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가부장제는 남자도 힘들다

현모양처의 몰락

by 강우

가부장제(Patriarchy)


가부장이 가정·사회 전체를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제도이며, 남성이 권력·재산·계보를 독점하고 여성·자녀는 그에 종속되는 구조



가부장제와 관련한 책과 논문은 족히 수십만 권은 될 것이다. 어쩌면 이미 수백만 권일지도 모르고.

요즘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입을 막는 재갈로 사용하는 '너 페미냐?'까지 가지 않더라도 긴 시간 인류를 지배해 온, 그리고 대다수의 국가에서 여전히 유지 중인 이 사회 구조에 대한 연구와 논의는 늘 활발하다.


즉, '한국은 아직 가부장제 사회다.'라는 단언이 무슨 극단적인 페미니스트 커밍아웃이나 매니페스토가 아니라 그저 '해는 동쪽에서 뜬다.'와 마찬가지인 사실일 뿐이라는 거다.

이 개념 자체와 이에 대한 논의는 특정 성별에 대한 공격이나 갈라 치기가 아님을 먼저 밝힌다.




가부장제의 기원은 전 세계 석학들이 이미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연구를 기반으로 정립해 두었을 터다.

추측처럼 적는 이유는 이 글을 적겠답시고 관련 책을 읽으며 밤새워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민하고 거대한 주제를 다루며 따로 조사하지 않은 건 저명한 학자들의 주장을 반복하거나 인용하고 싶은 게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의 관점을 적는데 의의를 두어서다.

나는 그저 우리 사회를 옥죄고 있는 수많은 관습, 용어, 관념, 개념들이 시대에 맞게 변화하지 못해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는 걸 깨달은 한 인간이다.




굳이 논문을 뒤적이지 않아도 수렵·채집 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정 내에서) 가부장제의 논리는 명확하다.

남성이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을 먹여 살리는 '주체'이며, 그런 남성들이 결국 사회를 지배한다.


그들이 책임을 지기 때문에 그만한 권리를 누린다는 구조는 얼핏 타당한 구석도 있어 보인다.

늘 책임과 권리는 함께 하는 거라고 가르치지 않는가.

혼자 일가족을 책임진다는데, 그럼 그는 가족 안에서 마땅한 권리를 누려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주장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먹여 살리는 '노동'을 남자만 한다는 잘못된 가정이다.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할 만큼 농사일을 하시던 할머니, 물질을 하며 가장 노릇을 하던 해녀, 방직 공장으로 출근하던 여공, 남편이나 오빠의 이름을 빌려 책이나 그림을 내고 그 돈으로 생활하던 예술가, 바느질을 하거나 청소일을 다니던 어머니, 엄마를 도와 인형에 눈알을 붙이던 누나.


긴 역사를 돌이켜보면 세탁기 하나 없던 시절, 일가족의 냄새나고 더러워진 빨래를 도맡아 하던 그분들부터 동네 어귀에서 소쿠리를 이고 지고 장사를 다니던 분들까지 여성이 숨만 쉬던 시절은 없었다.

그럼에도 여성의 기여도는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평가절하되었고, 가정을 함께 지키고 먹여 살렸는데도 권리는 일방이 누리는 형태가 지속되어 온 것이 가부장제의 모순이다.


그리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 생각에 종이로 포장된 통닭을 사들고 가는 옛 가장의 모습은 가정을 혼자 다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시선과 교육, 구조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들이 느낀 숨 막히는 책임감은 과연 옳은 것인가.




참 희한하지.

옛날엔 밭일하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도 다 참고 사셨는데, 애 10명씩 낳고도 농사도 짓고 살림도 하고 살았는데 대체 지금 세상에 뭐가 힘들다고 난리일까.

세탁기, 식기세척기, 청소기 없던 시절 사시사철 손 다 터져가면서 집안일 잘만 했는데 말이지.

어찌 보면 단군 이래 가장 살기 좋은 여자들이 왜 난리인 건지 참, 요즘 사람들이 많이 배웠다고 별 걸 다 트집 잡고 평등이 어쩌고 커리어가 어쩌고 한다 싶을 수 있다.


그럼 대체 이러겠는가.


가부장제와 짝지어 사회를 지탱하던 현모양처, 가정을 지키는 수호자, 전업주부의 몰락이 가속화된 탓이다.

80년대 생 여자인 나의 학창 시절, 학교에서 우리도 다 할 수 있다며 굳이 중장비 운전기사 자리에 여성을 그려 넣고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강조했다.

어느 순간 여자만 배우던 '가정'과 남자만 배우던 '기술'이 기술가정으로 통합되었고, 남자들도 바느질 수업을 같이 들었으며 여성들도 성적이 된다면 대학을 가는 게 꽤 당연해졌다.


나라가 발전하려니 남성들만 나와서는 부족하다고, 이제 여성들의 힘이 필요하다며 점점 같은 직군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전에는 콜센터, 보험, 화장품 방판, 비서, 선생님, 공무원, 아니면 차라리 의사, 변호사는 있어도 사무직 여성은 경리 말고는 드물었는데 시대가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사회 활동을 하고 맞벌이를 통해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여성은 본받을 만한 능력자이고, 여전히 가정에 남아 살림을 하며 애를 키우는 여성은 마치 도태된 듯한 인상을 남겼다.

가사 노동의 가치와 의미는 교육 과정에서 많이 사라졌고, 여성이든 남성이든 성인이 된 이상 어떤 직업인으로 존재하는 게 당연하며, 그것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한다는 듯한, 순전히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 모집을 위한 교육이 계속되었다.


결국 장래 희망을 현모양처라고 쓰거나 존경하는 위인이 신사임당이라는 여자 아이는 없어지고, 가사 노동은 워킹맘들이 알아서 제 몸 갈아가며 짬짬이 해치워야 하는 잡일 정도로 취급받았다.

심지어 워킹맘들이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는 일은 또 다른 여성인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를 끌고 왔으니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기형적인 구조라 하겠다.




그래도 예전엔 현모양처도 진로가 될 수 있었고, 전업주부도 직업이었으며(사실 지금도 그렇다.),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낸 어머니를 칭송했고, 며느리에게 곡간 열쇠는 맡길 만큼 가정 내 여성의 권리와 기여를 인정하던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엔 전업주부를 취집, 퐁퐁남 등의 혐오 워딩과 엮어 놀고먹는 사람처럼 비하하기 일쑤이니 모두가 가부장이어야 인정받는 세상에서 혼인을 기피하고 출산을 거부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기껏해야 세 명, 네 명이 전부인 회사에 다들 회장, 사장, 전무, 이사하겠다는 꼴이니 역할의 충돌이 발생하는 건 당연하다.

나도 가족을 부양할 돈을 버는데 왜 집안일을 더 해야 하냐부터 요즘 시대에 왜 남자가 집을 해오냐 반반하자, 그러면 임출육 동안 여자가 손해니 딩크 하자, 그럴 바엔 각자 살자로 흐르는 사고는 애초에 서로 대등하게 돕고 협력해야 할 관계라는 인식이 있다면 불필요한 논쟁이다.


현모양처는 몰락했고, 가장의 어깨는 여전히 무겁다니, 우리는 지금 누구를 위해, 무엇을 지키기 위해 이 낡은 제도 속에서 서로를 할퀴고 있는 걸까.



가부장제의 신화를 지탱하고 뒷바라지해 오던 현모양처들이 없으니, 굵은 기둥이 쑥 빠져버린 건물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건 예견된 일이다.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건물에 대충 콘크리트를 더 부어 놓는다고 해결이 될까?

많은 역사적 사실이 증명하듯 부실한 건물은 결국 무너져 그 안에 있는 사람 모두를 희생자로 만든다.

지금처럼 전쟁이 난무하는 시대에 굳이 관습의 폭탄마저 안고 살 이유는 없다.

붕괴의 충격보단 철거 결심이 더 안전할 테고.


그럼, 그 무겁고 힘든 책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뒷바라지 서로 나눠하거나 바꿔하면 어떨까.

가정이란, 부부란 결국 서로의 시간과 재화, 공간을 공유하며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고 협동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가부장이 넘치고 현모양처가 사라진 그 자리에서, 비로소 우리는 ‘역할’이 아닌 ‘인간’으로 마주 설 기회를 얻었는지도 모른다.


남성들이라고 모두가 밖에 나가 진취적인 커리어를 쌓고 싶어 하는 게 아니고, 여성들이라고 모두 집에서 저녁 메뉴를 고민하며 생활물품 재고를 신경 쓰고 아이 울음소리만 듣고 싶은 건 아니다.


가부장제가 오로지 가정 내의 권력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건 안다.

하지만,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에서부터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면, 드디어, 비로소 평화로운 변화가 시작되지 않을까?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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