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주인공의 경험과 감정을 공유한다.
삼국지의 강렬한 맛 때문이었을까? 그 이후에도 역사 소설을 읽어 나갔다. 역사를 좋아하던 아버지의 서재에서 연개소문, 칼의 노래, 람세스, 초한지, 십팔사략, 사기와 같은 역사 소설을 줄줄이 읽어 내려갔다. 위대한 인물들의 전기를 볼 때면 마음에 호연지기가 절로 이는 듯했다.
연개소문이 당태종과 맞서던 고구려의 요동 벌판부터 시작하여 명량해전이 일어난 남해 바다, 파라오와 모세의 갈등이 그려지는 이집트의 사막, 그리고 광활한 중국 대륙을 통치했던 여러 나라들의 치란흥망의 역사까지 두루 보았다. 책을 읽을 때 나의 정신은 전 세계를 종횡무진하였다. 그러면서 나는 깨달았다. 책에는 시공간이 제약이 없음을. 책을 통해 나는 과거와 미래로 이동했고, 낯선 공간에 존재할 수 있었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서 한 개인의 삶을 그려내는 대하소설을 주로 읽었던 나는 표현 방식이 그 대척점에 있던 문학 장르가 궁금했었다. 문학을 좋아하는 어머니의 서재는 아버지의 서재 옆에 있어, 물리적으로는 가까웠지만 심적으로는 거리감이 존재했었다. 그 당시 나에게 문학이란 탐험한 적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어머니의 서재는 <죄와 벌>, <안나 카레니나>, <혼불>, <태백산맥>,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와 같이 소설들이 주를 이뤘다. 역사 소설이 거대한 역사의 흐름 안에서 영웅이었던 한 인간의 변화를 큼직하게 썰어 독자들에게 내놓았다면, 문학은 인간의 본질에 대해 끝없이 파고 들어가는 갱도와 같은 길이었다.
처음에 문학 책들을 진득하게 앉아 읽어보려 시도했었다. 하지만 몇 줄 읽다 덮고, 몇 장 보다 말기가 일수였다. 그 이유인 즉, 이야기 전개가 느리며 그 당시로는 이해 못 할 심리 묘사가 많았다. 인간의 본성을 작가의 스타일에 따라 섬세하고 찬찬히 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책 전부를 다 읽어도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지 않았다.
당시 나의 생각으로 별거 아닌 일로 여러 장을 써 내려가는 작가들의 글 실력이 대단하게만 느껴졌다. 시시각각 변하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 일련의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그 일을 암시하는 환경의 변화, 숨겨놓은 상징과 복선, 그리고 그것들 밑에 깊이 묻힌 작가의 주제 의식. 이런 것들이 존재함을 이제는 알지만 어린 나이에는 이 모든 것들을 파헤쳐 낼 내공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문학은 나에게 미지의 장르였다.
모르면 동경하게 되는 것일까. 당시 나는 가슴 깊숙이 문학에 대한 동경이 움트고 있었다. 역사 소설같이 큼직한 이야기들도 좋았지만 감수성 풍부한 문학청년 또한 되고 싶었다. 그래서 문학은 반드시 내 것으로 정복해야 할 장르 중 하나였다. 그러던 어느 겨울밤이었다.
역사 소설을 다 읽고 어머니의 서재를 둘러보던 중 가장 만만해 보이는 얇은 문학 책을 골라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 때도 이불 아래 전기장판을 뜨듯하게 켜 놓고 몸을 지지며 책을 보는 게 이 세상 최고의 행복이었다. 이불속에서 펼쳐든 책은 사랑 이야기를 다룬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이었다.
가볍게 읽으려 꺼낸 그 책은 그날 밤 내 베개를 눈물로 적시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춘기의 나이라 더 감수성이 풍부했을지도 모르겠다. 한 여자에 대한 남자의 순정, 설렘, 절실함, 간절함 이 온갖 감정들이 내게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문장마다 사랑에 대한 애틋함, 그리움, 회한이 깊이 담겨 있었다.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결말짓는 이 책을 덮은 후 나는 잠에 들지 못했다. 여운이, 슬픔이 가시질 않았다. 불 꺼진 천장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소설 속 이야기가 너무나 안타깝고 먹먹하고 좌절스러웠다. 그러면서 가슴 한편으로 나도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일생에 그런 사랑을 한 번 해보길 염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