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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팀장님 Jan 25. 2022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모텔로 간다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고 쪼개 쓰는 생활을 해 온지도 벌써 12년이 되어 간다.

설거지를 하면서 빨래를 생각하고 빨래를 널면서 회사일을 생각하고 회사일을 하면서 자동차 보험을, 자동차 보험을 알아 보며 내일 아침에 먹을 반찬을 생각하고,,, 끝도 없이 생각을 하고 또 하고,,, 나중에 잊어버릴까봐 포스트잇에 적어 놓고, 휴대폰에 메모하곤 했다.

회사가는 길에 회사가서 할 일 체크, 집에 가는 길에는 집안 일 체크, 수시로 학교 알리미 체크 등을 해치우며 봄이 오는지 여름이 가는지, 벚꽃이 피는지 눈이 오는지,,, 흔한 낭만도 느끼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 버렸다.


Visualmerchadiser의 업무 특성 상 지방 출장이 자주 있는 편이다.

지방의 경우, 새벽 작업으로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6시 무렵부터 연출을 시작한다. 가끔 인테리어 점검을 위해 더 이른 새벽에 유통에 들어가야 할 때도 있다. 새벽 업무를 위해 전날 저녁에 숙박을 해야 한다. 요즘에는 편리한 숙박앱이 많아서 마음에 드는 숙소와 룸 형태를 미리 예약할 수 있다. 그 전에는 지역에 가서 이곳 저곳 둘러 보다가 적당히 들어가서 숙박을 했기 때문에 모텔의 외관과 룸이 달라서 불편하기도 했다. 건물 외부만 리노베이션을 해서 멋있게 만들어 놓고 정작 내부는 오래되고 관리가 안되는 곳도 많았다. 요즘에는 댓글 리뷰도 비교적 정확하고 사진도 실사라서 고르기 좋다. 특히 VMD들의 입소문에 좋다는 숙소들은 좀 알려져 있는 편이다. 비즈니스 호텔을 선호하지만 대도시에만 있어서 대부분 '모텔'이라는 이름의 숙소를 이용한다.


언제부터인가 회사에서도 1인1실을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동성끼리 출장을 가게 되면 트윈룸이나 더블룸을 함께 사용했다. 상사, 또는 어색한 사이의 동료와 출장을 다며 오면 사실 더 피곤하다. 최근, 코로나19로 숙소를 더 꼼꼼하게 선택하게 된다. 함께 출장을 가는 사람들끼리 식사도 같이 못하고 먹을 것을 사서 각자의 방에 가서 먹는다.



숙소를 선택할 때, 나의 기준이 있다.

우선순위로 넷플릭스가 되는지 본다. 한 때 영화광이었던 내가 출산과 육아를 통해 나만의 시간이 없어진 후로 가장 아쉬운 것이 영화, 뮤지컬 관람이다. 출장 가서 큰 화면으로 넷플릭스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보며 잠드는 건 정말 행복하다. 다음이 스타일러가 있는지 본다. 특히 여름에 스타일러 너무 좋다. 바지도 반듯하게 만들어 주고, 기차로 구겨진 블라우스나 셔츠를 잘 펴준다. 아침에 스타일러에서 꺼내 입는 옷의 상쾌함은 너무 좋다. 또, 공기청정기가 있으면 좋다. 신축 모텔에는 이런 것들이 잘 구비되어 있다. 루프탑이 있는 곳도 있다. 조식이 나오는 곳도 있다. 조식은 여러모로 편리하다. 출장으로 피곤한 상황에서 새벽에 편의점 말고는 딱히 먹을 곳이 없을 때, 조식이 나오면 시간에 여유가 생긴다.




© boxedwater, 출처 Unsplash




초저녁, 간단한 푸드를 테이크아웃하여 먹고 마시며 넷플릭스를 보거나, 아이패드로 음악을 틀어 놓고 여유롭게 친구와 통화를 하거나 다이어리를 정리한다. 주로 낙서같은 그림을 그린다. 얼굴에 팩을 붙이고 반신욕을 하거나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패션 잡지 한 권을 읽기도 한다. 인테리어가 멋진 곳에서는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는다.


물론 다음 날 현장 점검에 필요한 사항을 체크하고 업무를 하느라 휴대폰 배터리가 닳을 만큼 바쁠 때도 있다. 출장의 절반 정도,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는 모텔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사소한 것들로 꽉 찬 나의 머리를 비워내며 한 가지에만 집중하려고 한다. 늘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회사와 집과의 물리적인 거리 만큼 신경이 덜 쓰이는 것은 사실이다. 몸이 피곤하긴 하지만 반나절보다 짧은 저녁 시간에 갖는 나만의 시간을 좋아한다. 온전히 혼자 넓은 침대에서 내 맘대로 웃고 떠들고 슬픈 영화와 함께 울기도 한다.



혼자만의 시간,

내 생각을 정리하고 고민을 풀어 놓는 시간이다.

아무 생각없이 한가지에 몰입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시간이 얼마나 필요하고 소중한지 너무 늦게 알았다. 다른 사람의 의견없이 내게 주어진 문제들을 객관적인 생각으로 정리할  있는 시간이다.  누군가와 함께 있어 진심으로 내게 중요한 것을 스스로 찾아내지 못하면 상황에 휘둘리게 된다. 가끔 복잡한 머리를 털어 내고  시간이라도 혼자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가끔 갖는다. 울산, 항, 광주의  모텔에서...




© qimono,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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