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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연수 Jul 16. 2019

회의, 사소함의 늪에 빠지다!

사소함의 역설 - 우리는 왜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것일까?

한창 모두가 열을 내며 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주제가 이렇게까지 길~~게, 불꽃 튀기며 논의할 것이 맞나?'
'산적해있는 주제가 많은데 언제 다 다루게 되는 거지?'
'어떤 결론이든 좋으니 이제 그만 넘어갔으면 좋겠어!'


사소한 일에 대해서 집착하듯 열정을 다해 오래오래 논의하고, 정작 중요한 안건에 대한 의사결정은 신속(?)하게 처리된다면?


우리는 어느새 사소함의 역설(Law of Triviality, 사소함의 법칙)에 빠져든 것이다. 사소함의 역설은 사람들이 중요한 사안보다, 사소한 문제에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는 심리적 현상이다. 영국의 시릴 파킨슨(Cyril N. Parkinson)이 발견한 현상으로 사람들은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보다 자신이 이해하기 쉽고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해 토론하기를 선호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그 주제가 중요한지 보다 번거롭고 복잡한가에 따라 몰입과 참여의 정도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파킨슨은 한 재정위원회 회의를 예로 들었다. 그 회의에서 약 1천만 달러가 드는 원자로에 대한 승인이 2분 30초 만에 내려졌다. 하지만 자전거 보관소를 위한 2,350달러의 자금을 조달을 하는 데 45분 동안이나 토론을 벌이게 되었다. 또 다른 위원회에 들어갈 커피 비용 4달러 75센트에 대해서는 1시간 넘게 언쟁을 벌였다.

자전거 거치대 문제가 그렇게 시간을 들일만큼 중요한 문제였던 것일까? 안타깝지만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원자로 승인 문제는 그 필요성과 상황에 대해 아는 사람이 2~3명뿐이었으며,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 논의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반면, 자전거 거치대나 커피 구매 비용의 논의는 내용의 난이도가 낮고 큰 부담이 없으니 여러 사람이 의견을 내게 되었고, 이로 인해 회의 시간이 길어지게 된 것이다.                                        

 우리가 회의에서 특정한 안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은
안건에 소요되는 비용에 반비례한다.


왜 우리는 사소한 것에 자꾸 집착하게 되는 것일까?

여기에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꺼내기가 두려운 발언의 공포가 존재한다. 중요한 문제일수록 복잡하고 큰 책임이 따르는 경우가 많은데,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책임 소재와 여러 가지 우려로 인해 발언 자체를 줄이게 되는 것이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반면, 자신이 익숙하고 잘 아는 주제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떠오르기도 하고 이를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영향력과 기여하고 있음을 보다 쉽게 확인하게 된다. 이로 인해 몰입하게 되는 경향이 자연스럽게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회의감이 가득한 회의의 늪에 빠져버리게 된다.

중요한 사안이지만 충분한 정보를 검토하지 못하고 현명한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워진다.

중요한 사안에 대해 다수의 참여자가 방관자의 자세로 임하며, 이후 결정을 번복하거나 책임 소재를 파악하기 어렵다.

사소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가 강하게 제기되어 불필요한 논쟁으로 번지기 쉽다.

사소한 주제에 대한 지나친 논쟁은 대립적 논의와 집단극화(집단극화 글 바로보기)의 현상으로 나타날 우려가 있다.

사소한 주제를 길게 논의하다가 정작 중요한 안건은 시간이 부족하여 다루지 못한다.



사소함의 늪에 빠지는 것을 예방하려는 리더와 퍼실리테이터를 위한 IDEAs!

# 회의 안건에 따라 회의 시간을 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안에 따라 어느 정도의 시간과 깊이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에 대해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퍼실리테이터는 그것을 회의의 '진행순서'와  '목적',  '결과물'을 정한다고도 한다.  


# 중요한 안건을 먼저 논의한다. 

우리는 종종 회의 시간에 쫓겨 급히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그러한 결정이 중요한 사안에 대한 것이라면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논의해야 하는 과제의 수를 빨리 줄이려는 마음에 다루기 쉬워 보이는 안건을 먼저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상과는 다른 경우도 많다. 정확히 예상하기 어렵다면 중요한 안건을 먼저 논의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 내용을 미리 숙지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좋다.

깊이 있는 논의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가 충분히 검토되어야 하는 것은 좋은 의사결정을 하고 회의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매우 필요한 과정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참여자를 회의 구성원으로 선정하거나,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회의 성공의 필요조건이다.


# 문제제기를 하거나 비판적 시각을 갖는 역할을 할 사람을 선정한다.

발언의 공포와 책임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면, 의도적으로 리스크에 대한 표현과 문제점을 제시하는 사람을 선정하여 충분히 검토할 수 있도록 역할을 배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사소한' 안건이라는 판단 역시 다분히 주관적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리더와 퍼실리테이터라면 '나무'와 '숲'을 함께 바라보는 시각과

회의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는 것은 기억해두자!



[참고자료]

장동선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 아르테(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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