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꽃을 피운 한 남자

<울지마 톤즈>

by 김포이
톤즈.JPG


질풍노도 시기의 나는 (물론 여전히 그렇지만) 감성이 풍부한 학생이었다. 사소한 슬픔에도 눈물을 펑펑 흘렸고 작은 감동도 파도처럼 느꼈다. <울지마 톤즈>는 핸드폰 액정같았던 나에게 충격과 반성과 눈물과 행복 등 많은 감정들을 느끼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컴퓨터를 정리하다 우연히 <울지마 톤즈> 감상문을 발견했다. 잘 쓴 글은 아니지만 순수했던 그 시절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옛날 영화라 요즘 학생들에게는 낯설겠지만 우연히 이 글을 보고 한번 쯤 영화를 보게 되었으면 한다. 인간의 선함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느꼈으면 한다. 내가 그랬듯.




아프리카 수단 남쪽의 작은 마을 톤즈는 모든 것이 황폐해진 상태다. 어린 소년들은 연필을 쥐고 배움의 길을 그려나가야 할 나이에 총을 들고 소년병이 되어 군대에서 착취를 당한다. 악성 말라리아와 콜레라 등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 웃음이 사라진, 절망의 땅에서 이태석 신부는 작은 마을 톤즈에 삶의 희망을 선물했다.


이태석 신부는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의대를 졸업했다. 유명병원에 입사해 큰 돈을 벌고 명예도 얻는, 탄탄대로의 인생길을 뒤로한채 그는 아프리카 중에서도 가장 오지로 불리는 수단의 남부, 톤즈로 떠났다. 혹자는 우리 나라에도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아이들이 많은데 굳이 지구 반대편까지 간 것인지 의문을 품기도 한다. 사서 고생한다는 게 이런 걸까.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만 내 삶에 영향을 준 아름다운 향기가 있다.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 (중략) 마지막으로 10남매를 위해 평생을 희생하신 어머니의 고귀한 삶. 이것이 내 마음을 움직인 아름다운 향기다."



사람에게 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이태석 신부가 선천적으로 바르고 헌신적인 인물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말했던 아름다운 향기(환경)이 김길태, 이춘재와 같은 사람들에게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들도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삶을 꾸려나가지 않았을까? 나에게 아름다운 향기가 퍼졌다면 이태석 신부처럼 용기있는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모든 것을 두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고민조차 안했겠지.


톤즈로 향한 이태석 신부는 마을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세웠다. 병원이 생겼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하루에 몇백명의 환자를 돌보는 탓에 피곤할 법도 하지만 그는 밤늦게 찾아오는 환자들을 거부하지 않았다. 언제나 환한 모습으로 반겨주었고 병원까지 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이스박스에 백신을 넣어 직접 배송까지 했다. 방문접종인 셈이다. 지치지 않는 열매라도 먹은 것인지 모른다. 전생에 무쇠팔 무쇠다리의 태권브이였는지도. 영상에는 단 한 번도 그의 힘든 얼굴이 등장하지 않았다.


병원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자 신부는 학교를 짓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총을 들어야했던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직접 수학을 가르쳤고 케냐에서 교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을 선발해 선생님으로 데려왔다. 그로 인해 아이들은 미래룰 꿈꿀 수 있게 되었고 사랑을 배우게 되었으며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총을 뒤던 손으로 연필을 잡고 글을 배우고 기뻐하는 톤즈의 아이들을 보며 그들보다 나은 환경에서 자라고 그들보다 넉넉한 생활을 하면서도 배우는 것을 귀찮아하는 내가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이태석 신부에게 배웠던 한 소년병은 말했다. "그는 내게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공부를 안하면 나를 불러 앉혀서 야단치시고, 나를 위해서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소년병에게 이태석 신부의 꾸중은 애정이었고 그의 존재는 의사, 선생님을 넘어 아버지였다.


톤즈1.JPG


병원과 학교를 세운 그가 또 한 가지 큰 일을 해냈다. 전쟁과 가난에 찌든 아이들의 마음을 음악으로 치유하고자 했다. 35인조 브라스밴드를 반들어 악기를 가르쳤다. 직접 만든 악보를 나눠주고 한국에서 보내온 단복을 입혔다. 빨간 단복을 입은 아이들은 정말 귀여웠고 예뻤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먼저 아기를 배우고 밤을 새가며 악보를 만드는 그의 모습도 예뻤다. 35인조 브라스밴드는 곧 남부 수단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정부 행사에도 초청받았다. 이태석 신부가 없는 지금도 아이들은 새벽이 되면 스스로 모여서 연습을 한다. 꿈을 믿지 않았던 그들에게 브라스밴드는 희망의 상징이었고 또 누군가의 꿈이 되었다.


존재하지 않는 이태석 신부를 추억하며 눈물을 흘리는 톤즈의 아이들을 보며 내 눈가에도 투명한 액체가 고였다. 이 투명한 액체 속에는 톤즈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 세상에 꼭 필요하신 분을 그렇게나 일찍 데려가셨어야 했나하는 신에 대한 원망,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덜 부끄러울까하는 고민이 담겨있다. 그리고 이 마음은 영화를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져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장암 4기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자신보다는 톤즈에 있는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을 걱정하는 한 남자. 톤즈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한 남자. 척박한 이 땅에 희망의 꽃을 피운 한 남자를 나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