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작가의 분신
책은 작가가 펜으로 낳은 자식이다. 책을 쓰기 위해 작가는 자신의 삶에서 건져 올린 생각과 경험들을 재료로 부단히 글을 써 내려간다. 생각과 경험이 담긴 글은 작가의 분신이다. 책은 작가와 닮았다. 책을 읽으면 작가를 알 수 있고, 작가를 알면 책을 알 수 있다. 책을 읽고 작가에게 호기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행여 감동과 전율을 일으키는 책을 만나면 작가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지게 된다. 이때부터 작가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는 시점이다. 자신에게 영감과 감동을 준 작가라면 그의 전집, 전기, 살았던 생가, 업적, 주변 사람들의 평가 등 모든 것을 찾아보게 된다.
한 권의 책에 사로잡힐 때, 작가를 읽고 이해하기 시작해 그와 모종의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그 책은 진정한 영향을 발휘한다.
<헤르만헤세의 독서의 기술>, 헤르만 헤세
마치, 아이돌을 좋아하는 열혈 팬처럼 작가에 대해 샅샅이 조사한다. 작가가 언제 태어나고, 어떤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으며, 집안 환경은 어떠했는지, 취향은 어땠으며, 어릴 때 어떤 꿈을 그렸는지 말이다. 작가의 개인사부터 시작하여, 크게는 이 작가가 살았던 시대를 조사한다. 작가가 살던 나라와 그 시대는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는지, 어떤 역사적 사건에 작가에게 영향을 주었는지, 그에게 인생행로를 결정짓게 한 핵심적인 사건이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책을 읽을 때 호기심은 글로부터 생겨나지만, 그 호기심은 자연스레 작가에게로 옮겨간다. 책 읽기가 작가 읽기고, 작가 읽기가 책 읽기이다. 작가를 알고 책을 읽을 때와, 작가를 모르고 책을 읽을 때와는 격차는 너무나 크다.
작가의 글에는 저마다 자신만의 철학과 지향점이 있다. 작가의 삶이 그가 쓴 글과 합치되면 책은 더 단단해진다. 글만 읽을 때와는 차원 다른 감동을 주기도 한다. 반대로. 작가의 삶과 책에 있는 글이 합치되지 않을 때의 책은 생명을 잃는다. 작가와 책은 일심동체이며 운명 공동체이다. 이 둘을 분리할 수 없다. 깊이 있는 글을 써 내려가는 작가는 모두 삶 속에 고뇌가 있다. 작가가 어떤 고뇌를 품고 살았느냐를 알게 되면, 그의 글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작가의 삶을 이해함으로써 책을 보다 깊숙이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의 생에 대한 탐구는 슬로 리딩의 기본이기도 하다. 아래 내가 좋아하는 <일일초>라는 시가 있다.
오늘도 한 가지
슬픈 일이 있었다.
오늘도 한 가지
기쁜 일이 있었다
웃었다가 울었다가
희망했다가 포기했다가
미워했다가 사랑했다가
그리고 이런 하나하나의 일들을
부드럽게 감싸 주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평범한 일들이 있었다
<일일초> 호시노 도미히로
시를 읽으니 어떤가. 슬픔과 기쁨, 웃음과 울음, 희망과 포기, 미움과 사랑에 대해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하루를 관조하듯 써 내린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이 수많은 평범한 일들과 함께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 시를 읽고 따듯한 차 한잔을 떠올렸다. 고요함 속에 향기로움, 그리고 온기가 있었다. 참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아래 시인에 대해 쓰인 한 줄을 더 읽고 마음이 먹먹해졌다.
교사 시절 기계 체조를 가르치다가 철봉에서 떨어져 전신마비가 됨
이 한 줄이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무엇을 건드렸다. 가슴이 아렸다. 연민인지, 슬픔인지 모를 감정과 들면서 시가 달리 보였다. 시가 시인의 삶을 타고 내 안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아래 한 줄이 없었다면, 나에게 스쳐 지나갈 좋은 시로만 남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인의 삶을 아고나니, 이 시는 나에게 다르게 읽혔다. 몸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삶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태도와 시선에서 감동이 있었다. 그렇다. 글과 작가는 분리될 수 없다.
훌륭한 작가는 자신만의 고유한 장소, 고유한 땅을 갖고 있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생산하는 풍토에 작가가 애착을 갖고 있어야 만들어진다.
<아무도 없는 밤에 피는>, 사쿠라기 시노
위의 글은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을 해설하는 글의 첫 문장이다. 저 문장은 모든 글에 있어 참이다. 작가의 삶은 글의 모태이다. 어떤 이야기도 작가의 경험과 생각을 벗어날 수 없다. 아는 만큼 쓰고, 경험한 만큼 쓰고, 생각한 만큼 쓴다. 작가의 인생을 조사하며 책을 읽으면 책 안의 글에서 작가의 삶과 글이 실타래 얽혀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수많은 교차점을 찾을 수 있다.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어떤 주제가 있다. 작가는 그 주제를 떠올리게 된 동기가 있었을 것이고, 해답은 바로 작가 삶 속에 있다. 주제는 누군가 작가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삶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쓰는 작가의 표현도 마찬가지다. 어떤 소설을 읽을 때는 배경 묘사가 너무나도 정밀하고 선명하여 실제로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그 배경을 소설가는 만들어낸 것일까. 아니다. 자신이 눈으로 보고, 듣고, 만지고 느낀 것을 글로 써낸 것이다. 자신이 살았고 겪었던 환경에 대한 묘사이다. 그래서 실제 살았던 것처럼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노 작가들을 보면 옛 한국의 마을의 풍광이나, 분위기를 실제로 살았던 것처럼 세밀하게 묘사한다. 겪었기 때문에 그렇게 쓸 수 있는 것이다. 어렸을 적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산자락 작은 마을이며, 시골 장터의 구수한 내음과 풍성했던 인심을 표현하는 것은 모두 그 장소, 그 시대에 있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아닌 다른 지역을 배경으로 삼은 소설은 어떨까. 조정래 작가는 <정글만리>를 쓰기 위해 중국으로 수년 동안 자료 수집을 위해 다녔다. 꼼꼼하고 광범위하게 자료를 수집하여 중국에서 살았던 것처럼 생생하게 소설을 써 내렸다. 그래서 격변의 중국을 살아내고 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순간 냉동하여 전시하듯 써낸 것이다. 조정래 작가뿐이겠는가. 다양한 작가들이 자신의 삶을 원료로 책을 써 내려가고 있음이다. 작가를 모르면서 책을 읽지 마라. 작가는 책의 원산지다. 원산지 표시를 등한시 여기면 깊은 독서는 물 건너간다. 좋아하는 책이 있다면, 더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작가를 샅샅이 파악해자. 책 읽기가 달라진다. 더 재밌고, 더 깊이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