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관계 증명서에 없는 며느리
가족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
친족
1. 명사 촌수가 가까운 일가
2. 명사 생물의 종류나 언어 따위에서, 같은 것에서 기원하여 나누어진 개체나 부류를 이르는 말
3. 명사 배우자, 혈족, 인척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 인간관계의 큰 일
예전엔 '결혼은 가족 간의 결합이다.'는 말에 걸맞게 8촌까지 예단을 한다는 둥, 이바지 음식을 직접 해서 보낸다는 둥 아주 난리법석이었다.
부모 세대가 여전히 집성촌에 살고 계시면 이건 뭐 거의 동네잔치가 되어서 양가 부모 친구분들까지 오며 가며 인사드릴 지경이니 결혼이 새 가정을 이루는 독립이기보단 그저 원가족(특히 시가)의 확대에 가까웠고.
어렸을 때 함 들어오던 날이 생각난다.
당시 기준으로 충격적인 노처녀였던(33살이었나) 이모가 드디어 시집을 간다며 나름 동네 유지이자 종갓집 며느리였던 외할머니가 잔치를 벌였다.
동네 어귀에서부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구운 오징어 가면을 쓴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가다 서다를 반복했는데 당시 이모의 예쁜 친구들이 다 동원되어 노래도 부르고 팔짱도 끼며 끌고 오기 바빴다.
한국 전쟁 직후까진 아니고 대충 한 35년 전 일이다.
지금은 반반 결혼에 집안일 하나까지 엑셀 파일로 나눠하는 시대라니 예단이나 함, 사촌 이상의 일가친척 이야기는 확실히 좀 드물다.
그래도 여전히 두 사람의 결합에 양가 부모의 직업, 학벌, 잠깐 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성격까지 고려 대상이니 가족 간의 결합이 전혀 아니라고 할 순 없겠다.
그런데 이 '가족'이라는 말이' 어른'이라는 말 못지않게 참, 그 범위와 용례가 뒤죽박죽이다.
결혼을 하면 원가족에게 독립해 새 가정을 일군 거라더니, 명절 때나 각종 행사에 동원될 땐 다시 한 집에 사는 사이 못지않은 가족이라고 한다.
재산을 물려줄 땐 며느리는 '그럴 정도의 가족'은 아닌데, 일을 시킬 땐 '충분히 가족 같은 무엇'이 된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지만 80년대생 여성까지는 아마 며느리는 굉장히 시댁 가족이지만 사위는 매우 친정 손님인 상황을 흔히 겪었을 것이다.
호주제는 폐지되고 가족 관계 증명서엔 나오지도 않는다는 며느리.
피 한 방울 안 섞였고 이혼하면 남보다 더 욕하는 사이인데 뭔 며느리의 도리는 그렇게 많은지, 명절에 집에서 좀 쉬겠다고 하면 남편하고 손주 보내도 '최소한의 도리는 하거라' 이런 소리가 기본이다.
존경의 대상에서 끌어내려진 어른들의 시대, 내 부모와 건강한 관계 쌓기도 삐그덕거리는 마당에 배우자(남)의 부모가 나서서 효와 도리를 논하다니.
40대, 50대 접어들고 양 쪽 집 왕복 8시간쯤 걸리다 보면 명절이 싫다.
차 밀릴까 밤새워 밟고 내려가도 더 일찍 오지 않았다고 타박에, 친정 가야 된다고 당일 아침 일어서면 꼭 근처 사는 시아버지 형제 집에, 저렴한 땅 사느라 이상하게 먼 선산에, 나는 얼굴 본 적도 없는 남의 무덤에 절하고 거지같이 밀리는 오후에 올라가라고 한다.
애들은 사촌이라고 모여봤자 하나같이 휴대폰 꺼내놓고 그것만 쳐다보는데 며느리가 자주 안 내려와서 사촌들이 안 친하단다.
며느리 무면허에 그 집 아들은 손주 데리고 저들끼리 자주 내려가래도 싫다는데 그 싫다는 그 집 아들노므시키 마음조차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서 그렇단다.
이러니 연휴가 길면 한숨만 나온다.
차라리 엄청 짧아서 못 내려간다고나 하고 싶다.
굳이 '시' 자만 들어가면 발광하는 게 아니라 이제 친정이고 뭐고 내 집에서 쉬고 싶을 뿐이다.
이게 과연 어느 한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유교 국가에서 태어난 세뇌의 결과로 한 5년쯤 끌려다니던 며느리들은 아이 낳고 끼인 세대가 되어 바빠죽겠는 시기가 오면 슬슬 빡이 친다.
이럴 바엔 혼자 사는 게 나으니까.
애 키우고 돈 벌고 살림하고 팔자에도 없는 다 큰 어른(남편) 뒤치다꺼리하는 것도 짜증 나는데 뭔 의전행사까지 동원돼서 생일이면 당연히 주문 케이크에 지폐 발사 총 이벤트 정도는 하는 줄 아니까.
왜? 대체 왜 나만? 일 시켜 먹을 때만 가족이고 며느리 명의로 집 사주고 월급 주고 키워주고 밥 먹여주고 재워준 거 아니면서 뭘 어디까지 하라는 거지? 도대체 나를 뭘로 보는 거지?
사실 이런 인지 부조화 현상의 원인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잘 분석되어 있다.
그리고 지금 20대들이 결혼할 때는 아예 없어질지도 모르니 며느리들이 매번 듣는 말처럼, 어르신들이 살면 얼마나 살겠냐며 '너만 참으면 끝날 일' 인지도 모른다.
그럼, 대체 왜 사위는 '백년손님'인데 며느리는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는 걸까?
단순히 부모 세대가 나이가 많아서인가, 아니면 젊은 부모도 시부모가 되면 변하는 건가.
그래서 며느리는 가족이라는 건가, 아니라는 건가.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