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낳아짐을 당했다는 시대

관계의 재정립

by 강우

2-1. 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요즘 세대가 낳아짐을 당했다며 효도를 일종의 선택으로 여기는 이유


SNS 탓? 일부 맞다고 생각한다.

엄밀히는 인터넷이 가능해진 그 자체가 시작이겠다.

정보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몰라서 행복했던 사람들이 알아서 불행해진 건 사실이니까.

그러나 모든 동물학대범이 연쇄살인마가 되진 않는 것처럼, 모든 사회 문제를 SNS와 인터넷 탓으로 돌리는 건 비겁하다.

그건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게으른 진단일 뿐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어른' 편에서도 말했듯, 나는 어른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진 것도 큰 원인이라고 느낀다.

각 가정마다 서로의 입장과 감춰진 이야기들이 있겠으나 사실 아이가 어른이 되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결과를 자꾸 요즘 것들의 싸가지로만 치부하는 게 문제다.


'부모'란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제일 처음 만나는 가족이자 어른이고,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사전적 의미와는 거리가 먼, 보고 배울만한 대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어른'에 가깝다.

그런데 아이가 세상에 나가 자신을 책임지고 많은 사람을 겪으며 어른이 되는 순간, 부모는 건드릴 수 없는(Untouchable) 절대자에서 내려와 동시대의 또 다른 인간으로 치환된다.

관계의 재정립이다.


즉, 자식이 몇 살이든 아이라는 부모의 착각과는 달리 어른이 된 자식은 부모와 대등한 존재다.




어른이 된 자식은 반드시 부모의 모순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똑같은 잘못을 가지고 어느 날은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때리고, 어느 날은 그냥 웃고 지나간 엄마.

어른이 되고 보니 맞은 날은 엄마 기분이 안 좋았고, 웃고 지난날은 엄마 기분이 좋았다는 걸 깨달았을 때.

자꾸 저들끼리 담배 탐하러 나가서 라인 만들고 밀어주고 당겨주고 하는 남직원들을 보며 같이 축구하고 목욕탕 가는 오빠만 좋아하던 아빠가 떠올랐을 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선풍기 틀어놓고 자면 죽는다거나 새싹보리 가루를 먹으면 암이 치료된다고 자꾸 우길 때.


아이는 부모도 그저 평범한 인간이었음을 깨닫고 점점 그들의 인간적인 단점을 보고 느끼게 된다.


부모 눈에 자식은 40살, 50살이 되어도 아이다.

나보다 더 배우고 제 앞가림 잘하고 있어도 부모는 자꾸 자식을 가르치고 고칠 대상이라 여기고 이래라저래라 다 걱정돼서 하는 소리라는 말로 퉁치며 자식을 통제하려 든다.

안 해봤으니 모를 수밖에 없는 중요하지도 않은 일들을 붙잡고 늘어지며 이런 것도 모르니 믿을 수 없다 질 않나 결과가 뻔히 보인다는 주장으로 남(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은 기본적으로 남이다.)의 인생에 감 놔라 배 놔라 아주 난리 부르스인 것이다.

그 말이 다 맞아도 짜증 날 판국에 심지어 중요한 데서 몇 번 틀리기까지 하면 자식은 거지 같은 직장 상사보다 부모에게서 더 큰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부부 관계를 생각해 보면 좀 더 이해하기 쉽다.

부부는 서로 사랑하고 살더라도 가진 애정과 별개로 배우자의 단점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같이 사니까, 오래 부대끼니까, 똑같은 어른이고 인간이니까 저 사람이 뭐가 문제인지 훤히 보이는 거다.

그래서 존중은 해도 전적으로 존경하긴 쉽지 않은데, 존중이나마 잘하면 아주 성공적인 부부 관계라 하겠다.


그럼, 아이에서 어른이 된 자식은 뭐가 다를까?

그들도 똑같다.

같이 살아 봤으니까, 이제 똑같은 어른이고 대등한 인간이니까 내 부모가 한 사람으로서 뭐가 문제인지 안다.

그러니 이제 부모를 덮어놓고 존경하기보다 존중하고 존중받고 싶은데, 부모는 여전히 '나를 따르라, 내 말을 잘 들어라' 하고 있으니 효도는커녕 사이가 원만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자라는 동안 어마어마하게 화목한 가정이었다면 사랑의 콩깍지로 버티고 보살필 수 있겠으나 보통 어른이 된 이후 남은 애정은 부모가 실수를 할 때마다, 선을 넘을 때마다 점점 식기 마련이다.


부부는 수 틀리면 이혼하는데, 왜 자식은 부모와 연을 끊지 않으리라 생각하는가?

누구의 노래처럼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고, 당연한 것도 없다.


결국, 자식이 자라면 부모는 낳고 키워준 은혜, 들인 돈, 갈아 넣은 인생 타령만으로 관계를 이어갈 수 없다.


'내가 너 하나 키우려고 얼마나 뼈 빠지게 일했는지 아니?'라고 해봐야 그 돈 다 애한테만 쓴 것도 아니고 부모도 옷사고 고기 먹고 골프 치고 차 바꾸고 할 건 다 한 데다 그들 말마따나 언제 낳아달라고 애원한 적은 없지 않은가.


그러니 세상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 천륜이고 나발이고 다 큰 어른끼리 안 싸우고 서로 보고 싶고 아플 때 보살펴주고 싶으려면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밖에 나가 부부 동반 모임에서 만난 아무개는 늘 웃는 낯으로 온갖 예의를 갖춰 대하면서 정작 내 자식은 통화할 때마다 여기가 아프고 저기가 아프고 누구네 자식은 용돈을 얼마를 줬다는데, 주말마다 온다는데 너는 뭐 하는 자식이냐 하기 시작하면 상황을 빠르게 악화된다.

어느 누가 매번 나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쓰고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사람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사람과 계속 연락한단 말인가.


미성년자인 아이를 키우는 건 의무라 쳐도, 성인이 돼서 지원해 주는 건 효도로 갚아야 하지 않냐는 주장은 부모들 입장에선 제법 타당하게 들린다.

하지만 꽃노래도 한 철이라는데 자꾸 키워준 은혜와 돈으로 자식을 쥐고 흔들며 갑질을 하려고 들면 부모 자식 관계는 백화점 진상과 점원 관계와 다를 바 없어진다.

그냥 줄 거나 빨리 주고 갔으면 싶어서 대충 네네 할 뿐이지 부모가 돈을 무기로 휘두를수록 스스로를 돈이 아니면 굳이 찾아가 시간 낼 필요가 없는 인간으로 만드는 격이다.

가족이라면서 자식에게 돈에 굴복하는 굴욕감을 심어주고 있으니 마음이 부글부글 끓을 테고.

거기서 더 나아가면 왜 빨리 안 죽나 기다리거나 자식이 먼저 돌아가시게 해 드리려다 꼭 명절 앞뒤로 뉴스에 나오게 되니 정말 최악이다.




그럼, 아직 미성년자인 아이들은?


어차피 나보다 잘 사는 친구, 우리 집보다 화목해 보이는 옆 집에 대한 정보를 막을 순 없다.

그렇다고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는 걸 막을 수도 없고 부모가 역사에 길이남을 위대한 인간이 되는 건 어렵다.


하지만 낳아짐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엘리베이터 속 지친 초등학생들의 마음엔 기본적으로 '삶이 불행하다는 인식'과 나아가 '부모가 자신을 멋대로 낳아놓았으면서 제 말도 들어주지 않고 멋대로 군다'는 화가 포함되어 있다.


사실 아이가 법적인 성인이 돼야 대등한 건 아니다.

자식은 배 속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부모와는 별개의 인격체이며, 똑같은 천부인권을 가진 존재다.


아이에게 질질 끌려다니며 필요한 훈육조차 하지 말라거나 무슨 반찬 투정까지 아이 마음 들어주기를 하라는 건 아니다.

다만 주변 모두가 어른이고 다들 해라, 하지 마라 하는 아이의 삶에서 부모라도 일찍부터 존중을 보여줘야 한다는 거다.

필수적이고 당연한 일 외에 충분히 아이의 선택으로 남겨둘 수 있는 비필수적이고 취향의 영역에 있는 일들은 아이의 말을 존중하거나 최소한 올바른 이유로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정에서 온전히 존중받은 아이는 (사춘기 호르몬의 영향을 빼면) 최소한 부모 자체를 불행의 원인으로 보진 않는다.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하더라도 내 부모만큼은 나를 존중해 준다는 믿음이 있다면 '우리 아이는 고등학생인데도 뽀뽀해 줘요.' 같은 증거가 없이도 충분히 화목한 가정일 수 있고, 그 기억과 신뢰가 성인이 된 후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재정립되는 기간에도 서로를 끈끈하게 이어 줄 수 있다.


결국 부모 자식이기 전에, 혹은 부모 자식임과 동시에 인간 대 인간으로서 건강한 관계를 구축하는 게 핵심이다.

일방적인 섬김을 받고 도를 논하는 건 구시대적 희망사항일 뿐이다.


자식은 부모의 헌신을 먹고 자란 소유물이 아니라, 곁에 머물기로 결심한 '가장 가까운 타인'이다.




끝으로 덧붙이자면,


(사실 이건 뭐 거의 나에게 하는 말이지만,)


'내가 네 똥을 천 번도 더 닦아준 거 같은데, 엄마가 이거 하나 물어본 게 그렇게 짜증이 나니?'라고 소리치고 싶은 순간이 오면,


똥 닦아 준거만 기억하지 말고 애가 똑같은 문제 3번 틀렸다고 '너는 대체 누굴 닮아 그 모양이니. 머리가 있으면 생각이라는 걸 좀 하라고! 문제를 똑바로 읽어!'라고 소리 질렀던 걸 기억하며 참으라.


나 정도면 진짜 잘해준 부모다 싶어도 그건 본인이 말할 게 아니라 자식이 인정해줘야 하는 문제다.


그리고 애가 성인이 될 때쯤 이면 벌써 십 년도 더 된 일들, 자신도 모르게 추억보정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고, 원래 때린 사람은 기억 못 하고 맞은 사람만 기억하는 법이다.


설사 진짜 다 잘해준 부모라 해도 사람 사이라는 게 나는 다 해줘도 쏠랑 빼먹고만 가는 상대도 있다.


자식도 결국 그냥 또 다른 사람이라는 거다.

무조건 나를 사랑하는 운명적인 상대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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