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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댕이 May 21. 2022

도시락 세대-'즐겁고 귀여운 나의 비빔밥 이야기'

'라떼는'..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 연합고사를 치렀기 때문에 중3 때는 9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해야 했고 그때부터 도시락을 2개씩 싸가지고 다녔다.

학교 쉬는 시간의 일상은 이러했다.

수업 종료 5분 전부터 준비하고 있다가 땡 하면 매점으로 달려가는 아이도 있고 뒷자리 아이들은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다 수업종이 치면 허겁지겁 먹고 놀거나 자기 바빴다. 급식 세대인 아이들에겐 낯선 풍경일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도시락 싸느라 힘드셨겠지만 엄마의 희생으로 평생 곱씹을 수 있는 추억거리를 만들었다. 도시락 뚜껑을 열면 집집마다 특징들이 보였다. 나물에 국에 깔끔한 한식파, 밥 위에 치즈를 올린 퓨전파, 고기 햄 소시지만 가득한 육식파등 다양한 반찬들이 알록달록 책상 위를 가득 메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락에 대한 추억이 있는데 때는 고1, 2학기 즈음 매일 먹는 밥이 지겨워서 친구들과 '나는 양푼, 너는 밥, 너는 고추장 등등'

나눠서 가져오기로 하고 다음 날 재료들을 양푼에 참기름 살짝 두르고 슥슥 비벼서  같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는 온갖 재료들을 봉지 안에 넣고 쉐킷 쉐킷 하며 쥐고 흔들고 두드리고 그러면서도 친구들과 좋아서 연신 깔깔깔 웃던 기억이 있다. 비빔밥 하면 나에게는 그렇게 귀엽고 소중한 추억들이 있다.

또 한 가지 비빔밥에 대한 기억은 고향이 경상도 대구인데 어렸을 때 제사를 지내고 꼭 제사 지낸 음식들을 넣어 비벼먹던 기억이 있다. 이 비빔밥은 고추장이 들어간 빨갛고 알록달록한 비빔밥이 아니라 다시마튀각도 넣고 나물과 탕국을 넣은 무채색 비빔밥이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가족들 모두 기독교로 개종해서 이제 더 이상 그 구수한 비빔밥을 먹을 수 없어 아쉽고 서운한 맘이 든다.

비빔밥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식이다.

단순히 음식을 넘어 색과 맛, 계절과 지역, 자연과 인간이 한데 어울려 조화와 융합을 이루는 것이라는 비빔밥 정신이 깃들어 있다.

이것저것 재료를 한 데같이 넣고 비벼먹는 그 과정에서 어울림의 조합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친해지면 같이 먹는 비빔밥. 어색하다가도 비벼 진밥을 나눠먹으면서 친해지게 되는 이상한 마력이 있는 요리이다.

이런 신기한 음식은 과연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비빔밥은 1800년대 말부터 각종 문헌에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1990년대 기내식으로 채택이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식이 되었다.


비빔밥의 유래는 3가지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첫 번째가 아까 언급한 제삿밥에서 유래된 비빔밥이다. 맵지도 않고 고소한 참기름도 안 들어가지만 짭조름하고 탕국처럼 깊은 맛에 은근히 중독되는 맛이어서 평상시에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경상도 지역에 헛제삿밥이 유명하다.

제삿밥이 먹고 싶어 제사를 지내지 않지만 일부러 음식을 해서 헛제삿밥을 만들어먹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두 번째는 한 해의 마지막 날 음식을 남긴 채 새해를 맞지 않기 위해 남은 밥에 반찬을 모두 넣고 비벼서 밤참으로 먹었던 풍습으로부터 비빔밥이 유래했다는 설이다.


세 번째는 들에서 밥을 먹던 풍습에서 비빔밥이 생겨났다는 주장이다

옛날에는 농업을 주로 했기 때문에 밭이나 논에서 먹었던 것에 유래했다고 보는 설이 있다.

이 설들만 보아도 혼자가 아닌 여럿이 같이 먹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비빔밥은 단순히 음식으로만으로 치부하기엔 그 뜻이 너무나 깊다.

우리가 학창 시절 비빔밥 하나로 마음이 통하기도 했고 소개팅으로 상처받고 세상일에 치여 힘들었던 마음들의 위로를 해주었던 음식이기도 했다.

비빔밥은 단순히 요리를 넘어 우리 삶에 치유와 위로를 해주던 오랜 친구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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