 있고 제 부모님도 저를 기다리세요. 심지어 저희 집은 자식이 저 하나예요."
울먹거리거나 부들부들 떨진 않았다.
그저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동쪽에서 뜬다고 정정해 주는 기분이었으니까.
물론 눈깔에 힘은 좀 들어갔던 것 같다.
당시 시아버님이 막 환갑이 되셨을 때니 양로원에서 취급도 안 해주시는 그저 아저씨셨다.
왓 더 헬?
그 뒤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뻔하다.
남자들은 냉동 참치처럼 거실 소파와 바닥, 안마의자에 누워 자는 사이 어머니와 형님, 나만 죽어라 음식 해서 나르고 차리고 치우고 뭐 그렇고 그런 흔한 사연.
다른 점이 있다면 나만 전 부치라고 부르셨을 때 방에서 게임하다 잠든 남편의 머리끄덩이를 잡아끌고 나왔다거나 섬에 사시는 시어머니 일가친척들을 보고 시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 산소를 갔다가 내일 가라는 말에 싫다고 대답했다는 정도겠다.
이러면 뭐 엄청 되바라진 며느리 같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의 10%도 하지 못하고 매번 남편만 들들 볶다가 이혼만 40번 할 뻔했으니 나 역시도 어딘가 잘못된 유교 국가 가스 라이팅의 피해자다.
지금도 아들들은 당연히 무뚝뚝하니 며느리가 집 안의 애교쟁이가 되어 모든 행사를 감격스러운 이벤트로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을 수시로 듣고 있기도 하고.
'저는 아드님보다 더 남자 같은 성격이고 내 생일조차 챙기기 귀찮은, 이벤트 프리를 추구하는 인간입니다.' 같은 말을 하느니 그냥 직접적인 연락을 하지 않는 정도가 다인 신세랄까.
원인은 안다.
세대 차이가 너무 크다.
아직 호주제가 폐지된 것조차 모르시고, 결혼하면 며느리의 부모는 갑자기 사라진다고 믿으시며 아들이 말 안 듣는 건 당연한데 며느리가 복종 안 하는 건 참을 수 없는 시부모님이 많다.
키워준 부모는 따로 있는데 효도는 시부모에게 하라고 요구하질 않나, 친정 부모님조차 어지간하면 시가부터 다녀오고 대충 맞춰드리라는 집도 적지 않다.
도대체가 매매혼의 흔적인지 가부장제의 찌꺼기인지 음식이 오래되어 썩는 쉰내가 난다.
시부모님이 집값을 보태셨다면 돈만 받고 입 싹 닫지 말고 그만큼 굽실대라는 건데, 며느리 명의로 증여했나?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증여하는 걸 왜 옆에 며느리가 있으면 갑자기 그쪽으로 불똥이 튀는가?
미혼의 자식에게 증여할 땐 그런 이야기 안 하잖아?
게다가 가족이라면서 왜 동등한 인간 취급조차 안 해주냐는 이야기에 돈 받았으니 하라는 논리로 대응한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며느리는 가족이 아니라는 소린데.
이게 무슨 끼웠다 뺐다 블록도 아니고 선택적 가족주의인가?
그럼, 가족도 아닌 사람들한테 더더욱 아무 애정도, 정성도 들일 필요가 없겠네?
갑을 관계, 돈을 주고받은 고용주와 고용인 사이처럼 표현하고 싶다면 며느리에게 증여하는 건 물론이고,
상견례 때부터 우리가 주는 돈은 며느리의 노동력과 복종을 돈 주고 사는 매매혼의 증거이며 준 돈을 시급으로 환산하여 향 후 몇 년간 복종하라고 명확히 말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럼 친정도 마찬가지겠지.
우리가 주는 돈은 사위의 노동력과 복종을 사는 것이며, 우리 쪽에서 더 돈을 많이 줬으니 명절 당일엔 친정이고 연휴엔 시가에 가지 말고 그전 주에나 미리 갔다 오라고 하면 되나?
친정에서 3억을 받고 시가에서 4억을 받았으면 더하기 빼기 해서 시가에 1억 어치 복종하고 그 기간 동안 친정에는 가지 말아야 하나?
맞벌이하면서 집 대출 같이 갚으면 그건 준 돈에서 빼고 계산하는 건가?
연봉 차이는?
친정에서 집 사주고 시가에서 준 돈이 없다면 반대로 남편 부모랑 인연 끊어도 된다는 소리인가?
양가에서 다 받은 거 없으면 각자 집만 가도 되는 거지?
21세기에 이거야 말로 매매혼이 그 정점에 다다른 격이다.
불리하면 받은 돈타령, 평소엔 가'족'타령, 없던 정도 싹 떨어지게 생겼으니 치졸하기 짝이 없다.
왜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들이 난무하는가 따져보면 일단 며느리가 가'족'이라는 주장이 문제다.
사위가 '백년손님' 이듯 며느리도 정중히 대접해야 할 '백년손님'이라면 이런 류의 논쟁을 시작할 필요도 없었다.
사위나 며느리나 피 한 방울 안 섞인 건 똑같은데 왜 누군 집에 초대한 손님이고 누군 집에 들어서자마자 고무장갑부터 건네는가.
남의 집 귀한 딸을 데려다 공짜 노동력처럼 부려먹는 일을 어째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과연 부모 세대는 길 가다 아무 여자 붙잡고 집에 가서 전 부치고 설거지하고 제사 지내라고 하나?
며느리는 아무 여자가 아니라서 전 부치고 설거지하고 제사 지내라고 시키는 거라면, 그 말이 어딘가 잘 못 되었다는 느낌이 안 오나?
정말 며느리에게 돈을 줬고, 돈 준 값을 하라고 갑질하고 싶으면 더더욱 가족이면 안 되는 게 아닌가!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주장처럼, 나는 의식적으로라도 며느리를 가족이라고 부르지 않기를 권한다.
가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며느리가 생각하는 가족은 소파에 누워 휴대폰 하며 시어머니가 입에 넣어주는 귤을 먹는 것이고, 시부모님이 생각하는 가족은 집안대소사를 모두 챙기며 앞치마를 두르고 10첩 반상을 척척 차리는 며느리니까.
섣부르고 잘못된 관계의 설정이 이상한 기대를 심고 상대에게 더 크게 실망하게 만드니 이건 정말 남보다 못하다.
그렇다고 배제하고 따돌리고 차별하라는 게 아니다.
다만 내 자식을 만났다는 이유로 알게 된 생판 남이니
수십 년을 따로 산 두 존재가 만나 신뢰를 쌓는 과정은, 명절 전을 부치는 속도보다 훨씬 느리고 정중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결국 혈연이 아닌 며느리가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 되는 길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시부모의 허락이나 관습의 강요가 아니라, 오로지 며느리 본인의 '자발적 의지'다.
즉, 관계의 주도권과 선택권은 이제 며느리에게 있다.
아예 며느리에 대한 기대를 접는 것이 가장 현명하겠으나, 도저히 그럴 수 없다면 방법이라도 바꿔야 한다.
강한 바람이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지 못했듯, 도리와 효라는 이름의 압박은 며느리의 마음을 더 단단히 여미게 할 뿐이다.
며느리라는 타인의 마음을 얻고 싶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구습의 강요가 아니라 인간적인 존중을 담은 '햇볕 정책'이고 '정서적 자본의 투자'이다.
결국, 가족이라는 말은, 며느리 쪽에서 먼저 해야 의미가 있는, 진정한 집 안의 '어른' 이신 시부모님에 대한 존경과 신뢰의 표시다.
그래서 '며느리가 그래서 가족이라는 건가, 아니라는 건가?'의 결론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선택의 문제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