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유통기한이 지난 어른

어른의 정의

by 강우

어른

1. 명사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명사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 명사 결혼을 한 사람.



'어른을 공경해라'

'어디 어른한테 감히'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어른이란 과연 무엇인가.


자신이 미성년자라면 어른이라는 개념은 비교적 명확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조차 성인(자라서 어른이 된 사람. 보통 만 19세 이상의 남녀)과 어른을 혼용한 것에 가깝고, 주변을 가리키며 '저 사람은 어른입니까?', '저 사람은요?' 하다 보면 슬슬 '어?' 싶은 것이다.


어른을 공경하라는 개념에서 어른은 단순히 법적인 성인이 되었다거나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의미보단 내가 따를만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니 사회생활 좀 했다 싶은 30대로 접어들면 어른의 정의는 더 헷갈리기 시작한다.

'여기 더 나이 든 사람과 덜 나이 든 사람, 상대적 어른과 당신보단 덜 어른이 있지 어디 '그런' 어른이 있나요?' 싶은 것이다.

하여 언젠가부터 어른임을 내세우는 모든 말에 미묘한 반항심이나 불쾌감이 들기도 하고, 과연 어른이 내게 일방적인 가르침을 내리거나 혼을 내거나 갑질을 할 만한 존재가 맞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아니, 왜?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면서요. 같은 천부인권을 가지고 태어나 모두가 소중한 사람이라면서요.

고용관계, 갑을관계, 위계관계로 상황에 따라 내 권리를 제한받는 기분도 더러운데 이젠 그냥 나이가 많으면 공경하라고요?


무엇보다 너도 나도 나이를 들다 보면 슬슬 깨닫게 된다.

나이란 숨만 쉬어도 자동으로 먹는 것일 뿐 그 자체로 사회에 기여하거나 대단한 성취를 이룬 것이 아니다.


하물며 몇 대에 걸쳐 한 지역에 살며 같은 일을 하던 시절엔 언제 씨 뿌리고, 언제 배 띄우면 안 되는지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이 정말 다 맞았을지 모르나 지금은 5년만 지나도 신기술을 따라가기 어려울 지경이다.

과연 지금 시대에 어른 타령이, 나이로 찍어 누르겠다는 심보가 어디 먹히기나 한단 말인가.




20살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당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줄여서 와우) 온라인에 빠져 거의 1년을 허비했다.(정확히는 좋은 시간 보냈다.)

그때 상대 진영으로 가 PK(다른 플레이어를 죽이는 행위)를 하면, 몇몇이 다른 케릭으로 들어와 귓속말로 상냥히 부모님 안부를 묻곤 했는데, 어머님이 아직 살아계시는지, 내 아버지가 누군지 알고는 있는지 등의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당시엔 패드립만은 하지 말자는 어떤 전국민적 약속이 생겨나기 전이라 거의 야만의 시대였고, 내 엄청난 타자 속도를 이기지 못한 상대가 결국 내뱉는 말은 희한하게 "야, 너 몇 살이야?"였다.


20살이란 저런 논쟁에서 좀처럼 이기기 힘든 나이였기에 그때마다 내 대답은 "나이 먹고 게임하셔서 참 뿌듯하시겠어요."(좀 순화된 표현) 였으니 나는 과연, 성인이 되었어도 어른은 못 되었고, 기존 어른도 공경하지 못 한 네 가지가 없는(혹시 저게 인, 의, 예, 지 인가?)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엔 그저 '게임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하고 말았던 나이 타령이 사회에 나가서도 다들 인사와 함께 몇 년생인지(몇 학번인지)부터 확인하고 그걸로 서열을 정리하는 일이 반복되자 점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왜,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먼저 태어나 죽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어떤 힘이 생기는 걸까?


그 사람이 나보다 나이를 더 먹기 위해 한 거라곤 없는데 왜 내 개인의 성취보다 그 사람의 나이가 더 즉각적인 힘을 갖느냔 말이다. 이것은 단순히 네 가지론으로 입을 막아 치우기엔 제법 정당한 의문이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브런치북 <관습의 종말인가, 개인의 탄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